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시내 칼럼니스트】지난 글에서는 MBC 실화탐사대에 소개된 한 아버지의 사연을 통해 부모 사후 지원체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방송을 다시 떠올리며 내 마음에 오래 남은 장면은 또 하나 있었다.

이혼 후 20여 년 동안 홀로 중증 발달장애인 아들을 돌봐 온 아버지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이 살아갈 곳을 찾기 위해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을 수없이 수소문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대부분 같았다. 중증장애라는 이유로 입소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다른 질문을 떠올렸다.

우리는 오랫동안 탈시설을 이야기해 왔다. 그런데 정작 도움이 절실한 사람은 왜 들어갈 시설조차 찾지 못했던 것일까.

이 질문은 탈시설이 옳은가, 시설이 필요한가를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부터 장애인의 삶보다 시설과 탈시설이라는 정책의 구분을 먼저 이야기하게 되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탈시설은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적 방향이다. 오랜 시간 많은 장애인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시설 중심의 삶을 살아야 했고, 탈시설은 이러한 역사를 성찰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정책적 방향은 지금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며, 우리 사회가 계속 고민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시설과 탈시설 사이에서 우리가 놓친 삶. (AI 이미지 생성) ©김시내

그러나 정책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논의는 점차 시설과 탈시설을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시설은 과거의 방식이고 탈시설은 미래의 방식이라는 구도가 형성되면서, 어느 순간 두 정책은 서로를 대체해야 하는 관계처럼 논의되기도 했다. 시설을 이야기하면 탈시설에 반대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탈시설을 이야기하면 모든 시설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논쟁도 반복되었다.

하지만 장애인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는 충분한 지원이 제공된다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는 일정 기간 전문적인 거주 지원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지속적인 의료와 돌봄이 함께 제공되는 환경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장애인의 삶은 장애 정도와 건강 상태, 가족관계, 지역사회 자원, 개인의 의사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구성된다. 하나의 정책 방향으로 모든 삶을 설명하기에는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문제는 시설도, 탈시설도 아니다. 장애인의 삶보다 정책의 이름이 먼저 논의되는 현실이다. 정책의 목적은 장애인을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연결하는 데 있어야 한다.

다시 실화탐사대로 돌아가 보자.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찾아다닌 것은 '시설'이라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탈시설'이라는 정책도 아니었다. 그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자신이 떠난 뒤에도 아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기반이었다.

만약 지역사회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체계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면 아버지는 거주시설을 찾아다니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반대로 전문적인 거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적절한 거주시설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의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에 필요한 지원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이다.

장애 당사자와 가족이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시설인가, 탈시설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 논의는 종종 그 순서를 거꾸로 세운다. 삶보다 정책의 이름을 먼저 이야기하고, 필요한 지원보다 정책의 방향을 먼저 논쟁한다. 그렇게 정작 당사자의 삶은 논쟁의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탈시설은 시설을 없애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시설 역시 탈시설의 반대말이 아니다. 둘은 서로를 부정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존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떠한 지원체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제는 시설과 탈시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논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정책의 이름보다 삶을 먼저 바라보고, 이념보다 당사자의 선택과 지원 필요를 먼저 존중해야 한다.

실화탐사대 속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찾았던 것은 시설도, 탈시설도 아니었다.

아들이 자신이 떠난 뒤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삶이었다.

어쩌면 지금 장애인 정책이 던져야 할 질문도 이것이어야 한다.

"시설이냐, 탈시설이냐." 가 아니라, "장애인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장애인 정책은 그 질문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