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회 백상 연극연기상 수상자 하지성. ©하지성
‘뇌병변장애 배우 하지성, 59회 백상 연극연기상 쾌거… “무대에 존재하고 싶어”’라는 제목으로 하지성 배우의 수상 소식을 접했다.
배우 하지성은 지해 4월 28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제59회 백상예술대상’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고, 연극 부문 연기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JTBC, JTBC2, JTBC4에서 생중계됐으며 신동엽, 수지, 박보검이 MC로 나섰다.
성별 구분 없이 하나로 통합된 연극 부문 연기상에는 연극 <틴에이지 딕>에서 리처드 글로스터로 열연한 뇌병변장애인 배우 하지성이 수상하며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하지성은 ‘천천히 말하겠습니다.’라며 자신의 언어장애에 대한 양해를 구한 후
‘TV를 보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 예술인 동료 선후배 여러분, 여기에 계신 방청객 여러분, 저는 리처드 역을 맡은 배우 하지성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서 ‘연극 속 역할처럼 학생회장이된 것 같다.’며 수상 소감을 말해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연극 무대에서. ©하지성
하고 싶은 일은 배우
어릴 적부터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뇌병변장애로 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학교는 특히 답답한 공간이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진학하다 보니 비장애 학생들과 편하게 소통하지 못해서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였다. TV 속 배우들은 그의 답답함을 대신 해소해 주는 존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하지성은 진로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대학은 캠퍼스가 넓어서 하지성 걸음으로는 이동이 어렵고, 대학에 간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할 수 없어 대학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다.
어느 날 알고 지내던 장애인 형이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데?’라고 묻기에 ‘배우!’라고 말했다. 배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말도안 되는 소리!’라고 자신의 꿈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형은 같은 장애를 갖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해도 비웃지 않을 듯해 처음으로 배우라는 말을 입밖으로 꺼냈다. 마침 그 형이 속해 있는 장애인극단 ‘애인’에서 연기 워크숍이 있으니 그 워크숍에 참석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워크숍 참가 신청을 하고 찾아갔다.
그 당시 극단 애인은 창단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지수 단장은 작은 체구에 중증의 장애가 있는 여성장애인인데 공연 시나리오부터 연출 그리고 배우 역할까지 하며 극단을 이끌어 갔다. 그곳에서 장애인배우들이 열심히 연습하며 공연 준비를 하였다.
하지성은 극단 애인에서 배우 수업을 하며 대학도 글로벌사이버 대학교 방송연예전공으로 바꾸어 문화예술학사 졸업을 하였다.
오디션으로 도전
연극 <극단 애인의 1인 무대>를 하고 있는데 강보름 연출가가 스태프로 참여하였다. 하지성은 분장실에서 강 연출가와 부딪혔다.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때 하지성은 2010년 극단 애인 창단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첫 무대에 선 후, 연극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 연기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5년 이내에 강 감독님 작품을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때가 2020년 12월이었다. 그런데 2021년에 강 감독이 <여기, 한때, 가가>라는 작품 출연 제의를 했다. 그래서 극단 애인에서 안식년을 갖고, 21년 7월 공연을 위해 연습에 들어갔 다. 하지성은 5년 이내라고 했지만 그 목표는 7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곧이어 서울시 극단의 <천만 개의 도시> 출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2020년 오디션을 통해 따낸 작품이다.
하지성은 가만히 앉아서 작품을 기다려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오디션에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광화문 하면 어떤 느낌이 드느냐?’ 정도로 가벼운 인터뷰였다.
이 작품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장애인 등 다양한 배우들이 출연하여 자연스럽게 현실을 표현한다고 되어 있어서 도전을 했던 것인데 하지성이 낙점되었다.
그래서 2021년은 <여기, 한때, 가가>와 <천만 개의 도시> 두 편의 외부 작품을 하게 되었다.
하지성 최고 작, <틴에이지 딕>
하지성 최고 작, 포스터. ©하지성
2022년 국립극장 무장애공연 프로젝트 오디션 공고가 떴다. 하지성은 망설이지 않고 오디션을 봤다. 장애인배우 남녀 각 1명씩을 선발하는 오디션이었다. 남자는 3명, 여자는 2명이 지원하여 일반 오디션보다 경쟁률은 낮지만 그래도 3대1이라 2명은 고배를 마셔야 한다. 초조히 기다리고 있는데 결과는 하지성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인터넷 검색을 해서 하지성 연기를 유튜브를 통해 보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선발된 하지성은 연극 <틴에이지 딕(Teenage Dick)>에서 주인공 리처드 글로스터 역을 맡았다. 8월 말부터 연습을 시작하여 11월에 공연을 해야 했기에 연습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대사 분량이 엄청 났다.
연극 <틴에이지 딕>은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뇌성마비 고등학생 이야기로 각색한 극작가 마이크 루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였다. <리처드 3세>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쓴 비극으로, 기형적 신체에서 비롯된 열등감을 권력욕으로 채우려는 한 인간의 악행과 파멸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마이크 루는 인물의 성격과 사건의 흐름 등 원작의 뼈대를 가져와, 배경을 현대 미국 고등학교로 옮겨 동시대 관객이 공감할 이야기로 새롭게 풀어냈다.
작품은 장애때문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뛰어난 책략가이자 야심가의 면모를 지닌 리처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자신을 괴롭히는 무리에게 복수하고자 차기 학생회장이 되려는 리처드가 본인 약점까지 이용하며 꾸미는 음모와 갈등, 예상치 못한 혼란과 선택의 순간 등이 총 9장에 걸쳐 진행된다.
