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이복남 객원기자】“이 분이 저희 어머니라고요?” 영화 ‘얼굴’은 태어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의 이야기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은 시각장애인 임영규(권해효 분)와 아들 임동환(박정민 분) 앞에 어느 날 엄마 정영희(신현빈 분)의 백골 사체가 나타난다. ‘얼굴’은 백골 사체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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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굴’ 포스터. ⓒ영화 얼굴 포토

인터넷에서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얼굴을 보러갈 생각이었다. 한 시각장애인과 얼굴을 같이 보러 가자고 했더니, “아 그거 화면해설 하던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제작하는 한시련 9월의 화면해설 영화로 '얼굴'을 선정해서 가치봄 무료 상영회를 한다고 신청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아뿔싸! 아쉽게도 ‘얼굴’ 상영 날짜는 이미 지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화면해설 없는 영화 ‘얼굴’을 보았다.

영화 ‘얼굴’에 대해 이 글을 쓰기 전에 네이버에서 관람 후기를 훑어보았다. 아직 상영 중인 영화여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포주의라고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그 대신 연상호 감독이 2억의 저예산으로 3주 만에 이 영화를 완성 시켰고 주인공 권해효 뿐 아니라 권해효의 젊은 시절까지 1인 2역을 연기한 박정민을 극찬했다.

그러나 필자는 영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권해효가 시각장애인으로 연기하는 것과 박정민이 권해효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1인 2역에 관심이 있었다.

시장 노점에서 도장을 파는 젊은 임영규. ⓒ영화 얼굴 포토
시장 노점에서 도장을 파는 젊은 임영규. ⓒ영화 얼굴 포토

권해효나 박정민이 시각장애인으로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문제는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데 당시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을 장님이라고 불렀다.

예전부터 시각장애인은 장님 소경 봉사 맹인 등으로 불렸다. 조선시대에도 맹청(盲廳)이 있었고 관현맹인(管絃盲人) 맹인독경(盲人讀經) 등이 있었는데 심청이의 영향인지 사람들은 봉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 것 같았다.

시각장애인학교는 처음부터 맹학교라고 했는데 비장애인 아이들은 여전히 “봉사 봉사”하고 시각장애인들을 놀려서 부모님들은 많이 속상해한다고 했다.

서울맹학교는 1913년에 설립된 제생원 맹아부에서 시작되었는데 6.25이후에 설립된 학교는 처음부터 맹학교라고 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맹인보다는 시각장애인이 공식 용어가 되면서 맹학교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변경이 되었으나 서울맹학교를 비롯하여 부산맹학교 대전맹학교 등은 동창회에서 맹학교를 고집했다고 한다.

1981년 ‘장애인복지법’ 제정부터 장애유형이 시각장애인으로 명기가 되었으므로 ‘장애인복지법’에서 캡처를 하려고 했더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시설 화재’로 캡처가 불가능했다.

임영규를 인터뷰하는 김수진 PD. ⓒ영화 얼굴 포토
임영규를 인터뷰하는 김수진 PD. ⓒ영화 얼굴 포토

임영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이런 임영규를 김수진(한지현 분) PD가 다큐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임영규의 아들 임동환이 아버지 임영규의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수진 PD는 임영규에게 젊은 시절에 대해 질문을 하곤 했다.

그때 임동환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경찰이었는데 임동환의 어머니 정영희(신현빈 분)의 유골이 백골 사체로 발견 되었다고 했다. 임영규의 아내이자 임동환의 어머니 정영희는 40년 전에 시각장애인 남편과 갓난아이를 버리고 사라졌다.

실종된 정영희는 사진 한 장도 없어 임동환은 엄마 얼굴도 알지 못했다. 임영규는 시각장애인인데 아내도 없이 아들 임동환을 어떻게 길렀을까. 심청전의 심봉사도 갓난아이 심청이를 길렸지만.

경찰에서는 정영희의 백골 사체를 수습해서 임영규와 임동환 부자 뿐 아니라 정영희의 언니 와 동생도 같이 불렀다. 임동환은 이모나 외삼촌과 별로 왕래가 없었던 모양이다.

정영희의 장례식. ⓒ영화 얼굴 포토
정영희의 장례식. ⓒ영화 얼굴 포토

김수진 PD가 임영규의 다큐를 찍고 있었기에 시체 보관소에도 같이 갔다. 이모와 외삼촌은 정영희가 어릴 때 집을 나갔으나 아무도 정영희를 찾지 않았다. 이모나 외삼촌은 정영희가 못 생겨서 찾지 않았다고 했다.

이모와 외삼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약간의 유산을 남겼는데 정영희가 나타났다 해도 그 유산을 나눠 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임동환은 유산을 생각지도 않았기에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김수진 PD였다. 김수진 PD는 정영희의 이야기가 특종감이라고 생각해서 가방에 카메라를 몰래 숨기고 임동환을 따라다녔다.

경찰이 오래되어서 밝히기는 어렵겠지만 정영희는 타살된 것 같다고 했다. 임동환은 정영희의 죽음을 파헤쳐 보기로 했다. 물론 김수진 PD가 동행했다.

정영희의 일생은 청풍섬유로 시작되었다. 1970년 열악한 환경의 의류공장이라 설마 시국영화는 아니겠지, 임동환은 당시 청풍섬유에서 정영희와 같이 근무했던 몇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청풍섬유에 시다로 근무했던 정영희. ⓒ영화 얼굴 포토
청풍섬유에 시다로 근무했던 정영희. ⓒ영화 얼굴 포토

청풍섬유에서 정영희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정영희가 못 생겨서 괴물이라고 했고 별명이 똥걸레라고 했다. 똥걸레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계기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정영희가 지적장애인인가 싶었으나 그 후에 나온 이야기는 결코 지적장애인이 아니었다.

