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장윤경 칼럼니스트】“자,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아침 10시, 1-2반 학부모들 사이로 드디어 교장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내가 단체 회의에 참석해 교장실에 드디어 앉아 있음을 실감했다.

“1-2반 담임선생님 부재를 비롯해 ADHD 학생의 학급 내 문제로 부모님들과 이 자리에 다 같이 모인 점에 대해, 교장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2반 담임선생님의 복귀문제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싶습니다. 제가 담임선생님 복직을 설득해 봤지만, 지금으로서는 선생님께서 교권보호와 병가를 요청하신 상태이고, 학생 폭력충격과 부모님들의 항의 연락에 많이 힘드시다고 하네요.”

내가 지난번 1:1 대면 실패에 대한 아쉬움 탓일까? 학교장 바로 앞자리에 또렷이 앉아 교장실에 찾아온 내 존재를 눈 맞춤으로 교장 선생님께 각인시켰다.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빨리 새 담임교사를 배정했어야죠? 여태 11명 강사제도로 운영하시니까 복귀하시는 줄 알고 기다렸는데, 지금 와서 너무 무책임하신 거 아닌가요? 남은 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혼란스럽게 뭡니까?” 부모들의 언성이 높아졌다.

"자, 학부모님들, 그 점은 학교 측에서도 최선을 다해 담임의 복직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시간이 좀 길어진 점이니 양해 부탁드리고요. 그리고 현재 1-2반 전체가 그 학생을 상대로 학교폭력피해자로 접수된 상황이고 회의는 이번 주에 열릴 예정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1-2반 부모님들과 해당 학생 아버님과 직접 대면은 현장에서 분쟁 발생을 고려해 없습니다. 그리고 학교 전담 경찰관 입회 아래 진행된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현재 ADHD 학생은 정신과 의사와 약물치료도 고려 중에 있다고 학생 할머님께 전달받은 점도 알려 드립니다."

교장실 내 엄마들의 표정은 마치 입시설명회 온 고3 수험생 엄마들 같았고, 나는 마음 안에 감정을 들킬세라 표정을 애써 감춰야 했다.

그 소식은 세상에 하나뿐인 내 자식의 어려움과 두려움 앞에 맞서 절대 피하지 않았던 내 시험지의 성적표였기에 담임의 복직 없음이라는 부재 결과 성적표에 어떤 후회도 없었다. 오히려 내 인내심이 담임보다는 강했다는 묘한 감정이 나를 찾아와 다시 한번 내가 당당한 엄마임을 확인하는 순간 있었다.

“여러분 우선 2학기에는 새 담임선생님 오실 예정입니다. 그 전까지는 계속 강사분이 지도할 수밖에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회의 마칩니다.”

3일 뒤 이루어진 학교폭력회의장은 모의 법정처럼 이루어졌다. 학급 전체가 1명을 상대로 하는 일이니 그야말로 마녀사냥 풍경 그 자체였다. 그렇게 학부형들이 바라던 ADHD 학생의 한 달간 등교 정지, 정신과 약물치료 경과보고 및 교내 문제 상황 발생 시 즉시 하교 조치로 마무리되자, 결과에 불만족인 엄마들은 강제전학을 못 시킨 게 아쉽다면서 몇몇이 모여 다시 반 모임을 이어갔다.

초등 입문하자마자 쓰나미처럼 맞본 학교폭력 회의의 첫 경험과 담임교사 11명의 교체 탓일까 나는 학폭 회의 참석 이후 마음이 특전사처럼 단단해졌다.

c5921f10852b9b2684c7ec06cf32407c_1744609979_0455.jpg

나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때론 내게도 호주머니 속 박하사탕 두 알처럼 내가 언제고 쉬면서 당 충전할 작은 그 무엇이 필요했다. ©픽사베이

나는 예준이가 그간 만나온 11명의 50대 강사들과 틈나는 대로 면담을 했다. ‘예준이 정도면 장애아이가 너무 훌륭하죠, 오히려 비장애 아이들 중에 글 못 읽고 말썽꾸러기도 얼마나 많다고요. 의사소통에 다소 어려움은 있어도 친구들 안에서 지내는 데 큰 문제 없어요. 앞으로도 잘 자랄 겁니다. 어머니 잘 하고 계세요’라는 공통된 이 한 마디들이 나를 살게 했고 움직이게 했다.

‘그래,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 거야’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때론 내게도 호주머니 속 박하사탕 두 알처럼 내가 언제고 쉬면서 당 충전할 작은 그 무엇이 필요했다.

