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장실은 대단한 손님만 들어가는 특별한 곳인가? 라는 생각에 그 내부가 더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픽사베이
【에이블뉴스 장윤경 칼럼니스트】 ‘누구 어머님이시라고요?’
교무실에 날 선 내 목소리에 눈길조차 주질 않은 채 조용히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교장 선생님의 실루엣이 먼발치에서 보였다. 그 순간 나를 에워싸던 교감 선생님 발걸음은 이미 빛보다 빠르게 교장실 문 앞을 향해 달리고 이었다. 그녀는 교장 선생님께 짧게 내 의견을 귓속말로 보고하시는 듯했으나, 다시 교장실 문이 열렸을 때 홀로 나오는 모습만으로도 쉽사리 학교의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
‘예준이 어머님, 교장 선생님께서 곧바로 외근이 있으셔서 오늘은 곤란하다고 하시는데…. 오늘은 저와 대신 얘기 나누시고, 제가 교장 선생님께 내용 전달 해 드릴까 싶어요. 그리고 다음 주에 1학년 2반 전체 학부모면담을 교장실에서 할 예정이니, 그때 다른 학부모님들과 함께 어머님도 참석하시면 될 것 같은데…. 어떠세요?”
‘교장 선생님이라는 분은 직접 나오셔서 내게 말씀하시면 될 것을, 왜 교감 선생님을 통해서 하시는 거지? 내가 외국인도 아니고 왜 교감 선생님께 이런 간단한 이야기조차 수행비서 통해 통역시키듯 하시는 걸까?’ 저곳은 대단한 손님만 들어가는 특별한 곳인가?’라는 생각에 교장 선생님과 그 내부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우리나라 학교와 학부모 간의 열린 소통의 현주소를 보았고, 어쩌면 ‘설마? 내가 장애 엄마라 만나주지 않는 건 아닐까?’라는 내 안의 날 선 감정들까지 뒤엉키며 ‘더더욱 저 문을 나 스스로 열고야 만다!’라는 결심하나 추가되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교감 선생님과 대신 하겠습니다. 이후에도 교장 선생님께서 1:1 면담이 어려우시다면 우선 특수교육 지원청과 연락을 취하고 그 후에는 서울시 교육청 담당 장학사와 소통하도록 하죠.’라는 말로 교감과 독대가 시작됐다.
“교감 선생님, 현재 예준이의 경우 현재 도움반 이용 없이 실무사, 공익요원의 학습지원도 받지 못하는 완전통합 학생입니다. 알고 계시는지요? 현재 저희 반에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지만 분명 장애아동이자 특수교육 대상자인데 현재 짝꿍이 ADHD 학생인 만큼 실무사나 공익요원을 매일 1시간 만이라도 교실에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개별화 회의 시 특수교사 선생님 말씀은 예준이의 경우 완전통합 일반학급으로 체크된 학생이라 실무사, 공익요원 지원이 어렵다 하세요.
또 하나는 선생님들 업무로 바쁘신 줄이야 알지만, 저희 반 지원하고 계시는 강사님들께 교실 내 친구들과의 학교생활을 매주 1회 전화 피드백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현재 저희 반 어머님들의 매주 정기적인 반 모임에서 ADHD학생을 도움 교실 이용시키라는 이야기를 비롯해 각 학급의 문제 아동들까지 험담하는 뒷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와 같은 엄마는 좌불안석인 마음으로 저희 반 문제점을 듣고 있다 보니 더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학교가 특수아동의 적극적 관찰과 보호가 필요하고 시급하다고 봅니다.”
“네네, 우선 요청하신 사항은 제가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려보고 또 도움반 선생님과도 얘기해 보겠습니다. 특수학급으로의 재배치 신청서는 쓰면 되는 거고, 학생과 부모님 의견에 따라 완전통합이야 하면 되는 거죠. 예준이 어머님처럼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녀를 살피면 좋은데 말이죠…. 비장애 학생 부모님들뿐만 아이라 장애 학생 어머님 중에는 자녀를 학교에만 맡겨둔 채 저희와 소통이 안 돼서 저희 교사들도 애먹는 경우가 제법 많거든요. 저도 오랜 시간 교육현장에 있었지만, 아무리 공교육이 발전한다 해도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자녀는 엄마의 철저한 희생으로 자랍니다. 아이는 단순히 사랑만으로 자라는 게 아니죠? 엄마의 희생으로 자라는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입니다.”
