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난감 블럭 조립에서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도 다양한 종류의 블럭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권리 또한 그러할 것이다. ⓒ pixabay
【에이블뉴스 김세이 칼럼니스트】 자폐인의 삶에 대해 현실 개선의 목소리를 내는 진영으로는 자폐 당사자 진영 외에 부모 진영도 있다. 사실 이렇게 표현하기 어색할 정도로 발달장애 전반을 비롯한 자폐계 내에서의 발언 구조는 여전히 부모 의견 쪽으로 무게중심이 많이 쏠려 있다.
부모가 자폐 당사자의 조력자가 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며, 이 글을 통해 오히려 권장해 말하려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서 있는 입장이 다르면 보는 것이 달라지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당사자의 주도성과 자율성 역시 중요한 숙제로 남는다.
이렇다보니 자폐인 본인을 자폐 경험의 당사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 일부가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바로 인권 옹호를 위한 투쟁 대상을 부모 진영으로 두는 경우이다. 물론 당사자의 부모가 곧 당사자 그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하고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맞다.
그러나 양 측 모두 자폐인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서고 있을 이들이다. 끝내 협력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남는 게 이 글의 계기가 되었다. 단지 다른 어려움을 겪어 이해관계가 일정 부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생기는 의견차라면, 그 다른 입장을 인정하고 협력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자폐 당사자 진영과 부모 진영의 이해관계 충돌 사례들
잠시 다소 아쉬운 말을 하자면, 자폐인에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서는 양쪽이니 하나가 되면 끝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게만 결론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폐 당사자들과 당사자 부모 간의 입장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우선 부모의 돌봄 고통과 당사자로서 겪는 어려움 중 어떤 것이 먼저고 중요하냐는 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은 자폐인 권리에 대해 생산적인 방향으로의 대화 진전을 막는 패턴이다. 정말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나 부모와 자폐 당사자 간의 입장 차를 분명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해관계 충돌 사례에서 '돌봄' 부분은 이 예시만이 아니더라도 핵심 지점으로 볼 수 있다. 장애 자녀의 부모가 사회에서 고생을 겪고 정서적 고충이 쌓이기도 하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고, 장애 당사자가 겪는 정서적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에 사실끼리의 충돌이라 끝나기 힘든 것이다.
이렇게 당사자의 목소리를 지울 위험만이 아니더라도, 부모들은 양육자 및 보호자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당사자들은 권리의 주체로서의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치료, 재활, 교육, 사회적 통합에 대한 이야기와 환경 변화, 차별 해소, 자기 표현, 권리운동이 대립처럼 이야기된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자폐 당사자 진영과 부모 진영이 함께할 수 있는 사례들
그나마 부모 진영으로서의 양육자들 역시 돌봄, 치료, 재활, 교육만이 아니라 신경다양인으로 사회에서 살아갈 자녀의 미래를 진심으로 그려보고 함께하는 흐름이 커지고 있다. 신경다양성의 확산과 함께 자폐를 신경다양성의 일환으로 존중하는 움직임도 이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자폐인들 역시 신경적 소수자 정체성만으로 모든 타협을 거부하기보단, 삶의 여러 충돌과 압박을 겪으면서 현실주의적이고 절충적인 시각을 찾는 경우가 많으니 근본적인 입장차에 비하면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평행선만 걷는 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자폐 당사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긍정하는 일에서 자폐 당사자 진영과 부모 진영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고, 그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그런 긍정적인 미래를 원천적으로 막아서는 안 될 일이다.
부모 진영이 당사자의 목소리를 가리기만 한다고 보는 것도 성급한 일반화이다. 당사자의 자리를 차지하는지 같은 이야기는 민감할 수 있어도, 자폐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이 주어지는 개선된 삶을 함께 주장하면서 협력적 동반자가 될 여지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예시를 들자면 자폐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서비스와 지원 체계 강화, 감각 자극을 줄인 자폐 친화적 환경 만들기를 들 수 있다. 실제로 이들은 자폐 당사자들과 당사자의 부모님들이 많이 함께하는 컨텐츠에 속한다.
그 외에도 정신건강 지원, 사회적 낙인 타파 등에 있어 함께 목소리를 낼 여지가 많을 것이다. 이렇듯 다른 입장으로 시작하더라도 같은 목표를 바라볼 수 있고, 서로의 경험으로 보완하는 쪽으로 협력할 여지가 많다.
자폐 당사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협력적 동반자가 되려면
우선 함께할 수 없다고 단정짓기보단 비판적, 발전적 협력의 여지를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부모 진영이 무조건 좋다거나 무조건 나쁘다는 일차원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들은 자폐를 다루는 이야기에 필요하고, 필요에 의해 목소리를 낸 이들이다. 또한 일차원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당사자 진영 역시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부분이다.
부모는 조력자, 동맹이 될 수 있지만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을 반복한다면 너무 선을 긋는 언어가 될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모의 경험은 부모의 경험이고 자폐인의 삶의 경험은 자폐인의 경험이라고 하면 다들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자폐 당사자의 권익은 자기결정권의 존중과 자기 권리 옹호를 중심에 두고 부모 진영이 이를 보완하며 협력하는 위치일 때 건강한 협력적 동반자 모델이 만들어질 것이다. 서로의 경험은 분명히 영영 갈라설 여지보다는 힘을 합칠 여지가 많다.
이러한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을 위해서는 당사자들과 부모 집단과의 열린 대화와 상호 이해 또한 필요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책이 짜이는 과정에서 지금의 발언권 구도에 비하면 자폐 당사자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발언권을 가지도록 되는 것이 자폐인 권익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도 자폐인의 부모 분들께서 대승적 차원으로 납득해 주시면 좋겠다는 입장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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