이것은 결코 나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삶과 죽음을 경험한다. 특히나 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장애 부모로서의 삶이 처음일 때, 교사, 치료사, 혹은 의사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닌 생의 마지막까지 동반해야 할 운명단어이다. 때문에, 장애 자녀와 함께 살아갈 이들이 이 험한 세상을 살아 수 있도록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라는 학문적 조언의 말 속에 반드시 잠시라도 박하사탕이 되어줄 위로와 격려의 말을 잊지 말라고 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의사, 교사, 치료사는 한 가족의 미래를 어루만지는 위대한 책임을 부여받은 자임을 잊지 말라 당부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와 같은 부모들은 그 말 한마디로 오늘을 숨 쉬고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교 후 찾은 언어 치료실.

치료가 끝나고 부모 면담시간이면 나는 면담 10분간 색연필과 색칠공부 노트를 예준이에게 건네곤 했다. 다시금 약물은 끊은 후, 다시 나타나는 혼잣말이며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을 흔드는 상동 행동을 의미 있게 대체할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예준이는 내가 가져간 색칠공부 노트를 단순히 칠하는 것을 넘어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실 책꽂이에 놓인 동화책의 그림을 대략 따라 그리고 그 시간만 되면 지난번 칠하던 노트를 꺼내 그 위에 겹 색칠을 하는 게 아닌가? 하루는 아들이 대기실에서 칠한 그림을 다른 학부모들도 예쁘고 신기하다며 칭찬하자 아이는 미소짓기 시작했고 심지어 치료실 실장님 덕분에 게시판에 한 달간 전시가 되기도 했다..

다시금 약물은 끊은 후, 다시 나타나는 혼잣말이며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을 흔드는 상동 행동을 의미 있게 대체할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자료출처: 픽사베이
다시금 약물은 끊은 후, 다시 나타나는 혼잣말이며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을 흔드는 상동 행동을 의미 있게 대체할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픽사베이

그때부터였다.

예준이는 집에 돌아와도 온종일 색연필로 색칠공부 드로잉북을 칠하거나 색연필 끝에 자신의 눈을 가져가며 시각추구를 시작했다. 때로는 내가 상동 행동을 오히려 강화하는 건 아닐까? 겁도 나기 시작했지만 나는 예준이의 마음과 머릿속으로 들어가 친구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이 오롯이 색칠하는 순간만큼은 그 곁에 나도 늘 함께였다.

하루에 2시간씩 어떤 날은 4시간 하교 후 치료실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자신이 보았던 것들을 가위로 오려 테이프로 붙이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화장실 마크, 담배 간판, 비상구 마크, 에어컨 실외기, 이발소 사인볼, 하수구 판 등이 아닌가? 사람들이 크게 관심 없는 것들을. 

늘 그 앞에 가서 멍하니 서 시각추구만 하던 아들은 눈으로 외우고 있었고 보지 않고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집안 화장실 입구며 방문에 붙이기 시작했고 때론 긴 노끈에 매달에 마치 방에 빨랫줄처럼 거미줄로 교차시킨 후 누워서 흔들며 시각추구를 했다. ‘엄마인 내가 미쳤나? 이래도 되는 걸까? 다시 약을 먹여야 하나? 왜, 예준이는 비장애 아이들이 미술학원에서 보통 그리는 사람과 풍경을 안 그리는 거지?’라는 생각에 걱정과 불안의 싹은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지만 나는 내 결심을 믿기기로 했고 그 싹은 절대 자라지 않도록 기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당을 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집 벽은 마치 흡사 무당집 풍경이 되어갔다. 결국, 고민 끝에 우드락 판을 만들어 벽에 원 없이 자신의 작품을 맘껏 붙이도록 방의 벽과 거실 벽을 내어주었다.

‘우와 예준아! 네 미술전시관 완성이다. 우리 아들 작가님이네.’ 그날 이후부터 다시 하얗게 드러난 벽, 집 앞 문방구에서 구입한 전지를 벽과 거실 바닥에 붙여주며 색연필의 범위를 넓혀 가도록 했다. ‘그래, 물감이 아니니까 잘 지워지고 괜찮을 거야.’ 그때마다 내가 미술에 대한 정보가 무지함이 아쉬웠지만 나 자신을 믿기기로 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됐다. 하루는 예준이가 무심코 방에서 성당 자매님 아들이 공모전에서 제작해 선물한 스케치북을 들고나와 색칠을 시작했다. '그래, 장애 멘토링 공모전이라고 했었어, 그래, 이제 기억난다! 베드로 형도 이거 했다고 했는데…. 예준아, 우리 이런 거 한번 도전해 볼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걸까 나는 무작정 공모전을 검색해 원서에 내 사연을 썼다.

이게 뭐라고 1차 합격자 발표날 왜 이리 떨리던지…. 누구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은 알 것이다. 그 결과를 기다리는 맛은 마치 로또 복권 긁는 것만큼 설렘과 걱정이 뒤엉킨다는 것을.

‘축하드립니다. 양예준 1차 합격! 다음 주 2차 드로잉 테스트를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들 생에 첫 합격 소식이었다.

그래, 찾았다. 내 호주머니 속 나를 숨 쉬게 할 박하사탕 두알!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