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격리 및 강박으로 인한 당사자의 억울한 죽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엔 연속 124시간 묶여 있던 50대, 2013년엔 17시간 묶여 있던 70대, 2017년엔 35시간 묶여 있던 20대, 2022년엔 251시간 묶여있던 40대가 사망해 사회적 문제가 된 바 있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사실은 이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된 통계자료조차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격리실에서의 격리·강박만이 문제가 아니다.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인천 A정신병원 다인실에 묶여있던 50살 남성 ㄱ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다음날 같은 병원에 77살 남성이 휴대전화 사용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다인실에서 사지가 묶여 기저귀가 채워진 채 방치된 일도 있었다.
부당한 격리·강박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지 불과 하루가 지난 시점에, 다시 당사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큰 위험에 놓이게 할 조치를 반복한 것이다. 이는 이 환자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태로 장시간 묶여 있었다”며 지난해 12월29일 인권위에 진정을 내서 알려진 것이다. 이는 정신병원 내에서 격리·강박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얼마나 무분별하게 자행되고 있는지 알려주는 사건이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정신병원이 정신질환 당사자(이하 “당사자”)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함으로써 죽음에 내몰게 하는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또한 관리 감독 기관인 보건복지부에도 그 책임을 묻는다. 책임자의 법적 처벌뿐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의료사고 또는 살인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첫째, 현재 정신병원은 치료라는 명목하에 변질된 폭력의 공간으로 전락하였다.
『정신병원 격리·강박 실태 조사(국가인권위원회,2015)』에 따르면 격리·강박을 경험한 환자의 38.3%는 격리·강박이 본래의 목적보다 과도하고 빈번하게 시행되고 있다고 하였으며, 환자의 62.5%가 환자에 대한 모니터링이 잘 시행되지 않거나 모른다고 응답했다. 황당한 것은 과도한 격리·강박의 이유이다. 응답자의 가장 많은 30.7%가 ‘처벌 목적으로 시행’이라고 답한 것이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0조(생명권), 제14조(신체의 자유 및 안전), 제15조(고문 또는 잔혹한,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로부터의 자유), 제16조(착취, 폭력 및 학대로부터의 자유), 제17조(개인의 안전한 보호) 등에 근거해 격리 및 강박은 결코 치료 조치가 아닌 고문과 처벌적 조치임을 재확인할 수 있으며 국제협약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는 사항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행태의 저변에는 당사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관리 혹은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정신병원 썩어빠진 관행 바로잡아야 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또한 관행적으로 처벌과 통제의 수단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격리와 강박을 감독하고 시정조치 명령을 내려야할 보건복지부 등 당국의 안일한 태도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학대를 방치하고 있는 공범이다.
둘째, 당사자는 의료소비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는 정신의료 서비스를 소비하는 소비자이다. 우리는 많은 비용을 정신병원에 내고 있다. 정신병원은 당사자가 낸 돈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당사자가 자신이 돈을 내는 정신병원에 의해 자유가 속박되고 학대와 고문이 자행되며 심지어 사망까지 이르는 인권 찬탈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겨우 겨우 생존과 탈출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정신건강복지법 일부 개정이 통과되며 절차보조와 입원적합성심사 등의 제도들이 도입되었으나 아직 극히 일부의 당사자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며 정신병원이 거부하거나 은폐한다면 이 권리조차도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독립된 당사자단체 및 당사자가 대등한 관계에서 의료소비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 확대와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시급하다.
셋째, ‘회복’에 대한 몰이해로 당사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와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적 흐름은 정신건강을 단순히 정신질환이 없는 상태로 바라보지 않는다. 정신건강은 개인의 능력을 실현하고 삶의 스트레스에 대처하며 지역사회에 속해 기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회복 역시도 단순히 정신질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정신질환을 경험하더라도 삶의 통제력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신건강을 위해서 생물학적 접근 외에도 심리사회적 요인, 환경적 요인 등 통합적인 접근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당사자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가두기에 급급하다. 당사자를 인간으로서 존엄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단순히 치료해야 되는 ‘대상’으로 치부하고 또한 치료라는 이름으로 갖은 고문과 학대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반인권적 정신병원 때문에 당사자는 정신병원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어 많은 비극을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한국의 정신병원은 냉정하게 병원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곳은 구치소, 교도소보다 무서운 장소이며 당사자를 가두고 학대하고 격리하여 지역사회로의 진입을 원천적 봉쇄하는 수용소에 불과하다. 이런 정신병원에서 당사자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기는커녕 죽지 못해 삶을 연명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당사자들은 평생 정신병원에서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간직하며 또다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될까 두려움에 숨어 지내면서 살게 된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정신병원의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격리 강박을 즉시 금지하라.
하나. 격리 강박으로 인해 피해사례를 전수 조사하여 공개하라.
하나. 정신병원을 전수 조사하여 인권 침해가 있는 병원을 모두 폐쇄하라.
하나. 강제 입원 등 국제 인권에 맞지 않는 모든 제도를 개선하라.
하나. 사람 중심 권리기반의 정신건강정책 전환을 선포하라.
얼마나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치료받고 회복되기 위해 믿고 입원한 정신병원에서 죽어 나가야 정부는 관심을 가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불과 얼마 전에 윤석열 정부에서는 정신건강정책혁신위원회를 출범한다고 선언했다. 한쪽에서는 정신건강정책 혁신을 부르짖고 한쪽에서는 죄 없는 사람이 죽어가는데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이런 행태를 보면서 우리 당사자들은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들다. 540만명의 당사자 목소리를 정부는 듣기 바란다.
2024. 08. 05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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