청풍섬유 백주상(임성재 분) 사장은 사람 좋은 사진사였다. 당시만 해도 사진이 귀했던 시절인데 백주상은 사진 찍기가 취미라 카메라를 메고 다니면서 누구라도 마음에 들면 사진을 찍어서 직접 인화까지 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악덕 사업주이자 난봉꾼으로 지독한 빌런이었지만, 사람들은 백주상이 빌런임을 잘 알지 못했고 설사 알았다고 해도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임영규는 청풍섬유 앞에서 도장을 파고 있었는데 손님이 없었다. 그때 착한 정영희가 도장을 파러 왔다. 임영규는 첫손님이라며 무료로 해주었다.

정영희의 소문으로 간간이 손님도 들어왔고 정영희는 주먹밥을 해다 주기도 했다. 주변 상인들은 "영규는 좋겠다, 저런 절세미녀가 주먹밥도 해주고."라며 다른 놈이 채 가기 전에 얼른 결혼하라고 부추겼다.

임영규와 정영희는 청계천 거리에서 찬물 한 그릇 떠 놓고 백주상의 주례로 결혼식을 했다. 임영규와 정영희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

임영규와 정영희의 결혼식. ⓒ영화 얼굴 포토
임영규와 정영희의 결혼식. ⓒ영화 얼굴 포토

임동환이 다음으로 찾아간 사람은 청풍섬유에서 정영희의 사수였다는 이진숙(차미경 분)이었다. 이진숙은 아들 부부와 같이 임동환과 김수진을 만났다.

청풍섬유에서 이진숙은 재봉사였고 정영희는 시다였는데 정영희가 나이가 더 많았다. "영희 언니는 내 시다였는데 내가 언니한테 못할 짓을 했다."라며 자신이 겪었던 오랫동안 억눌렀던 사연을 눈물로 하소연했다. 정영희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어린 회한의 눈물이었다.

이진숙은 사장 백주상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진숙이 정영희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정영희가 백주상 사장에게 따졌다. 그리고 정영희는 백주상이 성폭행범이라고 피켓시위까지 했다.

이진숙은 정영희에게 누가 이렇게까지 하라고 했느냐고 오히려 정영희에게 화를 내며 대들었다. 백주상은 자기가 그런 거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 정영희만 죽일년이 되었다.

임영규는 밤마다 뭔가를 하고 있는 정영희에게 물었다. 뭐하고 있느냐고. 정영희는 임영규에게 몰라도 된다고 했으나 정영희는 백주상이 성폭행범이라는 전단과 피켓을 만들고 있었다.

이진숙이 정영희에게 미안하다고 눈물로 하소연하다. ⓒ영화 얼굴 포토
이진숙이 정영희에게 미안하다고 눈물로 하소연하다. ⓒ영화 얼굴 포토

임동환과 김수진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사람은 백주상이었다. 백주상은 허름한 단칸 셋방에서 혼자 초라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김수진이 5만 원 자리 두 장을 내놓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 장님새끼랑 입 다물고 조용히 살 것이지 너무 나대었다”라며 정영희 이야기를 시작했다. 임동환은 백주상이 정영희를 죽였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미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다 말해도 된다며 고백을 종용했다.

“그 녀석이 아직도 안 잡혔어요?” 백주상은 정영희가 타살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영희를 누가 죽였다는 것은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임동환은 김수진 PD가 몰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영희를 누가 왜 죽였는지가 그 카메라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임동환은 김수진의 카메라를 뺏어서 그동안 녹화된 필름을 다 지우고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김수진은 임동환에게 "동환씨는 아버님을 많이 닮았네요."라고 한 마디 하면서 임동환에게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정영희가 청풍섬유에 입사할 때 백주상 사장이 찍어 준 사진이었다.

영화에서 정영희는 얼굴 없는 여인으로 나오는데 얌전하고 인정많고 조용한 여인이 너무 나대는 것 같았다.

도장 파는 젊은 임영규. ⓒ영화 얼굴 포토
도장 파는 젊은 임영규. ⓒ영화 얼굴 포토

필자가 부산장애인총연합회에 근무할 때 시각장애인 정화원 회장이 자랑하던 것이 하나 있었다. 자기는 새끼손가락을 만져보고 목소리를 들어보면 여자들의 미추를 알 수 있다고 했다. 필자가 자주 동행했는데 정화원 회장이 새끼손가락을 만져보고 못생겼다고 하는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얼굴’의 임영규에게는 새끼손가락을 만져보고 여자의 미추를 구분하는 그런 재주는 없었던 모양이다.

필자가 ‘얼굴’을 본 시각장애인 몇 명에게 물었다. A 씨는 모두가 더 나은 외모를 위해서 성형수술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 같다고 했다. 그러나 A 씨는 약시인데 화면해설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같다고도 했다.

B 씨는 타인의 외모를 보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너무 외모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고 했다. 내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 잘 보이지 않음에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호감도를 외모로 책정한 것 같았다고 쑥스럽다고도 했다.

영화 ‘얼굴’은 임영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전각 장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중에서 도장을 파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한글 글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도장을 파겠는가.

시각장애인 직업으로 가장 보편적인 것이 안마사이다. 안마는 맹학교와 수련원에서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르고 자격증을 받는다. 예전에는 침사도 있었으나 안마 바우처 이후 침사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 밖에 교사 목사 사회복지사 음악가 점역사 역리사 피아노 조율사 등이 있다. 그리고 꿀벌을 치는 양봉사가 있었고 시계를 고치는 시계수리공, 해를 찍는 사진사, 그림을 그리는 화가 등이 있었다.

영화 ‘얼굴’이 영화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낙인과 차별 그리고 편견과 의심은 시각장애인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씁쓸한 내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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