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장애인.(기사와 무관)ⓒ에이블뉴스DB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장애인 복지의 핵심 기둥인 ‘장애인 활동지원제도’가 시행된 지 어느덧 수 년이 흘렀다. 이 제도는 혼자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사를 파견해 가사, 이동, 목욕 등을 돕는 서비스로, 수많은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생명줄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화려한 성적표 뒤에는 여전히 ‘정기 이용자’가 아니면 접근조차 어려운 높은 문턱이 존재한다.
촘촘하지만 경직된 현재의 바우처 시스템
현재 우리나라의 활동지원 서비스는 철저히 ‘월간 바우처’ 중심이다. 보건복지부의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매달 일정 시간(최소 60시간에서 최대 480시간 등)을 부여받고, 이를 매달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평소에는 스스로 생활이 가능해 정기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은 장애인들이다.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사고, 보호자의 경조사, 혹은 예상치 못한 병원 방문 등의 상황이 닥치면 ‘단 몇 시간’의 도움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다.
현행 시스템은 매달 수십 시간을 사용하는 ‘장기고객’ 위주로 설계되어 있어, 필요할 때만 잠시 이용하는 ‘1일 단기 이용’은 사실상 행정적·실무적 불모지에 가깝다.
선진국에서 배우는 ‘유연한 시간’의 마법
복지 선진국들은 이미 ‘정해진 시간표’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유연한 모델을 정착시켰다.
영국의 직접지불제(Direct Payments): 영국의 장애인은 지자체로부터 서비스 대신 '현금 예산'을 직접 지급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정규 지원사가 아니더라도 이웃이나 전문 인력을 본인이 필요할 때 단 몇 시간만 직접 고용할 수 있다.
"24시간은 필요 없지만, 오늘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서류 작성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구체적 요구가 현장에서 즉각 실현된다.
스웨덴의 개인별 지원(Personal Assistance): 스웨덴은 장애인 개인이 본인의 삶을 주도하도록 돕는다. 갑작스러운 외출이나 일시적 활동이 생겼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예비 시간(Emergency/Flexible hours)' 개념이 발달해 있어,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단기 수요에도 행정적 걸림돌 없이 대응할 수 있다.
미국의 자가결정 서비스(Self-Directed Services): 미국 일부 주에서는 장애인이 본인에게 할당된 예산 내에서 돌봄 인력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계약한다.
이는 '월간 패키지' 상품이 아닌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쇼핑'과 유사한 유연성을 제공한다.
‘수요자 맞춤형’ 단기 이용권 도입이 시급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활동지원제도에 ‘유연한 단기 이용 모델’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평소 바우처를 신청하지 않은 장애인이라도 필요할 때 즉시 결제하거나 사후 정산하는 방식의 ‘일일 활동지원권’ 혹은 지자체 돌봄 SOS 센터의 기능을 대폭 확대한 장애인 전용 ‘긴급 헬퍼’ 파견 시스템이 상시화되어야 한다.
긴급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시설에 입소해야 하는 번거로움 대신, 장애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익숙한 환경을 유지하며 단 수 시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재가 중심의 단기 서비스'가 행정의 빈틈을 채워야 한다.
‘잠시’가 ‘생존’이 되는 이들을 위하여
복지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세심함에서 시작된다. 평소 꿋꿋이 자립을 이어가는 장애인들에게 ‘갑자기 닥친 3시간의 공백’은 자립의 의지를 꺾는 거대한 벽이 될 수 있다.
정기적인 바우처 수급자가 아니더라도, 필요할 때면 언제든 국가의 손길을 빌릴 수 있는 유연한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잠시’의 도움이 없어 시설 입소를 고민해야 하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제는 활동지원제도의 ‘유연한 혁신’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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