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복합적인 장애를 갖고 지방에서 살아가는 중증 장애인의 보호자(이하 단비엄마)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4년 장애인 교육권 운동부터 시작해서 현재 성인기 정책운동까지 함께 하면서 느낀 점을 에이블뉴스 지면을 빌어 기록해 봅니다.

앞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건강권과 지방민으로 겪는 어려움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정책을 대하는 지방민의 관점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해야 할지 주제별로 2회씩 화두를 던져봅니다. <글 싣는 순서> ①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하다 ②재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③농촌과 장애인 ④마을 문화와 장애인 ⑤돈보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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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네 가족 나들이. ©김신애

단비는 뇌염으로 인해 2년간 병원생활을 했다. 병의 후유증으로 뇌 손상이 있고 그 결과 장애를 갖게 되었다. 2001년 당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의료비를 부담했었는데,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간병이었다.

뇌 손상으로 발달장애를 갖게 된 단비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서 24시간 잠 한숨 못 자고 돌봐야 했지만 엄마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때 힘듦을 아는 같은 병실의 엄마들은 서로 도우면서 위로하고 병원생활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단비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퇴원했는데, 퇴원하고 더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단비를 집에서 간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료소모품이나 필요 물품을 지방에선 구할 수 없었다.

단비를 위한 언어치료, 섭식치료를 받을 곳이 없어서 매주 서울 병원에 가서 받아야 했다. 20분의 언어치료를 위해 왕복 10시간 서울로 다녀야 하는 고통은 너무나 힘들었다. 진료는 2주마다 서울의 병원으로 가서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다녔는지 놀랍기만 하고 다시 하라고 하면 고개를 젓게 된다. 돌이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계속 인근 도시의 치료실을 찾았고, 결국 포항의 장애전담어린이집과 병원의 치료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인근 도시 포항까지도 왕복 4시간 거리에 둘째 아이까지 데리고 다니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어느 날부터 내가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앉으면 졸음이 몰려오고 단비를 업고 돌 지난 작은 아이를 손잡고 다니다가 자리에만 앉으면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몇 년이 지나 더는 버틸 수 없어 병원 가서 검사하니 자가면역계 질병으로 오는 증상이었다.

몸이 망가져도 단비 치료와 교육을 포기할 수 없었고 더 열심히 활동을 했다. 다행히 법과 제도들이 생기고 활동지원사들의 서비스들을 받으면서 여유도 생겼다. 그러나 단비가 성인이 되면서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들이 눈에 보였다.

발달장애인, 중복 장애인 경우 아주 '섬세한 결'의 지원체계가 필요하고 그 안에는 안전한 접촉과 돌봄, 관심이 필요했다. 안부 확인, 도시락 배달 같은 기존의 사례관리 전달 체계로는 한계가 명백했다. 새로 만들어지는 시스템과 마을이 상호보완되고 연결되어야 했다. 이런 부분이 연결되지 않으면 단비의 자립생활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었다.

건강과 관련하여 들여다보면, 단비는 의료적 시스템에서 생명을 유지했지만 지역에서 건강관리 시스템이 없어서 고통받는 중이다.

치료와 재활이라는 보건 의료적 지원과 삶에서 건강권은 다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아이가 일반실로 옮길 만큼 상태가 호전되었다. 중환자실에서 24시간 치료와 간호를 받던 아이는 일반실에서는 엄마의 간병을 받아야 한다. 간호사들은 엄마에게 간호교육을 실시했다. 매일 2회 가래 흡인(석션) 하는 법을 배웠다. 시간이 많이 흘러 완전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손을 덜덜 떨면서 석션 카테터를 핀셋으로 잡았던 것과 침대 시트에 카테터가 스치거나 할 때 간호사가 균이 묻으면 안 된다고 해서 혼났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일반실에서 엄마의 간병은 숙달되었고 석션과 비위관 영양 공급도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답답한 아이가 L튜브(콧줄)를 손으로 당겨 빼면 내가 쑥 밀어 넣기도 하였다. 경련을 하면 간호 벨을 눌러 간호사가 달려와서 조치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간호사에게 '몇 초' 경련했고 양상을 설명하는 수준이 되었다. 병원에서 중증 장애 아동을 돌보는 엄마들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급성기 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면 일상생활을 하게 된다. 그것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때부터는 치료보다는 일상생활에서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석션, 관장, 튜브 피딩, 도뇨, 투약 등과 같은 행위들은 의료적 행위로 볼 수 있지만 중증 장애인의 삶을 지원하기 위한 필수 행위들이다. 의료 기구와, 의료 소모품을 다루고 관리해야 하는데 어디서 구매해야 하는지, 건강보험 급여가 되는 것인지, 사용법은 정확한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엄마들끼리 입소문으로 퇴원 전 간호사에게 배운 지식대로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게 된다.

단비는 기관 절개를 해서 가래 흡인을 해야 하는데 퇴원해서 기관절개관을 교체할 수가 없었다. 지역 보건소에 요청했지만 단박에 거절당하고 앞이 캄캄했다. 석션은 어찌해보겠는데 절개관 교체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당시는 교체를 해도 서울의 병원에 가서 이오가스 소독을 해야 했는데 그런 절차들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병원에 입원해서 호흡재활을 하고 절개관을 막고 퇴원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지만 당시는 너무나 힘들었다.

의료기관이 아닌 가정에서 비의료인인 부모에 의해 제공되는 투약, 석션 같은 행위는 의료 행위로 의료법 위반이며 현재 불법이다. 책임소재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활동지원사들이 서비스를 거부한다. 일부 활동지원사들은 개인적 인간애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도 마뜩잖다. 위험을 감수하고 지원하는 것은 고맙기도 하지만 의료 행위를 정확하게 배우고 교육받은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장애인 건강권 법에 따라 시행되는 주치의제도, 건강 검진, 긍정 행동 지원, 진료 시 의사소통, 약물처방 같은 치료 영역인 보건 의료적인 지원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정으로 찾아오는 방문진료, 일상적인 의료 행위의 안전한 유지, 영양, 운동 같은 건강관리 시스템이 장애인의 삶에 더 중요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활동지원사가 안전하게 장애인을 위해 의료적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건강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첫 번째 과제이다. 장애인의 삶을 위해 의료적 행위에 대한 지침 마련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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