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이 주최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이하 드림팀)’ 20기가 지난 8월 ‘행동하는 장애청년드림팀’을 주제로 영국, 미국, 호주 3개국 연수를 마쳤다. 그 중 리플레이(Re:Play) 팀은 8월 1일부터 7일의 기간 동안 영국 런던, 버밍엄을 방문해 휠체어럭비를 주제로 지속 가능한 장애인체육 정책 및 지원체계를 살피고 돌아왔다. 스포츠(Play)를 통해 삶을 다시(Re) 설계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리플레이 팀은 청년 휠체어럭비 선수 이용준(휠체어럭비 국가대표), 박유원(휠체어럭비 선수, 팀리더)와 작업치료사 탁현우, 정예원 청년이 모여 구성한 팀이다. 5박 7일의 연수 과정을 총 4편의 기고문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스토크 맨더빌 몰러스, 그곳에서 찾은 휠체어럭비의 미래
2025년 8월 3일, Re:Play팀은 한국 휠체어럭비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영국 현지의 스토크 맨더빌 몰러스(Stoke Mandeville Maulers) 팀(이하 몰러스팀)을 찾았다. 패럴림픽 운동의 발상지인 스토크 맨더빌 스타디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몰러스팀은, 단순히 경기력을 넘어 장애인 스포츠의 가치를 실현하는 특별한 공동체였다. 이번 방문은 한국 훈련 방식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한 중요한 여정이었다.

1장애청년드림팀 Re:Play팀과 몰러스팀이 훈련종료 후 다함께 찍은 단체사진. ©Re:Play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의 가치
몰러스팀은 영국 대학교 내 체육관에서 훈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장애인 스포츠의 문턱을 낮추는 거대한 플랫폼이 된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곳에서 선수들은 자유롭게 훈련하고, 누구든 찾아와 함께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시설 제공을 넘어, 장애인 스포츠가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국에서 훈련 세션은 주로 독립된 체육관에서 진행되며, 접근성 측면에서 아직 많은 한계를 보인다. 반면, 몰러스팀이 활용하는 대학 체육관은 그 자체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공간이었다. 이처럼 개방된 시설은 지역사회와 스포츠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더 많은 잠재적 선수들을 발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몰러스는 초보자부터 국가대표 수준의 선수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팀 문화를 지향한다. 주 1회 정기적인 훈련을 통해 기술 향상과 체력 훈련을 병행하며, 훈련에 필요한 휠체어와 장비도 제공하고 있어 접근성이 높다. 특히 패럴림픽 정식 종목인 4인제(4s) 경기뿐만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5인제(5s)와 주니어 프로그램까지 운영하며 다양한 계층의 참여를 독려한다.
헬렌 톰슨 선수 인터뷰 “휠체어럭비, 삶을 열다”
몰러스팀의 베테랑 선수 헬렌 톰슨(Helen Thompson)과의 인터뷰는 휠체어럭비가 한 사람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휠체어럭비에서 2.5점 클래스 선수로 뛰는 그녀는, 영국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베테랑이다. 그녀는 “휠체어럭비는 장애가 닫아버린 만큼의 문을 새로 열어준 스포츠”라고 말하며, 단순한 경기를 넘어 삶을 회복시키는 통로였음을 강조했다.
질문: 클럽의 훈련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답변: 저희 몰러스는 영국 대표팀(GB) 훈련 방식을 따릅니다. 4개월 주기의 사이클로 훈련을 진행하고, 전진 플레이, 템포 조절 같은 기술 훈련을 체계적으로 실시하죠. 선수들의 기량을 균형 있게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헬렌 코치 인터뷰 모습. ©Re:Play팀
질문: 오늘 한국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새로운 선수가 오면 어떻게 적응하게 되나요?
답변: “몰러스의 가장 큰 장점은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초보자든 경험자든 상관없이 누구든 금방 적응할 수 있어요. 이곳에는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질문: 국가대표팀과는 어떤 연계가 있나요?
답변: 영국 내 모든 팀은 GB 소속입니다. 몰러스에서 뛰어난 선수가 나오면 GB 대표팀 선발 경로(Pathway)에 올라가게 되죠. 저희는 이런 선수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또 팀에 남아 활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질문: 클럽 운영은 어떻게 재정이 마련되나요?
답변: 우리는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합니다. 다행히 스폰서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DHL은 경기용 키트, BBK는 체육관 임대 비용을 후원해줍니다. 영국 대부분의 클럽이 대형 럭비 구단과 연결되거나, 이렇게 민간 후원을 받습니다.
질문: 휠체어럭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답변: 처음에는 단순히 ‘집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장애 이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거든요. 구글에서 ‘내 근처 휠체어 스포츠’를 검색했는데 농구는 마음이 가지 않았고, 가까운 지역에서 럭비 클럽을 찾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첫 세션을 해봤는데 잘 맞았고, 계속 초대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오게 됐습니다.
질문: 휠체어럭비가 인생에 어떤 변화를 주었나요?
답변: 휠체어럭비는 제게 장애가 닫아버린 만큼의 문을 새로 열어준 스포츠였습니다. 국가대표로 세 번 선발되는 영광을 얻었고, 일주일에 3~4회 훈련하면서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크게 좋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고, 함께 해외에 나가 다른 나라 팀을 지도할 기회도 얻었어요. 아마 휠체어럭비가 아니었다면 이런 경험은 결코 없었을 겁니다.

헬렌 코치와 Re:Play팀 이용준, 박유원의 기념촬영. ©Re:Play팀
헬렌 선수는 휠체어럭비 덕분에 세 번이나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영광을 얻었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았으며, 무엇보다 소중한 동료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휠체어럭비가 단순한 운동을 넘어 한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활력을 되찾아주는 힘을 가졌음을 일깨워주었다.
휠체어럭비, 경계를 넘어 마침내 풍경을 마주하다
영국에서의 경험은 코트 위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팀원들에게 영국에서의 이동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한국에서는 울퉁불퉁한 보도, 턱, 파손된 도로 때문에 늘 길에 온 신경을 쏟아야 했다.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그러나 영국은 달랐다. 불편함 없이 잘 정비된 도로와 세심한 접근성 덕분에 길 위의 작은 위험에 집중할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이동 그 자체를 여유롭게 즐기며, 창밖에 펼쳐진 영국의 풍경을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이는 물리적인 인프라가 갖춰졌을 때, 장애인들이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휠체어럭비가 삶의 문을 열어준 것처럼, 잘 갖춰진 인프라는 그 문밖의 세상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열쇠였다.
이번 방문은 한국 휠체어럭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단순히 경기력 향상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모두에게 열린 공간을 만들고,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바로 휠체어럭비 선수들이 경계 없이 삶을 누리고, 더 많은 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연결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배움의 여정이었다.

Play팀 이용준과 박유원이 몰러스팀의 훈련 세션에 참여하는 모습. ©Re:Play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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