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입국심사 우선검색대 전광판 모습. ⓒ윤은호
최근 같은 자조모임 회원이며, 동생이자, 지인이 카톡방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전송했다. 올해 9월, 일본 장애학회에서 한국의 자폐성 장애인 현실을 알리러 도쿄대에 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귀국했는데, 귀국한 김포공항 입국심사 우선검색대 전광판을 보며 어이가 없었는지 사진을 찍은 것을 보여주었다.
우선검색대란 출입국심사나 보안검색 등에서 교통약자 등의 출입국 우대 대상자의 빠른 수속이 가능하도록 한 서비스의 일종이다. 한데, 김포공항 우선검색대 전광판 사진을 보면 그 사진엔 보행장애인하고 옆에 Disabled이라고 나오며 휠체어 마크가 보였다.
보통 Disabled하면 장애인을 떠오르게 되는데, 장애인은 보행장애인만 있는 거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보행에 장애가 있는 경우엔 입국할 때 서서 하는 과정이나 입국심사대 높이가 낮은 것 등의 관련 이슈가 있어서 그렇게 분류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입국심사대에서 일어서라고 하면 장애인 차별 일종이라, 그러지 않길 바란다. 그러진 않겠지?
그럼에도, 이 표지판을 보면 찜찜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장애인엔 보행장애인만 있는 게 아니다. 보행에 장애가 없지만, 인지나 감각에 장애나 손상이 있어, 장애인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보행엔 장애가 없는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심리사회적 장애인(구 정신장애인), 신장장애인, 심장장애인 등이 있을 수 있다.
보행장애인은 Disabled라는 표현을 보면 이들에겐 보행장애인이 아니면 입국심사 우선검색대를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의지 아니냐는 느낌을 받게 돼 차별을 당하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리고 의료관광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보행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입국심사 우선검색대를 통과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게 된다.
보행에 장애가 없는 경우도 출입국심사에서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한 지인은 과거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과 해외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보행에 장애는 없었지만, 길게 줄서기가 불편하고 어려운 건 보행장애의 경우와 마찬가지임을 필자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보행장애인엔 휠체어 이용인 마크가 붙어 있다. 휠체어 이용인은 분명 보행에 장애가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보행장애인엔 휠체어 이용인만 있을까? 어르신 등의 노인의 경우 운동기능 쇠퇴로 보행에 불편이 생길 수 있다. 보행이 처음엔 어려운 영유아나 아이 임신으로 인해 거동이 쉽지 않은 임산부도 보행에 불편이 생길 수 있다.
건물이나 공원 게시판을 보는데 글씨와 어려운 말들이 적지 않아 인지기능에 어려움이 있는 지적장애인의 경우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보행에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공황장애가 생겨, 사람이 많은 곳이면 그 트라우마가 떠오르고 그러다 길거리 등에 쓰러져 이동이 어려운 심리사회적 장애인(구 정신장애인)이 있을 수 있다.
정신적 장애인을 보면 사람들은 보통 보행엔 불편함이 없는 거 아니냔 인식하에, 버스나 지하철에 있는 노약자석에 이들이 앉으면 이상한 눈초리를 주곤 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이들은 교통약자 중 하나기도 하며, 보행장애인일 수 있다. 휠체어 이용인뿐만 아니라 내부장애인, 정신적 장애인, 유아와 임산부, 노인 등의 교통약자들이 보행장애인일 수 있다.
여기서 보행장애인하고, 옆에 휠체어 마크를 한 것을 보면, 보행장애인엔 휠체어를 이용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닌데, 이들만을 그린 것은 이들에게만 우선검색대 관련 지원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실제로 휠체어 이용인의 이동권 관련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은 부실하고, 부족해도 조금 지원하는 건 있다. 하지만 정신적 장애인 등엔 이동권 지원이 거의 없다. 이 마크를 보면 사실상 휠체어 이용인에 대해서만 이동권을 지원하는 우리 정부의 선별주의가 떠오르려 한다.