2018년 미국에서 초연된 뒤 영국·호주 등 세계 무대에 오른 연극 <틴에이지 딕>은 소외된 인물을 다루는 작품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극복과 치유의 서사, 평면적인 인물의 틀을 깨고 장애인을 입체적 인간으로 생생하게 그려 관객과 평단(評壇)을 사로잡았다. 작품은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표출하는 리처드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깨는 동시에 ‘다름’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사회 전반의 인식과 태도에 물음을 던진다.
‘당신들은 내가 선택하기도 전에 어떤 사람인지 판단을 내렸지. 내가 영웅이 아니란 걸 벌써 알고 있었잖아, 휠체어를 타고 들어올 때부터’라는 리처드의 대사처럼 누구나 마음속에 가진 편견이라는 장벽을 돌아보게 한다.
연극 <틴에이지 딕>은 자막과 음성 해설, 수어 통역이 제공되는 무장애(배리어프리, Barrier-free) 공연으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었는데 매회 만석이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연출을 맡은 신재훈 연출가는 첫 공연을 마친 후 하지성에게 ‘이것은 기적이야!’라며 만족해 하였다.
하지성의 연기 비결
하지성은 대본이 나오면 그때부터 반복해서 연습을 한다. 연기를 잘하는 방법은 연습밖에 없다는 것을 연기를 하며 깨달았다.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연기를 좋아하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서 그런 노력이 가능했다.
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가 내린 결론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 주자는 것이었다. 장애인배우의 가장 큰 특성은 결국 장애이기에 비장애인의 연기를 따라 하는 것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장애는 나만의 무기’라고 하였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외로움인데, 연극을 할 땐 관객이든, 동료든 누군가 늘 함께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면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라며 하지성은 연극을 사랑하는 마음에 강한 확신을 보였다. 그가 두려워하는 건 언젠가 연극을 그만둬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 뿐이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무대 위로 오른다.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연극에 대한 사랑만이 남는다. 연기가 아닌 다른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은 상상이 안 된다.
무대에 존재하려 하고 있다
부모님의 반대가 엄청 심했다. 어머니는 학교에 다닐 때는 동아리 활동이거니 생각하다가 졸업 후에도 계속 연극을 하자 두 분이 심각하게 경고했다. 연극은 직업이 될 수 없으니 취업을 하라고, 연극하다가 굶어죽는다고….
그러다 오디션으로 획득한 박해성 연출 <천만 개의 도시>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공연되어 가족을 초대했는데 아빠, 엄마와 여동생이 관람을 한 후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무대 위의 아들이 당당했고, 행복해 보였으며 관객들의 반응이 좋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아들이 수상을 하자 ‘우리 가문의 영광’이라고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하지성의 존재감은 정말 빛이 났다.
하지성은 ‘연기하면서 많은 대사량, 3시간 동안 무대에 있는 것 자체가 무섭고 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님과 배우들이 힘듦을 알아줘서 계속 연기를 했던 것 같다.’라고 고백했다. 더불어 ‘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고 인정해 준 연출님들께 감사드립니 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성은 ‘이 상은 저에게 무겁다. 연기를 잘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데, 무대에 서면 잘하려 하고, 잘하고 싶다, 무대에 존재하려 하고 있다.’라는 말에서는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성은 백상예술대상시상식에서 있었던 일화를 공개하였다. 아이유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는 하지성에게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까 하여 마음을 쓰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성도 ‘처음부터 저를 좀 신경 쓰고 계시더라고요. 그게 느껴졌어요.’라고 말했다.
시상식이 끝난 후 아이유는 무대 위에 서 있던 선배 배우 이성민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뒤에 있던 배우 하지성에게도 인사를 건넨 뒤 옆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수상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하지성에게 앞쪽으로 가라고 손짓을 하며 ‘앞으로 나오셔서 사진 찍는 것이 어떠시겠어요.’라고 말하였다. 하지성은 그때 ‘제가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될지 우물쭈물 하고 있었어요.’ 라며 그 말에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이성민, 조우진 등 많은 사람들이 하지성에게 인사를 하러 다가오자 아이유는 자리를 비켜주기도 했다. 이런 행동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유는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상 후보에 올랐었지만 아쉽게도 수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기상 팬 투표에서 최종 1위에 올라 인기상을 수상했다. 팬들은 아이유 배우의 연기뿐만 아니라 인간됨까지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가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성은 상을 받고 난 후 주위 분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고, 간혹 TV에서 보았다며 알아보는 사람도 있지만 절대로 자만하지 않고 극단 애인에서 장애인배우의 연기법을 연구하는 워크숍에 참여하여 연기 공부도 하고, 대학로에서 있는 공연도 연습 중이다.
하지성은 1991년생으로 올해 나이 33세이다. 어리지도 않고 나이가 많지도 않다. 지금부터는 하지성 개인의 노력보다 우리 사회가 하지성이라는 배우를 키워야 한다. 우선 작가들이 뇌성마비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창작해 주기를 바란다.
배우 하지성. ©하지성
하지성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방송연예전공 학사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
제8회 나눔 연극제 남자 연기상
2010 고도를 기다리며
2012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2013 손님
2014 너는 나다
2015 무무, 제물포별곡
2016 3인 3색 이야기, 들판에서
2017 전쟁터 산책
2018 한달이랑 방에서 나오기만 해,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조건만남, 기억이란 사랑보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2019 인정투쟁 예술가 편
2020 극단 애인의 1인 무대
2021 여기, 한때, 가가, 천만 개의 도시, 당신을 초대합니다
2022 1 Stage for 1 Player, 틴에이지 딕
2023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_선택
단편 영화 <NO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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