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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 장애 지원을 악용해 착취하는 기업들을 발견할 것이라며, 자폐 당사자들이 이런 현실에 대해 싸울 것을 촉구하는 게시물 내용. ⓒEmergent Divergence Facebook 캡처

【에이블뉴스 이원무 칼럼니스트】 매년 4월 2일만 되면 전 세계는 UN에서 정한 '자폐인의 날' 을 축하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어김없이 축하 의미에서 '자폐인의 날' 행사는 개최되었다. 하지만 행사를 듣는 내내 이전에 느꼈던 답답함은 다시 밀려오는 느낌인데, 그건 이후에 잠깐 언급하겠다. 행사 후엔 내 지인이 페이스북 내용을 캡처해 보여줬는데 '자폐인의 날'에 담긴 본질을 다시금 곱십으며 보는 듯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자폐성 장애는 정체성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폐인의 부모가 있다는 거다. 또한, 자폐인이 사람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폐인은 ‘자폐성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거다. '자폐인의 날'을 제외한 4월의 나머지 기간엔 법인, 기업들이 이득을 위해 자폐성 장애에 대한 지원을 악용해 착취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란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작년 오티즘 엑스포 행사가 떠올랐다. (원래 Autism의 뜻은 자폐증이지만, 여기선 자폐성 장애로 번역하기로 함)

작년 오티즘 엑스포 행사에선 자폐성 장애를 돈벌이 마중물로 이용하려는 걸 극명하게 잘 보여주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이용한 ABA 훈련프로그램 판매서부터 시작해, 보통 가격이면 살 수 있는 지능발달용 교과서를 발달장애인용이라는 이유로 비싸게 판다던지, 신약개발로 자폐 완화할 수 있다는 코너 등 자폐성 장애를 상품화하려는 경향이 역력했다.

하지만 빛, 소리, 촉각 등에 민감한 자폐인의 심신을 달랠 심신안정실도 방음벽이 잘 안 됐고 귀마개, 썬글라스 등을 주최 측에서 제공하지 않음은 물론, 그 방 안에 사람이 있는지를 식별할 식별표도 없어 자폐인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행사장 빛이 너무 강렬해 괴로워하며 소리 지르는 당사자들도 적지 않았다. 돈 앞에 자폐성 장애인의 존엄성은 안 중에도 없는 느낌이었다.

올해 '자폐인의 날' 행사 얘기로 다시 돌아가면, 이 행사에선 작년과 마찬가지로 오티즘 권리 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올해는 자폐인 당사자 2명과 보호자, 실무자가 함께 참여해 낭독했다. 낭독내용 가운데는 우리가 거주하는 시설은 최대한 일반 가정과 비슷한 환경으로 조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후견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등의 문장이 있었다.

그런데 시설을 일반 가정과 비슷한 환경으로 만들어도, 자신의 일상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갖지 못하고, 개인의 욕구, 의지와 관련 없이 정해진 일상을 수행해야 하는 등의 시설적 요소가 있다면 시설에 불과하다. 시설을 소규모화한다고 해도 시설적 요소가 있으면 시설이다.

자폐인 당사자들과 이들의 가족이 오티즘 권리선언문 제4조를 낭독하는 모습. ⓒ한국자폐인사랑협회 Youtube 동영상 캡처
자폐인 당사자들과 이들의 가족이 오티즘 권리선언문 제4조를 낭독하는 모습. ⓒ한국자폐인사랑협회 Youtube 동영상 캡처

정부는 시설 소규모화 정책을 편다고 하나, 이는 시설 중심의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없고 행정적 부담이 적고 돈도 적게 드는 등 정책 개선에 노력하고 있단 이미지만 보여주는 꼴이다. 게다가 시설은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박탈하는 곳이라, 시설 소규모화와 관련해 시설에 거주하는 개인의 존엄성 회복 조치 따위는 역시 없다. 탈시설을 통해 장애인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요구라면 정부로선 돈이 많이 드는 조치라 생각하며 꺼릴 터이니 말이다. 돈과 이득 앞에 장애인의 존엄성 따위는 ‘나몰라라’하는 형국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성년후견인이라는 게 피후견인의 선호와 의지를 알 수 있는 장치가 없어 피후견인의 요구는 무시되기 일쑤다. 더군다나 돌봄 요구가 심한 장애인의 경우 의지, 요구는 물론 선택을 알 수 없어 탈시설을 한다면, 강제적 탈시설이라 주장하는 건 오히려 언어만을 의사소통으로 여기고 대체의사소통 관련 지원, 관심 없이 장애인차별이 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기에 ‘자폐인의 날’ 행사에 저런 내용으로 오티즘 권리선언문을 낭독하는 걸 듣는 나로선 상당히 답답하면서도 고개가 갸웃거려지기까지 했다.