보행장애인하고 설명에 Disabled이란 단어도 조금은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이와 관련해 과거에는 사람보다 장애나 손상을 우선시하는 언어 표현으로, 장애인을 바라볼 때 장애를 우선 보았다. 그러면 장애인을 한 인간이기보단 손상, 장애가 있으니 뭔가 고쳐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었던 거다. 다시 말하면 장애의 의료적 관점에 기반한 가치관이자, 언어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먼저 바라보도록 사람 우선의 언어인 Persons/People with Disabilities를 장애인들이 제안했고, 결국 전 세계에서는 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게 되었다. 그런데 장애를 정체성과 다양성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Disabled라는 표현도 그리 거부할 표현만은 아니다. 왜냐면 이 사회의 장애인 차별적인 제도와 문화로 인해 사회나 정책 참여 능력을 거부당한 사람으로 Disabled people이라 표현하면 그것도 수긍이 가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장애를 다양성과 정체성으로 보기보단 손상과 장애로 보고, 장애인을 대했기에, 그 사고에 상처받은 장애인이 전 세계에서 거의 대부분이다. 그래서 피플퍼스트 언어, 사람 우선의 언어를 쓰는 장애인들 대부분의 생각엔 Disabled People은 사람보다 장애, 손상을 먼저 보는 표현이라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그러기에 전 세계에서 Disabled보단 People/Persons with Disablities를 장애인으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는 장애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보행장애인 등의 장애인이라 하면, 장애를 정체성이나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아닌 이상, Disabled가 아닌 Persons with Disablities가 현 맥락과 수준에선 맞고 무난한 표현인 거다. Disabled라 표현한 것은 그만큼 법무부가 장애인 관련 감수성이 없음을 암시하는 거기도 한 거다.
참고로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도 장애인단체 하면 OPD(Organization of Persons with Disablities)라고 그러지, DPO(Disabled People’s Organization)이라 하진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자폐성 장애인을 Autistic Persons라 해 정체성 언어로 쓰는 게 독특한 거다. 만약 장애를 정체성, 다양성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온다면 Disabled People을 장애인으로 지칭할 날이 과연 오게 될까?
과천정부종합청사 지역에 소재한 법무부 건물. ⓒWikipedia
지금까지 얘기한 것을 종합하면 결국 법무부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미비함을 이 사례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거다. 왜 그럴까? 법무부 자체도, 그 부서 안에 인권국이 있긴 하지만 이건 장애인만이 아닌 모든 시민과 관련된 인권국이며, 장애인 인권을 전문으로 하는 인권국은 없다. 장애인 차별 등과 관련된 인권문제는 ‘여성·아동 인권과’에서 맡고 있고, 그 인력의 장애에 대한 역량과 이해, 전문성은 떨어진다. 그러니, 법무부가 장애인 인권에선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못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로스쿨이나 대학교 법학과를 보면, 장애와 장애인 관련 법 등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우며 전문지식을 쌓고 관련한 실습 등을 하며 장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전문 과정이 미비하다. 장애에 대해 배우는 것이 있어도 선택과정이거나, 체계적이지 않다. 그런 데서 배워서 배출되는 법조계 인력들이 법무부에 채용된다면 장애에 대한 인식이 당연히 미비할 수밖에.
그래서 로스쿨 등에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장애인권리협약은 물론 장애에 대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우고 훈련하고 실습하는 과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법무부엔 장애 인권국 신설은 물론 그 부서에 장애와 관련해 감수성이 있는 인력이 들어와야 하고, 이에 대해 예산을 마련하는 등 조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법조계에서 활동하는 정신적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들 수가 더욱 많아지도록 조치 취해야 한다.
우선검색대엔 보행 가능 여부에 상관없이 보행장애인이 아닌 교통약자로 표시했으면 한다. 교통약자엔 장애인과 노인, 임산부, 영유아 등으로 표기하며, 장애인의 경우 영어로 Persons/People with disabilities로 표기했으면 한다. 신체장애인, 내부장애인, 정신적 장애인 등을 상징하는 그림 추가하고, 노인, 임산부와 영유아의 경우에도 상징 그림을 추가했으면 한다. 이에 대해 법무부의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행장애인만 장애인인 것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고, 보행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해 모든 교통약자들이 출입국심사장에서 불이익 없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길 바라는 마음이다. 법무부가 차별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장애, 성적 지향 등의 다양성을 제대로 배우고 훈련하고, 이에 대한 인식을 증진할 때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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