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경희. ⓒ김경희
정원에서 음악을 감상하며
1967년 전남 광주에서 고등학교 물리 과목 교사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딸 셋 가운데 맏이로 태어난 김경희는 돌이 지나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열이 나는 감기 증상이 있어 병원에 갔다. 갈 때는 걸어서 병원 안으로 들어갔는데 주사를 맞고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아이는 한쪽 다리를 들고 그냥 서 있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온몸의 힘이 쭉 빠져서 심하게 앓았다. 그 후 아이는 왼쪽 다리에 신발부터 허리까지 올라오는 보조기를 착용해야 보행이 가능했다. 그때 아이에게 침입했던 바이러스는 소아마비였다.
자라면서 왼쪽과 오른쪽 다리의 길이가 심하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걷기가 힘들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와 중학교 1학년 때 두 번에 걸친 대수술을 하였는데 두 번째 수술은 오른 다리의 대퇴부 뼈를 5cm나 잘라 내는 수술이었다. 두 번의 수술 후 보조기를 차고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1년간 학교를 다닐 수 없을 만큼 큰 고통과 힘든 재활의 시간을 보냈다.
오른쪽 다리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넘어져서 골절이 되는 일이 많아 집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다. 장애로 인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특히 꽃과 나무가 많은 마당에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음악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나무들 사이에 스피커를 설치하여 정원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셨고 그때 그 시간들이 예술인으로서의 정서가 형성되는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역량 발휘
좌로부터 미술관에서, 이태리 유학 중에, 홍콩에서. ⓒ김경희
우연히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어 전남대학교 의류학과에 입학하였다. 학창 시절 판화에 관심이 많아서 패션디자인 컬렉션을 판화로 작업하곤 하였다. 1990년 대학 4학년은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라서 그녀도 취업 정보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톰보이’에서 디자이너를 모집한다고 하여 입사 원서를 냈다.
당시는 장애인계의 현실을 몰랐기 때문에 장애 때문에 취업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전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서울로 면접을 보러 왔을 때 다른 지원자들은 준비한 포트폴리오가 없어서 대신 판화로 된 컬렉션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것이 더 큰 장점이 되어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시절 톰보이는 가장 유명한 브랜드여서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직장 초년생에게 주어지는 일은 커피 심부름, 원단 정리 같은 잡일이라서 지체장애 2급인 그녀가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패션 시장조사를 다니고 패션쇼 준비를 하면서 너무 재미있어서 디자이너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즐겁게 일한 덕분에 패션의 도시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마랑고니(Marangoni)아카데미에서 패션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귀국하여 제일모직으로 옮겨서 7년 동안 열심히 즐겁게 일을 하여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자랑스런 삼성인상(삼성상)도 두 차례나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패션산업정보(패션 마케팅)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직장 초년생 시절 패션연구원에서 연구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현장 못지않게 이론도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였는데 그 후 대학 강의도 나갈 수 있었다.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그녀에게는 큰 행복감을 주었다.
가정도 중요해
직장 생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가정 생활이었다. 결혼하여 딸이 있었는데 딸이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17년 동안 패션 디자이너로 일을 하며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김경희 자신도 많이 지쳐 있었다. 그래서 뉴질랜드와 호주 여행을 다녀와서 결심을 한다. 어린 시절 꽃밭에서 위안을 받았듯이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이 그시절의 추억을 소환하였다. 그래서 딸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뉴질랜드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
뉴질랜드에서 김경희는 가족들과 함께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장애를 갖고 있었기에 더욱 치열했던 직장 생활이 꿈속의 일처럼 느껴졌다. 딸도 뉴질랜드에서 학교를 다니며 즐거워했다. 한국 사회가 학교나 직장에서 경쟁을 하느라고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면 뉴질랜드는 생활 자체가 평화로웠다.
다시 한국으로
딸은 뉴질랜드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그곳에서 직장을 찾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이상 딸을 위해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김경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동생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는 고국으로 오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긴장이 풀렸는지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았다. 다리 대신 팔을 많이 쓰다 보니 어깨 회전근이 고장나고, 오른쪽 다리에 힘을 줘서 걷다 보니 척추측만도 왔다. 몸이 아프자 마음이 약해져서 불면증으로 잠도 오지 않아서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면 시간이 아주 잘 가고, 아픈 것도 잊게 되었다.
