【에이블뉴스 김익환 칼럼니스트】 불길 속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소방관. 그 숭고한 헌신 뒤에는 낡고 버려진 방화복이 남겨진다. 하지만 이 방화복들이 그냥 폐기되지 않고, 누군가의 일상에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난다면 어떨까.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해 소방관을 돕는 브랜드, 바로 119레오의 이야기다. 119레오의 이승우 대표는 폐방화복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고, 그것을 통해 세상에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소방관을 돕는 마음, 환경 문제에 대한 실천, 그리고 사회적 가치를 현실로 만든 과정까지,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해 소방관을 돕는 119레오의 이승우 대표. ©최아영
먼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19레오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승우라고 합니다.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하는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소방관이나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개인적인 배경이 있으신가요?
2016년, 대학 안에서 소방관분들을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처음 구상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직접 소방서를 찾아가 소방관분들을 인터뷰하게 되었고, 한 달여 간의 인터뷰 중에 암 투병 중인 소방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이분들을 지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동아리 활동으로 처음 그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암 투병 중인 소방관을 돕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저희는 ‘소방관이 우리를 구해주는 존재이기에, 우리도 그들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고민이 생겼어요. 이 마음을 우리만 알고 끝낼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주목한 게 바로 방화복이었어요.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을 지켜주는 옷, 그 자체가 상징적이잖아요. 그래서 이 방화복을 활용해 소방관을 지키는 의미를 담은 굿즈를 만들기로 했고, 그렇게 ‘119레오’라는 브랜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암 투병 소방관에 대한 기부나 지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저희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암 투병 중인 소방관분들에게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분들이 저희 활동의 중심에 있습니다. 특히 2022년에 암 투병 소방관에 대한 공무상 재해 관련 법률이 개정되면서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환경이 마련되었어요. 과거에는 소송을 통해 직접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보완이 된 상황입니다. 그 변화에 발맞춰 저희도 이제는 더 다양한 방식으로 소방관분들을 지원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암 투병 외에 어떤 공익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암 투병 외에도 저희는 주로 소방 활동 중 신체에 큰 부상을 입으신 분들, 예를 들어 팔이나 다리를 절단하신 분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특히 휠체어 진입이 가능한 ‘베리어프리’ 공간이 절실한데, 일반 주택에는 그런 구조가 잘 갖춰져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개보수 비용을 지원해드리는 식으로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다만 저희는 이 활동을 단순히 ‘처우 개선’이라기보다 ‘권리 보장’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암에 걸린 소방관이 1만 원을 받느냐 10만 원을 받느냐는 처우의 문제일 수 있지만,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권리 침해죠. 마찬가지로, 집에 돌아갈 수 없는 구조라면 그건 생존의 문제이고,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권리’의 문제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기부금을 통해 이런 권리를 지켜드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계획하시는 새로운 영역의 일이 있으신가요?
저희 119레오는 2022년을 전환점처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암 투병 소방관에 대한 권리 보장이 이뤄지면서 처음 시작하게 만든 문제의 일부가 해결된 거죠. 그때부터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를 깊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당시 내린 결론은 119레오가 계속해 온 ‘폐방화복 업사이클링’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폐방화복이 ‘아라미드’라는 고기능성 섬유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후 아라미드 섬유를 추출해내는 기술 개발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작년에는 그 기술이 실제로 완성됐고, 지금은 그 기술을 바탕으로 ‘재생 아라미드’가 시장에서 더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119레오는 앞으로 어떤 회사가 되기를 바라고 있나요?
저는 119레오라는 이름처럼 저희 브랜드가 그렇게 성장해 나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레오(REO)’는 ‘Rescue Each Other’, 즉 ‘서로가 서로를 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처음엔 소방관을 돕는 일에서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더 넓은 의미에서 지구를 구하는 기업으로까지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119레오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브랜드도 그 방향으로 함께 성장해 나가길 바랍니다.

폐방화복 업사이클링 제품을 소개하는 이승우 대표. ©최아영
홈페이지를 보니 가방이나 파우치, 키홀더 같은 제품이 있더라고요. 119레오에서 만들고 있는 제품들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저희는 주로 가방이나 액세서리 상품들을 많이 만들고 있어요. 가방은 전체를 방화복 소재로 제작한 제품도 있고, 포인트로 일부만 활용한 제품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방 같은 경우에는 비교적 금액대가 높은 편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119레오의 뜻에 동참하고 싶지만 비용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 이런 분들을 위해 가격 부담이 적은 팔찌라든지 키링 같은 액세서리들도 구비를 하고 있습니다.
