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18개 단체와 함께 4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서울역 홈리스 강제입원 인권침해 사건 손해배상 청구 및 인권위 진정 제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에이블뉴스
【에이블뉴스 백민 기자】 자의입원 의사를 밝혔음에도 행정입원을 통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당한 서울역 홈리스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강제입원의 구조적 책임을 묻고 제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한 법정싸움이 시작됐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18개 단체와 함께 4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역 홈리스 강제입원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겠다고 밝히며, 해당 사건과 유사한 다른 사건에 대해서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A씨는 2024년 7월 경 자의입원 의사를 밝혔으나 경찰의 개입으로 자타해 위험이 없고 응급입원을 시켜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응급입원 조치를 당했다. 이후 열악한 조건 속 병동에 장기간 갇혀 지내면서 지병 치료를 위해 수차례 퇴원을 요청했지만, 모두 근거 없는 최초 진단만을 이유로 묵살되며 입원이 연장됐다.
병원은 인신구제청구서를 작성했음에도 제출해주지 않았고 거짓으로 외부와의 연락을 전면 차단시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결국 퇴원이 간절했던 A씨는 다른 환자가 퇴원할 때 외부 활동가에게 서류 전달을 부탁해 자신의 상황을 알릴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서야 2025년 1월 경 퇴원이 가능해졌다.

4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개최된 ‘서울역 홈리스 강제입원 인권침해 사건 손해배상 청구 및 인권위 진정 제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박영아 변호사. ©에이블뉴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박영아 변호사는 “현재 집이 없고 연고가 없는 취약한 사람들이 행정 기관의 형식적 심사를 거쳐 길게는 수년간 정신병원에 구금되고 있다. 유일한 근거는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앞세운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다. 정신건강복지법은 행정기관에 의한 의뢰로 입원시키는 경우 입원 적합 심사 위원회 심사 등의 절차를 두고 있지만 이 심사들 역시 의사의 진단만을 근거로 이루어진다. 절차는 갖춰졌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는 결국 인신구제청구서를 퇴원하는 동료 환자 편으로 어렵게 시민단체에 전달했다. 하지만 병원은 이 사실을 알자마자 피해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환해 절차진행을 방해했다. 피해자가 퇴원할 당시 이미 7개월 가까이 입원해 있었고 첫 정신병원이 바라던 입원 연장 기간은 아직 6개월가량 남아 있었다. 이는 곧 인신구제청구서 제출에 실패했다면 1년 넘게 강제 입원 상태로 입원하게 되었을 것임은 분명하고 이후에도 입원 기간이 연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러한 구금과 다를 바 없는 폐쇄 병동 입원이 장기화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 기관인 관할 행정청은 행정입원을 의뢰하고 연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서류만을 근거로 한 형식적 심사를 거쳤으며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위한 절차적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는지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이에 강제 입원에 따른 장기간의 구금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책임을 묻고 이러한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가 행정입원을 의뢰하고 연장한 지방자치단체와 피해자를 입원시킨 의료재단을 상대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역 홈리스 강제입원 인권침해 사건 손해배상 청구 소송 소장과 인권위 진정서. ©에이블뉴스
B씨 또한 A씨와 마찬가지로 행정입원 요건을 충족하지 않고 자의입원 의사를 명확히 밝혔음에도 행정입원 절차에 따라 강제로 정신병원에 수개월간 입원됐다. B씨는 자의입원이 아니라면 퇴원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언쟁을 하다 독방에 일주일간 격리되기도 했다. 입원 과정에서 권리 고지나 안내 서류, 조사원 대면 신청서 등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고 별도의 심의위원회 개최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한 입원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병원은 내용은 가린 채 단순히 서명만 하도록 서류를 내밀었으며 B씨는 다른 환자들을 통해 입원연장에 관한 서류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지만 서명을 거부하면 또 다시 격리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어쩔 수 없이 응할 수밖에 없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는 “A씨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분명히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 인권위 진정의 당사자 B씨는 그 또 다른 누군가였다. 이 사건의 당사자도 정신병원에 끌려가서 행정입원을 당했고 나올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와 같은 인권 침해 문제는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다른 병원에서도 계속 문제 제기됐고 인권위도 여러 차례 권고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어야만 할까? 정신병원 행정입원을 둘러싼 주체들, 기관들, 책임자들이 모두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인권위에 요청한다. 이 사건에 대해서 면밀하게 조사해달라. 해당 병원과 홈리스의 행정입원 문제에 대해 조사해 달라. 지금도 병원에서 퇴원을 기다리고 있을 그 누군가가 있는지 살펴보고 구해 달라”면서 “국가와 지자체에 요구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자타해 위험성 판단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행정 입원에 대해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달라”고 강조했다.

4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개최된 ‘서울역 홈리스 강제입원 인권침해 사건 손해배상 청구 및 인권위 진정 제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원경 활동가. ©에이블뉴스
이번 두 사건 모두 입원과 동시에 휴대전화 사용은 금지됐고 공중전화가 있었으나 제한적인 시간에만 선착순으로 이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원할 때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또한 해당병원은 일부 장기입원 환자들에게 식사 배식, 빨래, 청소 등의 업무를 맡겼으며 보건소 점검이 있는 날만 형식적으로 인권 안내문과 건의함을 비치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두 사건에는 당사자의 자의 입원 의사 묵살, 절차적 권리 보장의 부재, 사회적 낙인과 차별화의 도구화, 국가와 지자체의 관리·감독 책임 회피 등 공통적 쟁점이 교차하고 있다고 연구소는 규탄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원경 활동가는 “이 사건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닌 제도의 악용이다. 나 또한 자의입원이라고 입원했는데 보호입원으로 처리된 경험이 있다. 이는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이자 모독이다. 정신의료기관은 환자의 회목과 치료가 목적이어야 하지만 이번 사태로 드러난 것은 병원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병상이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왜 홈리스라는 이유만으로 자유가 박탈돼야 하는 것인가. 왜 국가와 지자체가 병원 강제입원을 합리화하고 있는가”라며 “두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이제 단순히 개인의 구제를 넘어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누구나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 부당한 현실을 추적하고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외쳤다.
홈리스행동 주장욱 활동가는 “2016년 인권위는 이 사태와 비슷한 사건에 대해 정신병원과 지자체, 보건복지부에 문제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무려 10년 전 일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집과 연고가 없어서 홈리스들이 여전히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당하고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한편 연구소는 기자회견 직후 ‘서울역 홈리스 강제입원 인권침해 사건’에 관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으며, 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은 이날 오후 전자소송을 통해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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