염수정 추기경의 축사도 ‘자폐인의 날’ 행사에 있었는데, 축사엔 장애가 없는 정상인이라는 발언, 자폐성 장애인은 깨끗하고 단순하고 밝은 것 같다는 등의 내용이 있었다. 장애가 없는 정상인이면 장애인은 비정상인가? 그런 ‘정상’이란 기준은 비장애인인 신경전형인이 정한 기준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군다나 옳지 않은 것엔 아니라고 얘기하거나, 단순하지 않고 생각이 복잡한 자폐성 장애인도 적지 않은 등 자폐인 개개인은 각양각색이다.  그러니 그런 얘기를 들으며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아까 자폐성 장애를 정체성으로 인식하지 않는 자폐인 부모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인식이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엔 현실이다. 그런 인식이니, 자폐 치료는 여전히 팽배할 수밖에 없다. 그 치료엔 비급여가 많아 의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기까지 한다. 사실 자폐를 정체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다 보니 부모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족지원체계는 장애인과 그 가족의 욕구, 선호, 의지 반영 없이 오로지 예산으로 지원 대상을 제한하는 식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의료급여엔 부양의무제 폐지가 전혀 없고 생계급여마저도 부양의무제가 완화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부모들이 할 건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및 가족지원체계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는 거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의 생각 변화는 없고 태도가 완고하니, 부모들은 스트레스를 오히려 상대적으로 약한 자폐인 당사자에게 풀며 자폐 치료 등을 추구하게 되는 거라 본다. 거기서 탈시설 반대 정서의 토양도 자라는 거지만 이건 옳지 않다.

그런 배경인지라 나로선 ‘자폐인의 날’은 자폐인과 함께 일하는 관계자나 자폐인의 부모에게는 위로하는 자리, 윗전들은 칭찬받는 자리지만, 자폐인 당사자에겐 욕과 조롱, 경멸, 멸시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거다. 자폐인은 존재에서 지워지고, 돈 앞에 자폐인의 존엄성은 내팽겨침을 당한 기분이랄까? 반면 자폐인 긍지의 날이 나로선 축제의 날이지만 말이다.

4월 2일 개최된 ‘자폐인의 날’ 행사에 정부 인사들과 장애인단체, 내외빈 인사들이 파란색 점등식을 하는 모습. ⓒ이원무
4월 2일 개최된 ‘자폐인의 날’ 행사에 정부 인사들과 장애인단체, 내외빈 인사들이 파란색 점등식을 하는 모습. ⓒ이원무

올해 3월엔 경북 의성군에 산불이 일어나 온 나라가 비상에 걸렸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산불로 인해 발달장애인 가구 8가구가 전소됐으며, 시설 거주인, 와상장애인이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장애학계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재난 위험 감소 및 대응 체계를 철저히 점검하자며, 재난의 예방, 대피, 복구, 회복 포함한 전 과정에서 모든 장애 유형과 사회적 장벽 고려하는 장애 포괄성 원칙 수립과 재난 대응에서의 장애인 분리 통계 구축 등을 제안하고 있다.

4월 1일 MBC 뉴스데스크에 따르면, ▲대피문자 발송도 늦었고, 대피할 곳 정보를 빠뜨리는 등 재난경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고, ▲전국 산불 진화인력의 94% 평균연령이 62%이며 이들이 기간제 근로자란 점, ▲산림청 소속 헬기의 노후화 등의 문제들이 지적되며, 장비와 전문인력 개선을 넘어 소나무에 쏠려 산불에 취약한 우리 산림의 체제를 바꾸는 근본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난경보 시스템 강화, 산불 진화인력을 젊은 사람들로 바꾸며 돈도 많이 주는 등 인력 처우 개선도 산불 예방에 좋은 대책이긴 하다. 하지만 필자가 느끼기엔 보도에서 밝혔듯 소나무 중심으로 산불에 취약한 우리 산림 체제 자체를 바꾸는 게 근본 대책이라 본다. 왜냐면 소나무는 산성 물질을 내뿜는 솔가루를 떨어뜨려 다른 식물이 성장하기 어렵게 만들어 식물 다양성이 줄어들게 만든다. 그리고, 송진 등 소나무의 전체 20%가 기름 성분이다. 기름과 산불은 찰떡궁합이니, 결국 산불이 크게 번지게 되는 일종의 화약고 역할을 소나무가 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2014년부터 10년 동안 산림 당국의 인공조림 현황에선 활엽수는 9만 ha인 반면, 소나무 포함한 침엽수는 13만 5천 ha였다. 2023년 말 실제 조림 실적도 전체 1558ha 가운데, 침엽수 비율이 61%로 훨씬 높았다(출처: 불에 취약한 소나무 비중 낮추자는데…소나무 탄 곳에 또 소나무 심어, 한겨레 신문, 2025년 4월 2일 기사). 이처럼 우리나라 산림청은 침엽수 중심 산림 정책을 펼치고 있다. 왜 그럴까?