그 순간, 나의 국민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의 운동장 훈화 말씀 속에서 중요한 말이 뇌리에 박혔던 추억의 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을 기억 속에 저장했다.
‘그런데 교감 선생님, 혹시 저희 담임선생님 복귀가 어려운 건 단순히 저희 반 ADHD 학생 때문인가요? 저희 아들도 이유가 포함된 건가요?’ 이 말이 목구멍에 매달렸으나 나 역시 자존심 때문인지 교감 선생님께 구태여 물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누구 탓이던 뭣이 중한가?

약을 먹어야 했던 초기 목적이 사라졌기에 약물 치료 중단을 권유받았다. ©픽사베이
다음날 나는 소아정신과 병원장님께 예준이의 학교 상황을 문자로 알리며 면담 요청을 드렸다. 더는 약물치료의 목적과 아이의 약물 변화의 장단점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잡는데 엄마인 내가 혼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병원은 한 시간 넘는 거리였지만 다급한 마음 탓일까 벌써 남편과 나는 병원 마감 시간 무렵 원장님 방에 함께 마주 앉아 있었다.
“흠, 학교 상황을 들어보니, 예준이의 경우 초반에야 집중력 약물에 좀 반응하는 듯했는데 지금도 몸무게의 1/3 정도밖에 시도하지 않았고 조절 약도 미량 섞었는데도…. 글쎄요. 이번 기회에 그냥 중단하시는 게 낫지 싶네요.”
“네, 중단이라고요? 혹시 다른 약으로 좀 더 시도하거나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요? 원장님, 예준이는 약물치료도 어려운 아이입니까?”
“예준이 어머님,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약을 먹는 발달 장애아이 중에는 약을 몸무게 비례한 양 만큼 먹고 있는 경우가 많죠. 또 약을 통해 과잉행동억제, 집중력상승이라는 장점이 더 많아서 부작용을 감수하고도 약을 먹는 경우인데, 예준이의 경우는 원래부터 과잉행동이 있던 것도 아니고 초반에야 ADHD약물로 학습 집중력이 올라 혼잣말이 사라지고 상동 행동도 사라졌지만, 소량 증량에도 현재는 무기력증, 손톱이 안 자라는 부작용만 남았고…. 더구나 학교 적응을 위한 목표로 시작했는데 지금 학급 내 분위기까지 이렇게 불안정하다면 과연 약을 이 친구가 먹어야 할 초기의 목적이 사라졌기 때문에 제가 중단을 권하는 겁니다.”
늘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약을 먹이던 나는, 막상 약을 끊으라는 원장님 말씀에 마냥 기쁜 것이 아니라 마지막 아들을 도울 희망의 동아줄마저 끊어진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오히려 아쉬움이 밀려드는 게 아닌가?
“자, 약물은 중단되고 나면 보통 2~3주 안에 소변으로 배출됩니다. 이때부터 아이의 문제행동은 다시 나타날 겁니다. 그 후에도 계속적 변화를 관찰하시고 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면 그때 다시 뵙죠.”
이 기분은 뭘까? 원장님 방을 나서는데 깊은 한숨과 한쪽에서는 안도의 기쁨과 앞으로의 문제행동이 다시 찾아올 두려움이라는 오만 감정들이 나를 덮쳐 한동안 로비의 의자에 기대어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 못했다.
“괜찮아, 보약도 아닌데 차라리 잘 됐어. 면담 끝났으니 오늘도 이거 마셔야지!” 병원 로비에 앉은 내 손에 딸기 스무디를 건네며 남편의 단순 명료한 말 한마디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 집 양 씨 아저씨! 단순 명료해서 좋겠다.”
그 후로 2~3주라는 시간은 유난히 천천히 흘렀다. 아들의 손톱이 나를 보면서 반달 미소를 보였을 때 3주가 지났음을 알았다. 6개월 만에 처음 본 아들의 손톱이었다. 약물치료 동안 보이질 않아 너무 보고 싶었던 귀한 보석 손톱이었다. 자연스레 미소 띠며 혼잣말을 하는 아들의 입술이 그 어느 때보다 반갑고 신기해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을 뿐인데 조용히 감사의 기도 속에 눈물도 흘렀다.
'그래, 이게 진짜 너지, 그래, 이래야 예준이지….'
'반가워, 드디어 돌아왔구나! 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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