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복지학회 창립 20주년 기념 추계학술대회 당시 발달분과에서 개최한 ‘발달장애인법 제정 10주년 기념 라운드테이블’ 전경. ⓒ이원무
약 4주 전, 한국장애인복지학회 창립 20주년 기념 추계학술대회를 할 당시 때의 일이다. 복지학회 발달분과에서는 ‘발달장애인법 제정 10주년 기념 라운드테이블’이란 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는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 부모단체, 전문가 등이 나서 발달장애인법의 한계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발달장애인법의 한계로 ▲당사자의 욕구보단 부모의 욕구에 좀 더 집중된 내용 ▲최중증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미확립 ▲차별성 없고 당사자에게 체감되지 않는 개인별 지원계획 등의 이야기가 있었다.
앞으로의 발달장애인법 방향에 대해선 ▲주간 활동 서비스 등 여러 서비스 제공기관들을 시설로 법제화할 필요 ▲심하지 않은 발달장애 유형 만들어서 고용서비스 제공할 것 ▲장애인의 욕구를 알고 지원하기 위해선 표준화 필요 등의 의견들이 있었다.
라운드테이블을 계속 들었는데, 듣는 도중 발달장애인법 전부 개정안에 관련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측에서 언급한 부분이 있었다. 발달장애인법 전부 개정안에 관한 4개 단체 간의 협의체를 만들자는 게 그것이다. 여기서 4개 단체란 한국장애인부모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한국자폐인사랑협회를 말하는데 당사자 성격의 단체는 하나도 없는 거다.
이에 대해 우리 자조모임의 한 회원은 당사자의 참여 없는 발달장애인법 전부 개정은 안 된다는 취지의 메시지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측을 견제했다. 라운드테이블이 끝난 이후에는 한 회원이 당사자들 의견을 사실상 입틀막 했다면서 분노했었다.
나도 동의하며,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비장애인 관점의 장애 완화와 기능 향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등 당사자 관점에서 차별적인 이념을 가진 법이 발달장애인법임을 얘기했다.
사실 이 지점을 라운드테이블에서 얘기하고 싶었지만, 이 부분을 얘기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과거 장애인단체에서의 근무 시절 발달장애인법 토론회를 가긴 했지만, 법과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발달장애인법과 관련해 당사자 관점의 법 내용에 대해 제안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그런 나 자신으로 인해 발달장애인법이 부모 관점에 제공자 중심의 법안으로 전락되는 걸 부추긴 건 아닌가 하는 것에 죄책감이 밀려오며 우울해졌다.
물론 지금도 많이 부족하고 모르는 것도 많지만, 전에 비해선 발달장애인법 내용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그리고 아까 말한 것 이외에도 발달장애인법에는 고쳐야 하는 지점들이 적지 않다. 관련해 이후 발달장애인법 전부 개정안 설명회 자리가 있다고 하니, 그 부분에 대해서 당사자로서의 솔직한 의견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회원 말대로 당사자의 참여 없는 발달장애인법 전부 개정은 있어선 안 된다. 그런데 지적·자폐성 장애인과의 상의와 이들의 참여 없이 법이나 정책을 추진하려고 했거나 실제로 추진했던 건 이전에도 있었다.
최근만 해도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세울 당시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지적·자폐성 장애인 부모들 참여는 있었다. 하지만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은 정책종합계획을 세우는 자리에 초대되지 않았다. 정부가 이들 당사자들과 상의하는 건 당연히 없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장애인정책연구센터 오욱찬 연구위원이 2022년 9월 7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주최한 ’제2차 장애인리더스포럼‘에서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수립방안 연구 추진 경과 및 계획을 밝히는 모습.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6년 전 문재인 정부 때 발표됐던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에선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이 권리의 주체이기는커녕 오로지 돌봄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책들이 주류를 이뤘는데 특히 고인지와 미등록 지적·자폐성 장애인과의 상의는 일절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의 권리의식은 예전에 비해 늘어나긴 했다. 하지만 부모와 우리 사회, 정부가 지적·자폐성 장애인 관련 사안 시 이들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무시하는 건 여전한 것 같다. 이걸 보면, 부모와 우리 사회, 정부는 여전히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법적 능력(Legal Capacity)이 없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돌봄 요구가 큰 지적·자폐성 장애인도 의사 표시는 약하더라도, 좋다, 싫다 정도의 표현은 할 줄 안다. 이들이 피해자일 경우에도, 이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며 지원하고, 이들과 소통하려고 한다면, 이들 자신도 나름대로 소통하며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 능력(Mental Capacity)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우리 사회와 정부는 이들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법적 능력이 없다고 보며, 법적 권한을 박탈하는 게 현실이다.
돌봄 요구가 크지 않은 지적·자폐성 장애인도 자기가 결정하고 싶지만, 부모가 간섭해 부모 뜻대로 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애인이 설령 동의하더라도 부모 등 가족에 의한 강제된 동의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 자조모임에서 그런 경우의 얘기를 종종 듣곤 하는데, 우리나라가 가족 보호주의 문화가 강하다 보니 더욱 그런 현상이 있음을 느낀다.
따라서 가족문화와 지원 의사결정 간의 관계를 우리 자조모임이나 세바다 등의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단체에서 연구하면 어떨까? 국가와 지자체 차원에서도 이런 연구가 많아진다면 어떨까 싶은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포함해 장애인도 스스로 또는 지원을 통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도록 지원 의사결정에 대해 이론과 실습 교육을 정부, 지자체, 법조계는 물론 부모 등에게 훈련 수준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원 의사결정 실천모형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이를 우리 사회와 문화의 맥락에 맞게 만드는 꾸준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관련된 사안은 당연히 우리의 의사를 묻고, 우리와 논의해 법과 제도, 정책이 우리 관점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기반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길 말이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관련 사안에서 당사자 참여 배제가 여전한 게 더는 없길 바라며.
새삼스럽지만, 한 달 전 장애인복지학회에서의 일을 경험하며, 우리 없이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는 말이 의례 통상적이고 진부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고, 현실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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