주위의 지인들이 능력이 너무 아깝다고 공모전 정보를 주면서 응모를 권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디자인공모를 하였는데 당선이 되어 그 디자인으로 굿즈를 제작하였다. 오랫동안 쉬고 있었지만 그녀의 실력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도 그녀가 활기를 찾자 그림을 그리는 것을 권했다. 김경희의 그림은 디지털 드로잉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나 쉽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작가 초년생
작업중, 전시회에서. ⓒ김경희
서초50플러스센터 소속 e그림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그림 공부를 하였고, 다문화가정이나 느린 학습자를 위한 교재에 들어갈 일러스트를 그려 주는 사회공헌 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러면서 채색에 대한 연구도 하고, 시각적인 표현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원화는 디지털이지만 아크릴 액자로 제작하거나 캔버스에 Archival pigment(아카이브 색소)로 프린팅을 하거나 실크스크린 판화 등으로 제작하여 다양한 재료로 탄생한 작품을 선보이는 개인전시회를 지난해 열었고,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에서 특선을 하여 화가로서 데뷔하였다.
작년에는 장애인예술 단체인 스페셜아트에서 개최한 아트노마드 아트페어에 작품을 내어 판매가 되었을 뿐 아니라 관객들이 가장 사랑한 작품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주로 꽃과 나무 등 자연이 소재가 된다.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과 생명력,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자연은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작품 활동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 시절 작가의 내면에 각인된 그 소중한 감정의 추억, 아름다운 색들, 그리움 그것은 김경희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패션 디자이너 경험이 작가의 정체성이 되어 직물처럼 층을 이루고, 패턴처럼 반복되며, 컬렉션처럼 각기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태로 표현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시간과 기억을 통해 보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어서이다.
<작가 노트>
나의 삶은 분명 힘든 시간들의 연속이었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에게는 아픈 고통의 기억에 대한 기록보다는 치유와 희망이다. 그래서 나는 따뜻하고, 정감있는 것들을 나만의 색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였었고 그 경험이 화가가 된 나의 그림에 좀 더 깊고 폭넓은 시각적 어휘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품에 나의 정체성을 직물처럼 레이어드(layered, 층) 되고, 패턴처럼 반복되며, 컬렉션처럼 각기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태로 표현했다.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디자인의 경험과 미학, 그리고 화가로서 새로운 매체와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나만의 독특한 시각적 언어는 작품에 레이어링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레이어링은 그림의 깊이와 다채로움을 표현할 수 있다. 때로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그 안에서의 감정을 담았다. 그림 속 여러 레이어를 통해 나의 시간들과 기억을 조금씩 풀어내며, 그 과정에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시간과 기억의 레이어를 겹쳐 그림에 담음으로써, 더욱 풍부한 색과 때로는 몽환적인 느낌으로 표현한다. 그림을 단순히 눈으로 보는 이미지를 넘어,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감정을 전달하고 싶다.
대표작
작품: 목련, 모과나무, Colors_In_The_Forest . ©김경희
작품: 봄의숲2, 숲, 산책4 . ©김경희
김경희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 패션산업정보(패션 마케팅)
전남대학교 의류학과(패션디자인)
대한민국섬유대전 수상, 자랑스런 삼성인상(삼성상), 대한민국여성
미술대전 특선 등
개인전
2024 Her Garden, ARTNOMAD GALLERY 2023 Nostalgic Scent, AN GALLERY 2023 Serendipity and Consolation, Artifex Gallery
단체전
2024 제3회 송파예총 페스티발, 예송미술관 2023 전업작가미술가협회전 ‘삶의 여정전’, 갤러리 올 2023 새로운 도전 설레는 내일, 서울메트로 미술관 2023 가을로 떠나는 여행전, AN GALLERY 2023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한국미술관 2023 송파미술가협회전 ‘To the future’, 예송미술관 2023 제2회 강남3구 미술인연합전, 예송미술관 2023 ARTNOMAD ART FAIR 2023 K-ART SHOW SEOUL, 롯데호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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