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지폐 샘플. ©서인환
【에이블뉴스 서인환 칼럼니스트】시각장애인들이 지폐 단위를 구별하는 방법은 돈의 크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들은 크기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시각장애인들은 화폐 구분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 시각장애인들은 호주머니별로 각각 돈을 구분하여 보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이 돈은 얼마짜리인지 물어보고, 만원이면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고 천원이면 왼쪽 호주머니에 넣는 등으로 구분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면서 시각장애인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지폐에 점을 찍기로 했다. 지폐 전면 오른쪽 중앙 끝에 만원은 점을 세 개, 오천원이면 점을 두 개, 천원이면 점을 하나 찍는 것이다. 이 점은 검은 점으로 눈으로는 구분을 할 수 있으나, 손으로 만져서 촉각으로 구분해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점으로 돈을 구별할 수 없었다. 차라리 발달장애인을 위해 점을 찍었다고 했으면 박수를 받았을까?
나는 장애인과 관련된 화폐가 있지 않을까 조사를 해 보다가 암호화폐에서 장애인을 상징하는 듯한 글과 그림을 보게 되었다. 바로 Cordano(코르다노)라는 화폐이다. 이 화폐는 350억 개가 현재 유통되고 있다.
코르다노 암호화폐의 문양이 A라는 글자에 화폐단위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두 줄을 그어 두었다. 한국 화폐 W에 두 줄을 긋듯이 말이다. 이 모양을 뒤집으면 1981년 유엔이 제정한 세계 장애인의 해 심블 모양이 된다. 거기다가 ADA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ADA는 장애인의 평등과 완전한 참여를 주창한 시대의 충격의 시동을 건 미국장애인법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착각이었다. ADA는 코르다노의 의미를 나타낼 뿐이었고, 심블도 장애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래도 그런 오해를 할 만한 것은 장애인 입장만 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탓일까?

좌측 상단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코르다노 암호화폐, 네팔의 주화, 맨섬의 주화, 예멘의 장애인의 해 기념 주화, 소말리아 장애인의 해 기념 주화, 남아공 장애인의 해 기념 주화. ©서인환
네팔은 1981년 세계 장애인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기념주화를 발행하였다. 심블은 장애인의 해를 상징하는 것이며, 목발의 두 막대가 아래에서 하나로 모이는 모습에다가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는 모양을 나타낸다. 그리고 네팔어로 ‘세계 장애인의 해’라고 테두리를 만들었다. 이 주화로 인해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장애인의 복지를 인식하게 해 주었다. 50파이사이다.
맨섬은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있는 섬나라이다. 영국 의회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는 영국 왕실의 속령국이다. 이 국가에서 1981년에 세계 장애인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점자를 발명한 루이 브라이유(Louis Braille) 상을 그려 넣고 점자로도 루이 브레일이라고 박았다. 25리얄이었다.
소말리아는 1981년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해를 기념하여 여러 가지 노력을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다시 1983년 장애인의 해를 정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주화를 발행했다. 도안은 브라이유 인상 둘레에 세계장애인의 해라고 적었다. 이미 세계 장애인의 해는 지났지만, 그 해에 부족했던 기념을 확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세계 장애인의 해 심블을 추가하엿다. 150실링 주화다.
남아공에서는 1986년에 1랜드 주화를 만들었는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재활하여 기립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런 이미지는 최근에는 잘 볼 수 없지만, 과거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재활 패러다임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사용되었었다. 남아공에서도 1986년을 국내 장애인의 해로 지정한 것이다. 소말리아는 장애인 주화를 은화로 만들어 기념주화로서 소장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만들었고, 다른 나라의 주화들은 일반 유통으로 사용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장애인의 해 심블을 넣은 것은 세계 공통으로 사용되는 심블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면서 점자를 발명한 루이 브라이유가 모델로 등장한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브라이유가 차지하는 위상이다. 장애인 중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위인 대열에 올라 있다는 것이다. 누가 세종대왕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자, 왕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질문한 사람이 그것은 과거의 직업이고 지금은 조폐공사 전속 모델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맞대어 말하자면 브라이유가 장애인의 전속 모델인 셈이다. 루이 브라이유가 점자를 발명하고 맹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지만, 점자는 인정받지 못했다. 비장애인의 글을 배워야지 별도의 문자를 사용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후에 점자는 시각장애인의 문자로 인정되고, 루이 브라이유는 프랑스를 빛낸 인물이 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두 번째로는 요즘은 장애 유형이 다양하고 어느 장애가 더 중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시각장애인이 가장 불쌍하고 심각한 장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명이 열 냥이면 눈이 아홉 냥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니 루이 브라이유가 더욱 위대하게 보엿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과 같다.
장애인의 해를 기념하는 방법으로 주화를 만들어 유통하였다는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교를 믿는 어느 대통령이 출마를 하여 선거를 할 때에 십원짜리에 탑을 넣어 유통햇다는 말이 진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장애인을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모르는 이가 없도록 하는 방법으로는 더 이상 좋은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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