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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 ©최충일

턱이 낮아서 버스에 숨겨진 발판이 튀어나와도 땅에 닿지 않았다. 땅에 닿지 않으니 기사님이 멈추다 가다를 반복하다 멈췄다.

“카드 찍으세요.”

기사님이 발판을 꺼내려 쇠꼬챙이를 들었다.

“지금 내려요? 사람들 다 내리면 저도 내려갈게요.”

곱지 않은 시선을 못 본 척 기사님만 쳐다봤다. 내가 내려가려면 기사님이 움직여야 했다. 당연한 듯이,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기다렸다.

발판이 내려왔는데 땅에 닿지 않았다. 기사님이 다시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달려갔다.

“아씨, 왜 이래”

기사님이 말하기 무섭게 운전대를 잡았고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버스를 타려 했지만 문이 닫혔다. 짜증 내는 사람과 참고 기다려주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느 정류장의 턱이 높고 낮은지 다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시에서 장애인 버스카드가 발급되었지만, 그림의 떡이다. 다녀보니 그게 보인다. 마치 ‘깜깜해서 못 걷겠어’가 아니라 ‘다녀보니 못 걷겠어’와 같은 경험을 반복한다.

‘여기는 버스 타면 안 되겠다.’ 속으로 후회하며 사람들 사이로 발판을 따라 휠체어를 움직였다.

또 영상을 만들고 싶다. “모두의 버스, 151 캠페인”. 151은 15센티 이상의 턱에서 정차하기, 휠체어가 타기 위한 1분의 기다림을 말한다.

그 짧은 순간에 사람들의 시선과 거친 말들을 헤집고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유치한데 간절한 문구가 아이디어처럼 떠올랐지만, 이렇게라도 딴생각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민폐만 끼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장애인복지관에 도착해서 다시 다듬었다. ‘함께해요 모두의 버스, 1분만 기다리면 모두가 탈 수 있어요!’

나는 사회복지사다. 휠체어에서 바라본 세월만큼이나 지루하도록 인권을 외쳤지만 나와 같은 당사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경찰서를 가야 할지, 인권변호사를 찾아야 할지, 신문고에 민원을 접수해야 할지 도통 결정하기 쉽지 않다. 감정을 다잡고 힘을 줄 사람들을 찾기에는 나와 그들 사이의 빈틈이 넓어 보인다.

어쩌면 내가 일하는 장애인복지관은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대중적'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접근하기 편한, 지역사회 내 촘촘하게 세워진 건물, 그 속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있다.

어느 교수님의 책에서 '사회복지사는 인권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를 읽었다. 당사자들에게 인권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실천 가능한 영역처럼 보이지 않고, 인권이 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만나는 당사자들의 욕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관을 주목하지 않는다. 잘 차려진, 지겹게 듣고 있는 생애주기에 따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세워진 복지관도 좋지만, 복지관 밖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 한다.

힘들게 버스를 타며 도착한 곳에서 퇴근하기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 기다림에 익숙한 장애인콜택시를 접수하고 55번의 대기자 문자를 받았어도 사람들의 시선과 분노를 피할 수 있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3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은 택시.

우리에게 '보통의 삶'이란 원하는 시간에 택시가 왔을 때, 고장 난 엘리베이터가 작동할 때다. 그 보통의 삶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를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원하는 그 보통의 삶이 다른 것처럼, 그러나 그 보통의 삶을 위해 조금 더 애쓰며 도전할 때, 우리는 행복을 발견하니까.

어찌 보면 오늘 있었던 일들, 버스 기사님의 잘못은 아니다. 기사님도 보통의 삶을 위해 전진할 뿐 각자의 삶을 위해 마주하다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누구를 향해 분노하고 미안해하고 감사해야 할까.

'함께해요 모두의 버스'는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마주하다 보통의 삶 속에서 충돌하는 일상, 보통의 삶들 가운데 보이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도, 외면받을 수도 있다.

그저 한 명이라도 우리의 그 유치하지만 간절한 메시지를 보며 마음의 울림을 준다면, '오늘도 나의 보통의 삶은 성공했구나'라고, 나를 자극하지 않고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

※이 글은 에이블뉴스 독자 최충일님께서 보내 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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