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탈시설 논쟁은 그야말로 장애계에서 ‘종교’처럼 인식이 되었습니다. ‘탈시설천국-시설지옥’. 마치 개신교의 ‘예수천국-불신지옥’과 매우 닮았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대중들은 아직도 시설이라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대안’에 아직 귀가 솔깃한 분위기입니다. 그러한 점의 원인과 장애계가 이를 극복할 전략이 무언지를 잠깐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대중들은 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있어 보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에서나 볼법한 존재라고 인식하는 편입니다. 장애인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사회복지계 그런 것을 빼면 그나마 장애인 고용이 이뤄지는 직장에서 운 좋게 보는 것 정도밖에 없고, 대중들은 아직도 장애인을 만나는 곳이 ‘시설’이 아닌 곳에서 보는 곳은 ‘구걸하는 지하철’ 아니면 ‘교회’뿐이니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장애계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설적으로 ‘세상 속으로 장애인이 들어가기’일 것입니다. 최근 몇몇을 보면 장애계가 세상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는 태도가 있습니다. 오히려 젊은 장애인들이 세상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대중들처럼 유튜브를 켜고, 대학에 같이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는 등의 모습이 더 대중들에게 장애인을 가까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이런 점 때문에 통합교육이 대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장애 학생들은 결국 수업시간 이외에는 대단한 분리를 겪고 있으니 말입니다. 수업시간 이후에는 결국 각종 ‘치료실’, ‘복지관’ 등에 다녀야 하기에 비장애학생들은 그 시간에 ‘학원 뺑뺑이’를 도니 결국 분리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지역아동센터에서 통합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것도 ‘그나마’입니다. 최근에 늘봄교실인가 뭔가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거기서조차 장애학생들은 차별받는다는 지적이 최근 늘고 있으며 특수학교 늘봄교실은 담당 직원 부족으로 열리기 어려운 구조가 결국은 장애인을 어린 시절부터 만나기 어렵게 하는 요소가 돼가고 있습니다.
결국, 대중들이 장애인을 만나는 곳이 ‘시설’이 아니어야 하며, ‘세상에서 만나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탈시설은 일단 머나먼 것입니다. 여전히 장애인거주시설에 방문해서 ‘봉사활동을 했다’라고 사진만 찍고 결국은 떠나버리는 그런 일이 아직도 반복되고 있으니 그런 인식이 생길만합니다.
동물인형과 실제 동물간의 가격 차이를 통해 동물원을 방문하는 것이 더 좋음을 선전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 광고. 필자는 장애인식개선강사 교육때 들었던 것을 촬영한 것이다. ⓒ장지용
예전에 동물원 광고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동물원 동물 사진과 같은 동물의 인형 사진을 같이 놓고, 동물 인형에는 비싼 가격을, 동물 사진에는 싼 가격을 매겼습니다. 광고의 결론은 “동물 인형을 살 필요 없이 우리 동물원에 와서 진짜 동물을 만나보는 것이 더 편해요!”였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알레고리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결국 내부 인식은 만드는 데 성공해도 결국 관련 세력, 특히 가장 반대할만한 세력과 정면승부를 걸어본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 탈시설 반대세력의 가장 큰 세력인 시설 이용자 부모 집단과 장애인단체가 한 번도 ‘맞토론’도 아닌 ‘간담회’조차 열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한 번도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고 서로의 근거를 자기들끼리만 외롭게 외치니 ‘교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서로 반목하는 형국입니다. 견해가 어떠한지를 먼저 살펴보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외치다 보면, 타협은 쉽지 않습니다. 서로 먼저 교류해본 뒤에 차이를 맞춰나가면서 타협하는 것이 오히려 쉽게 풀리는 길입니다.
전장연은 탈시설을 외치면서 결국 시설이용자부모회 등과 간담회조차 개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데도 결국 제로섬 게임처럼 보이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는 점입니다. 전장연은 빠른 탈시설 반대세력과의 소통을 통해 먼저 설득을 보여줘야 성숙한 태도일 것입니다.
세 번째로, 결국 탈시설 이후의 모델을 완벽히 정립하지 못했습니다. 탈시설 반대세력의 반대 명분의 끝은 ‘탈시설 그렇게 하면 그 뒤에 어떻게 사는데?’입니다. 탈시설 이후의 모델이 어떠한지를 증명할 수 있게 되면, 결국 대중은 설득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북한 인권’을 외치는 자들과 똑같습니다. 북한 인권의 결론은 ‘북한 정권 타도’로 결국 끝나고, 그 ‘북한 정권 타도’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법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수준의 결론만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미 장애계는 ‘자립생활’ 모델을 제시했지만, 요즘 정서에서는 대중들의 호응을 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전세 사기’로 상징되는 주거난, 고물가 등은 대중들에게 자립생활의 어려움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결국 ‘자립생활’ 모델이 오히려 ‘시장경제’ 이념에서조차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다 보니 대중들이 설득되지 않고 있고, 증명되지 않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장애계의 탈시설 운동은 구호는 앞서지만, 소통 등에서는 미흡한 구석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결국 ‘운동을 위한 운동’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탈시설 이념을 자연스럽게 알리기 위해서 장애인들이 더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고, 반대세력 등 주위 세력과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고, 결국 탈시설 이후 모델을 확실히 정립해서 대중들에게 증명하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입니다.
계속 시설의 반인권성 이런 것을 외치는 것보다 결국 ‘시설 살이는 재미없다, 우리는 재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더 대중들에게 와닿을지도 모릅니다. 장애계도 선전 전략을 바꾸는 것이 효율적일 것입니다. 대중들의 정서는 ‘노잼’ 이미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점을 거꾸로 이용해야 합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이런 문제는 운동가들이 밀어붙여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중들의 지지와 협력을 받아가면서 이뤄져야 합니다.
탈시설은 대중과 맞닿아있는 이슈이기에 대중의 설득이 절대적인 조건이 될 것입니다. 탈시설, 구호는 앞서도 소통에서는 뒤처져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원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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