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장애인의 날인 3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오)가 대법원 앞에서 1250명의 이름이 담긴 장애인 접근권 국가책임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들고 있다.ⓒ에이블뉴스
6년 전인 2018년 4월 11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0년째이자,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 제정 20년째 되던 날. 장애계는 의미 있는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날이 무척이나 맑았던 서울 명동역에 있는 한 커피전문점 앞 ‘턱’에 전동휠체어가 걸린 채 “1층이 있는 삶을 돌려달라”고 외쳤습니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편의점 업체, 커피전문점, 호텔 그리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구제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었습니다.
1998년 4월, 우리나라 정부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이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장애인등편의법’을 만들었지만, 바닥면적 300㎡(약 90평) 이하의 소규모 생활편의시설은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를 줬기 때문입니다.
2021년 7월 27일 당시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라”면서 커피숍 턱을 뿅망치로 내리치고 있다.ⓒ에이블뉴스DB
그렇게 시작한 소송을 알리기 위해 장애계는 커피전문점, 편의점 등을 찾아 플래시몹을 여러 차례 벌여왔습니다. 광화문 앞 유명 커피전문점 등을 찾아 뿅망치로 턱을 내리치며 “장애인도 고객”이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바닥면적 기준을 폐지해 모든 시설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입법도 진행됐지만, 결국 21대 국회에 잠든 채 폐기됐습니다. 그러는 사이, 커피전문점․호텔과의 조정이 이뤄졌고요.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편의점 업체와 대한민국과의 재판을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2022년, 1심 법원은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편의점 업체에 편의시설을 설치하라고 판결한 겁니다. 반면, 또 다른 피고인 대한민국에 대한 책임은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2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같은 해 4월, 정부는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해 바닥면적 기준을 50㎡(약 15평)로 개정하고, 시행일 전 건물은 적용하지 않아 “무용지물”, “하나 마나”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도 2심 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장애인의 날인 3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장애인접근권 국가 책임을 촉구하며 총 1250명의 이름이 담긴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에이블뉴스
이제 마지막 대법원의 판결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6년간의 오랜 소송, 참 많은 시간을 지나오면서 기자 또한 유아차를 미는 부모로 교통약자가 되어 접근권의 한계를 느껴보기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10월 23일 대법원은 5년만에 이례적으로 공개변론을 진행해 대한민국의 장애인 접근권 침해 부분을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지금 뭐 3%, 5%는 숫자 자체로도 동등하게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아예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조희대 대법원장)
“교통수단을 통해 장소를 이동하면 그다음으로 할 일이 편의점에 들어가고 공연장에 들어가고 도서관에 들어가고, 장애인 본인이 목적한 해당 장소에서의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서 장소에 들어가야 될 게 아닙니까?”(오경미 대법관)
세계장애인의 날인 3일,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1250명의 이름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현재 변호인단은 대법원에 추가 서면을 제출하고 있으며, 대법원은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내년 1~2월중 최종 선고를 내릴 예정입니다.
“국가가 스스로 법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김남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국장, “그냥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밥을 먹고 싶다”는 장추련 박김영희 상임대표의 말도 담장을 넘어 대법관들의 귀에 닿길 바랍니다.
이제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립니다. “국가의 장애인접근권 책임을 인정한다” 라는 대법원장의 말 한마디가 장애계에 의미 있게 기억될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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