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하석미 칼럼니스트】 세상은 변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전국 여행지학교와 관공서공공기관은 교통약자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꾸준히 개선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여전히 가장 변화가 더딘 곳이 있습니다바로 종교시설입니다.

종교는 늘 자비와 사랑을 강조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모두가 평등하다는 가르침은 사찰이나 교회의 법문과 설교 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하지만 정작 그 종교시설을 찾는 순간교훈과 현실의 괴리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장애인 화장실있으나 마나 한 시설

많은 사찰과 교회에는 여전히 장애인 화장실이 없습니다설령 설치되어 있더라도출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가 많습니다출입구 앞에 신발들이 가득 놓여 있는 곳을 휠체어가 통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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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역할을 못하는 장애인화장실. ©하석미


또 다른 문제는 있어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입니다문고리가 부서져 잠기거나 열리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화장실공간이 너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하는 화장실이 흔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장애인 화장실을 알리는 마크가 붙어 있지만문 폭이 너무 좁아 진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겉보기에는 배려한 시설 같지만실제 이용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으로 설치된 셈입니다.

교회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웅장한 건물은 세워놓았지만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주차장 규모에 비해 장애인 주차구역은 고작 한두 대뿐이며그것마저 지켜지지 않아 정작 장애인 당사자는 주차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잦습니다.

사찰 안의 찻집그러나 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다

사찰을 찾는 즐거움 중 하나는 전통적인 찻집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경험일 것입니다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휠체어 사용자가 출입할 수 있는 찻집은 거의 전무합니다계단만 있고경사로는 없습니다.

낙산사 찻집, 2017년 민원 이후에도 남은 문턱. ©하석미
낙산사 찻집, 2017년 민원 이후에도 남은 문턱. ©하석미
화계사 - 턱 앞에서 멈춘 휠체어. ©하석미
화계사 - 턱 앞에서 멈춘 휠체어. ©하석미

낙산사의 찻집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이미 2017년에 민원이 제기되어 개선 약속을 받았음에도, 2024년에 다시 찾은 그 사찰은 여전히 턱이 남아 있었습니다계단 두 칸이 한 칸으로 줄었다고 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선이라는 이름 아래 최소한의 조치만 한 셈입니다.

개선 약속그러나 답변뿐인 현실

접근권 보장을 위한 경사로 설치 및 화장실 수리 요청. ©하석미
접근권 보장을 위한 경사로 설치 및 화장실 수리 요청. ©하석미
종교시설 내 편의시설 불편에 대한 행정기관의 공식 답변. ©하석미
종교시설 내 편의시설 불편에 대한 행정기관의 공식 답변. ©하석미

봉선사나 길상사 등 여러 사찰과 교회에서 민원을 접수한 결과는 비슷합니다관계기관은 문화재 시설이라 시설 변경에 시간이 필요하다”, “사찰 관리 주체의 권한이라 강제할 수 없다는 답변만을 내놓습니다하지만 그 사이에도 장애인은 불편을 겪고결국 종교시설 방문 자체를 포기하게 됩니다종교가 추구하는 자비와 평등이 가장 필요한 순간바로 이 지점에서 멈추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시설이 진정한 자비를 보여주려면 종교시설은 단순히 기도와 예배만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그곳은 삶에 지친 이들이 위로를 얻고누구나 평등하게 안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그렇기에 배리어프리 시설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장애인 화장실의 설치와 실질적 이용 가능성 확보주차공간 확충경사로 마련은 최소한의 시작입니다여행지와 마찬가지로 종교시설 역시 접근권을 보장받아야 합니다종교가 말하는 사랑과 자비가 형식이 아니라 실천이 되려면먼저 문턱부터 낮추어야 합니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종교시설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면그들의 가르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진정한 사랑과 자비는 종교적 설법에만 있지 않습니다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그 자체가 곧 종교의 실천이자 신앙의 시작일 것입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