제지, 건축, 가구 산업에서 침엽수 활용도가 높고 침엽수는 활엽수에 비해 빨리 자란다. 또한, 침엽수, 활엽수의 혼합림보단 단일 수종 침엽수로 했을 때 관리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침엽수는 탄소 흡수율이 높아 탄소배출권 확보에 유리하다. 그러니까 시장성 있고, 경제적 이익, 돈과 연관된 그런 배경 때문에, 산림청은 침엽수 중심 산림 정책을 시행하는 거고, 이건 산주들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산림청이 소나무 플랜테이션을 통해 경제적 이익에 골몰한 사이, 잊을만하면 대형 산불은 터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공중에 이산화탄소는 증가하고, 이게 계속되면 온실효과는 상당히 커지고 이에 따라 기후위기는 더욱 증폭될 거다. 산불 등의 재난으로 피해는 장애인, 노인, 가난한 사람들 등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많이 생기게 된다.

산불 연기가 공중에 퍼지는 모습. ⓒMBC News Youtube 동영상 캡처
산불 연기가 공중에 퍼지는 모습. ⓒMBC News Youtube 동영상 캡처

5년 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 19 요인 중 하나는 기후위기였다. 기후위기로 인한 야생동물 서식지 훼손은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후위기가 계속 증폭되면 코로나 19보다 더욱 강력한 바이러스가 이후 전 세계를 강타할지 누가 알겠는가? 코로나 19로 인한 감염병 예방 명목으로 실시된 시설 코호트 정책으로 신아재활원 등의 장애인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었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기후위기가 더욱 심각해지는 장래에 전염병 발생하면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에게 전보다 더 큰 집단감염 일어날까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니 참나무 등 활엽수 비중을 좀 더 늘리며 이를 통해서 식물의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식으로 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와 환경단체의 의견을 이제는 산림청이 들어야 한다고 본다. 활엽수는 마치 물이 꽉 찬 수도관 같고, 내화성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기후변화로 한반도 서쪽은 활엽수로 많이 변화되는 추세기도 한 점을 생각해보면, 산림청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한편 호주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땅에서 자란 풀과 축적된 가연성 물질을 사전에 제거키 위해 원주민들이 불을 피우는 문화적 소각 방식이 진행되고 있다. (출처: 오스트레일리아 익스플레인드: 산불 보호 및 원주민 컨트리 재생을 위한 문화적 소각 관행, 2025년 2월 17일, 호주 SBS 한국어 사이트 기사) 이 방식은 산불 예방을 목적으로, 원주민들이 식물의 수명 주기와 바람 방향, 습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공기온도를 깐깐하게 확인하며 신중하게 불을 피우는 방식이자 이들의 오랜 관습이기도 하다. 이런 호주의 사례를 참고해 이 방식을 산불 예방 방안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변형해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활엽수 비중 늘리기, 문화적 소각 방식을 우리 실정에 맞게 도입하기 등을 하게 된다면, 산불 예방에 도움이 되고 설령 산불로 피해를 입어도, 그 지역이 자연적으로 복구될 수 있음은 물론, 이를 통해 온난화와 기후위기를 줄이게 되는 근본 실마리가 마련되지 않을까? 그러면 장애인, 노인 등이 건강권, 생명권 침해를 받거나 산불로 피해를 받는 등의 일이 아울러 줄어들게 되는 방향으로 가게 될 터이니 말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장애인, 노인 등을 차별하는 정책을 철폐하는 조치까지 더해진다면, 이들의 건강권, 생명권을 증진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돈보다 더욱 중시하는 사회 모습이 요즘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을 ‘자폐인의 날’ 행사와 경북 의성 산불사태를 통해 요즘 더욱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참 살기 어렵다고 느낀다. 이런 모습을 바꿔 이제부터라도 돈보다 인간의 존엄성, 생명을 더욱 중시여기는 대한민국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나저나 요즘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 ‘보물섬’의 주인공 서동주(박형식 분)가 나쁜 인간들에게 물고문을 당하면서 ‘돈이 목숨보다 소중합니까?’란 말을 듣는데, 그 대사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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