소방관들이 사용하던 방화복이나 소방호스로 제품을 만들다 보면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업사이클링 과정에서는 당연히 여러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중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폐방화복 자체의 특성이에요. 방화복은 소방관을 화재 현장에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옷이라 일반 의류보다 훨씬 더 두껍고 견고하거든요. 박음질 하나하나가 단단해서, 이걸 수작업으로 분해하는 과정만 해도 굉장히 많은 시간이 들고 손이 많이 갑니다.
또한 이렇게 분해한 방화복을 실제 제품으로 완성하기까지도 여러 공정이 필요합니다. 새 원단을 사용할 때와는 달리 하나하나 정성과 기술이 들어가야만 완성할 수 있는 작업이라 매번 쉽지 않은 과정이에요.
소재나 색깔이 한정적이다 보니 디자인에 제약이 있을 것 같아요. 제품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어떤 철학을 갖고 계신가요?
폐방화복이라는 소재는 누군가에겐 제약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색상이나 질감이 한정적이고 디자인 측면에서도 제약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저희는 그걸 제약이 아니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라고 봅니다. 오히려 119레오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이 방화복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제품을 만들 때도 방화복 고유의 색감과 흔적을 그대로 살리는 데 집중합니다. 이 소재에 담긴 이야기를 존중하고 그 가치를 디자인으로 되살리는 게 저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있어요.
아시아나항공, 미즈노 같은 브랜드와 콜라보 제품을 만든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일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가요?
브랜드 협업의 경우, 저희가 직접 제안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브랜드사에서 먼저 제안을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협업이 이뤄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소방’이라는 이미지와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에요.
소방관을 지원하고자 하는 취지든 방화복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아이디어든 그 출발점에는 ‘서로가 서로를 구하자’는 119레오의 핵심 메시지에 공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하면서 소방관이나 업사이클링 업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뜻밖의 일이 있나요?
소방관에 대한 인식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변화나 정의를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저에게 가장 큰 변화는 ‘아, 이분들도 결국 한 사람의 인간이구나’라는 걸 깨달은 점이었어요. 소방관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그냥 멋있는 사람들, 혹은 불이 나면 가서 끄는 일만 하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현장에서 실제로 소방관분들을 만나면서 느낀 건 그들도 우리처럼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는 점이었어요.
감사의 인사 한마디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누군가를 끝내 구하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 큰 죄책감을 안기도 하시더라고요.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지만 그 이전에 ‘사람’이라는 공통된 분모를 지닌 존재라는 걸 더 깊이 느꼈습니다.
119레오를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큰 보람을 느꼈던 때는 언제인가요?
저는 사실 사소한 일에도 보람을 느끼는 편이라 그런지, 119레오를 하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들이 정말 많았어요. 2022년에 암 투병 소방관에 대한 공무상 재해 관련 법률이 개정되었을 때도 그 변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꼈고요.
또 저희 제품을 구매한 분들이 ‘암 투병 중인 소방관에 대해 몰랐는데 119레오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씀해 주시거나, 제품에 남은 그을음 자국 같은 흔적을 보고 ‘소방관분들이 정말 고생하셨겠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주실 때도 있어요. 과거에는 그런 흔적을 보고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고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흔적이 곧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계셔서 하루하루가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하시는 일에 대한 주변이나 가족의 평가는 어떤가요?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정말 운이 좋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응원과 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고 느껴요. 이렇게 인터뷰를 위해 직접 찾아와 주시는 분들 역시 119레오를 지지해 주시기에 관심을 가져주신 거라고 생각하고요.
주변에서도 저희 브랜드를 긍정적으로 봐주시고,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직접 인터뷰를 진행해 주시거나, 고객으로서 제품을 구매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늘 큰 힘이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19레오가 정말 많은 지지를 받고 있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승우 대표. ©최아영
대표님의 인생관이나 좌우명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저는 ‘실행’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일이든 계획도 중요하고 목표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하는 건 결국 실행이라고 봐요. 만약 저희가 단지 ‘암 투병 소방관을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119레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만나고 제품을 만들고 판매해 본 그 모든 과정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의 좌우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단 실행해 보자’입니다.
이 일을 꿈꾸는 청소년이라면 지금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요?
지금은 무엇보다도 기초 공부에 충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다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