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만족스럽지 않다. 나는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고 하고싶은 것은 있지만 경제적, 사회적 여건 때문에 생각만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보행이 불편하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다니고 잠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넘어진다. 한 번 잘못 넘어지면 크게 다치기도 한다.
춤.
춤이라는 것은 장애인에게 아예 쳐다볼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자연스럽게 체득되어 욕망자체가 없었다.
예전에 친구들과 나이트클럽를 간 적도 있었지만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나는 무리하다가 넘어질까봐 플로어에 나가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다가 춤추는 것을 구경만 하고 온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아는 어떤 시인이 탱고를 추는 영상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춤을 추고 싶지만 춤을 추기 어려운 나 자신이 참 처량하고 불만스러웠다.
그러다가 다리가 아파 춤을 출 수 없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하니 다리로 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TV에서 아시안 게임을 보다가 장애인 휠체어댄스를 보게 되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왜 그때까지는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다리가 불편하지만 휠체어를 타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휠체어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순간 나도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춤을 추고 싶다는 욕구, 춤을 출 수 없어 평소 불만이 있었기에 그 화면을 본 순간 방법을 찾게 되었고 춤을 시작한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5년동안 춤을 추었다. 탱고, 폭스 트롯, 비에니즈 월츠 등을 추면서 지금까지는 체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
처음에는 휠체어를 타는 것이 차를 타고 가는 것처럼 짜릿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스탠딩 파트너와 손을 잡고 춤을 추면 구름을 타고 가는 느낌이나 하늘로 날아가는 느낌도 들었다.
이것은 글을 쓰거나 사무실에서 하는 직업적 활동으로는 느껴보지 못한 환희와 행복이다. 일상의 정신적 노동을 육체적 활동으로 많이 할애해 지루한 일상에 오아시스를 만들었다.
장애인 전국체육대회 휠체어댄스스포츠 비에니즈 왈츠. ©김율도
이스라엘 작은 마을의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가 세상을 구원한 메시야로 칭송받고 성인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견해에 따라서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현실에 불만을 갖고 반항 정신과 비판 정신도 큰 역할을 했다.
예수가 사랑의 상징이 된 이유도 바로 불만족 때문이라는 사실은 기독교인도 통찰하지 못한 내용이다.
예수는 자신에게 세례를 주었던 요한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았다. 그의 한계를 깨닫고 그를 뛰어넘었다.
요한이 광야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칠 때 예수는 그것에 불만을 품고 동참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요한처럼 말세라고도 하고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도 했으나 이것은 요한의 아류밖에 되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공허하게 외치기보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서로 사랑하라고 외쳤다. 그것이 더 공감이 형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다.
흔히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불만을 품는 것은 좋은 일일까?
긍정의 세분화가 필요하고 불만의 개선작업이 필요하다.
긍정과 나태, 자포자기는 다르고 불만만 이야기하는 것과 불만스러운 것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불만만 이야기 하고 늘 부정적 생각을 한다면 안돼, 못해 라는 생각으로 침울할 것이고 불만스럽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활력이 생길 것이다.
마음이 아플땐 춤을 추어라.
신명난 춤이 그대를 구름에 떠가는 느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춤은 몸으로 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추는 것이다.
몸만 추는 춤은 춤이 아니다.
마음이 원해서 마음으로 원하는 사람과 춤을 추면 몸은 아름다운 춤을 만든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