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건강권은 매우 중요한 사항임에도 사회참여·교육·고용 등 다른 이슈에 밀려 뒤늦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특히 장애인은 ‘이미 아픈 사람’이라는 의료사회학의 오랜 가정으로 인해 욕창·요로감염 등 장애를 원인으로 발생하는 장애인의 이차적 건강 상태는 더욱 외면받아 왔다.
이에 장애인이 건강한 삶, 건강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장애를 가진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도가 확대하고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를 수요자 중심으로 개편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장애인 건강 상태의 재구성 : 이차적 건강 상태 경험에 관한 질병 내러티브 분석’(연구책임자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문영민)을 발간했다.
장애인건강권을 촉구하는 장애인들 모습. ⓒ에이블뉴스DB
장애를 원인으로 해 장애와 시간 차이를 두고 발생하는 ‘이차적 건강 상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구 중 자신의 건강이 좋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4.9%로 전체인구의 32.4%와 비교할 때 낮게 나타난다. 또한 장애인 구 중 70.6%가 3개월 이상 계속되는 만성질환을 보유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장애인의 건강 문제는 장애인이 경험하는 중대한 어려움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건강권을 다루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은 2017년에 와서야 시행되는 등 장애인의 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장애인의 사회참여, 교육, 고용 등에 대한 논의보다 상당히 늦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장애인이 ‘이미 아픈 사람’이라는 의료사회학의 오랜 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에 이번 연구에서는 척수손상 장애인은 휠체어에 오래 앉아 생활하므로 요로감염이나 욕창 등을 앓기 쉽고 운동, 식단관리 등 건강행동 수행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비만을 경험하기 쉬운 등 구체적인 장애인의 건강 상태는 장애를 원인으로 해 장애와 시간 차이를 두고 발생하는 ‘이차적 건강 상태’를 다루고자 했다.
특히 이차적 건강 상태는 장애로부터 시작하지만, 장애를 둘러싼 다양한 개인적‧환경적 요인의 영향으로 촉발되므로 장애인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구체적인 의료적‧사회적 개입을 통해 예방 가능하다는 특성을 가진다.
연구 참여자의 특성 및 이차적 건강 상태 획득 과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애인 이차적 건강 상태’ 의료적 차원·사회적 차원 변화 동시에 필요
연구는 이차적 건강 상태를 가진 장애인 당사자 9인의 내러티브를 바탕를 심층 인터뷰를 통한 질병 내러티브 틀로 이차적 건강 상태 경험을 재구성했다. 질병 내러티브란 환자가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으로 인한 신체적, 심리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 등을 말이나 글로 표현한 것을 의미한다.
연구 결과 장애인 당사자의 내러티브로 ‘이차적 건강 상태’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이차적 건강 상태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장애를 개념화된 역사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장애는 이미 아픈 상태이므로 장애 치료와 재활이 장애인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겨졌고 의료 전문가와 재활 전문가의 역할이 강조됐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의 언어를 통해 경험을 재구성한 결과 의료적 차원의 개입과 사회적 차원의 변화가 동시에 필요한 현상임을 드러냈다. 참여자들의 이차적 건강 상태는 장애에서 기인하는 위험요인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손상에 대한 의료적 접근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위험요인을 이차적 건강 상태로 이끄는 촉발 요인인 이동권, 의료접근성의 개선, 장애와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등의 공적 지원 등 사회적 차원의 개입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했다.
또한 장애인의 이차적 건강 상태 내러티브는 ‘상실’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회복’의 내러티브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참여자들은 생애과정에서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늘 대처하며 살아왔기에 이차적 건강 상태로 삶의 영역이 축소된 상황에서도 자원과관계를 재조정하며 삶을 새롭게 구조화해 나갔다.
아울러 장애인으로 쌓아온 장애 네트워크와 사회적 지지체계는 이차적 건강 상태 대처와 예방에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됐다. 이에 참여자들은 장애와 이차적 건강 상태를 동시에 가진 상황 속에서도 역설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유지해 나갔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 수요자 중심으로 개편’ 등 제언
보고서는 “오랜 시간 사회에서 배제됐던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에 대해 말할 기회를 더욱 갖지 못해 의료기관 내에서 경험을 설명하고 치료에 관여하기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근 의료 현장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환자 중심 의료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장애인의 건강에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장애인이 건강한 삶, 건강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장애를 가진 환자의 내러티브에 귀를 기울이는 시도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의료 현장에서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제도로 2017년 장애인건강권법 제정 후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 건강주치의를 수요자 중심으로 개편할 것을 제언한다”며, “장애인이 빈번하게 경험하는 의료 분야와 특화 병원을 확대해 더 많은 장애인이 주치의 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면, 적시에 건강 상태를 발견하고 치료, 예방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이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참여자들은 이차적 건강 상태 예방과 치료와 관련한 정보를 주로 장애 네트워크로부터 습득했다. 네트워크를 통해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생애사적 지혜와 요령을 전달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잘못된 정보를 얻어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했다”면서 “장애인 건강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과 장애인의 건강 정보 문해력 증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훌륭한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된다고 하더라도 건강 상태의 관리와 예방은 건강 상태를 발견하고 그 원인을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건강 행위를 실천하는 건강 행위주체를 통해 가능한 것이기에 장애인이 삶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와 기회가 확대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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