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빠른 나라, 가장 노출된 나라
2026년 1월, 대한민국은 「인공지능기본법」을 시행했다.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을 다루는 법을 만들고, 가장 먼저 적용한 나라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AI 전환의 최전선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지표는 곳곳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대한민국은 챗GPT 유료 가입자 수 세계 2위이다. 인구 5천만의 나라가 미국 다음이다. AI 사용자 성장률은 2025년 상반기 대비 하반기 기준 81.4%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빠름은 분명 강점이다.
그런데 1위가 아니었으면 하는 것도 1위인 것이 있다. 바로 AI가 만든 가짜 이미지, 출처 불명의 합성 영상, 자극적인 저품질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 생성과 조회수에서도 대한민국은 세계 1위다. 스마트폰 화면에 그 콘텐츠가 쉬지 않고 흘러들어온다.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는 나라가, 그 부작용에도 가장 빠르게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실리콘밸리는 이런 변화를 기술 유토피아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비용"이라 부른다.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줄고, 일상이 흔들리는 것이,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목의 작은 부작용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그 "과도기적 비용"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결국 우리 현장으로 찾아온다. 그렇다면 사회복지 현장이 AI에 대해 가장 먼저, 가장 진지하게 질문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시작된 변화
AI는 이미 우리 현장 안에 들어와 있다. 보고서 초안을 잡고, 회의록을 정리하고, 사업 계획서의 뼈대를 만드는 일에 챗GPT를 쓰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어르신 안부콜을 AI가 대신 거는 사례도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한때 며칠이 걸리던 자료 정리는 몇십 분이면 끝난다.
특히 최근에는 자연어로 요청하면 AI가 코드를 만들어 주는 '바이브코딩'(vibe coding)을 통해, 외부 개발자나 비싼 프로그램에 의존하지 않고도 기관 업무에 맞는 도구를 직접 만드는 곳이 빠르게 늘고 있다. 행정에 매여 있던 시간이 당사자 곁으로 돌아오는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제 "AI를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이미 들어와 있는 도구라면, 우리는 그 고삐를 쥐어야 한다. AI 시대에 사회복지 현장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가.
바꿀 것 : 기록과 전달의 방식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우리가 기록하고 전달하는 방식이다.
첫째, 상담 일지에 '현장 관찰 메모' 칸 하나를 추가해 보자. "식사 양호, 특이사항 없음"이라고만 적힌 기록 앞에서 AI는 "이분은 안정적입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우리가 본 눈빛의 흔들림, 책상 한쪽에 뜯지 않은 채 쌓여 있던 약봉지를 함께 적어 두면 AI의 분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빈칸 하나가 질문을 만들고, 질문이 다음 관찰을 만든다.
둘째, 동의서에 AI 활용 항목을 더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당사자의 상담 기록을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AI에 입력해 분석하는 시대에 들어와 있다. 해외 서버로 데이터가 오가는 모든 행위는 「개인정보 보호법」상 국외이전이며 동의의 대상이다. AI 활용 사전 고지, 사람의 최종 판단 안내, 국외이전 동의, 민감정보 처리 별도 동의 등 적어도 이 네 가지 항목은 동의서에 명시해야 한다.
셋째, 당사자에게는 가장 편한 방식으로, 행정의 수고로움은 AI에게 맡기는 흐름을 만들어 보자. 구글 설문지 링크를 어르신께 보내드릴 일이 아니다. 종이가 편하시면 종이로 받고, 그 결과의 정리와 통계는 AI가 맡으면 된다.
버릴 것 : 기계에 미루는 마음
다음은 버려야 할 것이다.
첫째, AI 요약을 의심 없이 믿는 습관이다. 2024년 스웨덴 사회보험청은 AI로 복지 수급자의 부정수급을 감시했다. 그런데 여성과 이민 배경을 가진 사람이 유달리 많이 조사 대상으로 지목되었고, 국제앰네스티가 즉각 중단을 권고했다. 2025년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도 같은 이유로 AI 감시 프로그램이 멈췄다. 기계가 차별주의자여서가 아니다. 학습 데이터에 편향이 있었고, AI는 그것을 그대로 배운 것이다. AI가 98% 정확해도, 나머지 2%에 우리 당사자가 있을 수 있다.
둘째, 배려가 빠진 효율적 말투다. 우리는 매일 AI에게 "~해 줘", "정리해", "요약해 줘"라고 말한다. 기계니까 돌려 말할 필요도, 감사 인사를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심리학에는 '행동전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 환경에서 반복된 행동 패턴은 다른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하루 수십 번 AI에게 명령형으로 말하다 보면, 그 말투가 어느 순간 동료에게, 그리고 당사자에게도 묻어 나온다. 사회복지사의 전문성 중 하나가 대화 능력임을 떠올린다면, 이는 결코 사소한 변화가 아니다.
셋째, 최종 판단을 기계에 미루는 태도다. 「인공지능기본법」은 사람이 최종 판단 과정에 실질적으로 모니터링, 제어하는 체계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사람의 개입을 영어로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라고 부른다. AI가 "이 분은 긴급 지원 대상이 아닙니다"라고 결론을 냈을 때, 우리는 "왜?"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하고, 그 판단이 납득되지 않으면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AI가 그랬으니까"라고 핑계 댈 수 없다. 책임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지킬 것 : 사회복지가 사회복지인 이유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것은 결국 사회복지가 사회복지인 이유들이다.
첫째, 가장 느리게 걸을 수 있는 실력이다. 세상의 모든 분야가 효율을 향해 달려갈 때, 사회복지 현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 곁에 남는 자리여야 한다. 가장 빠르게 새로운 도구를 익히면서도, 동시에 가장 느리게 걸을 수 있는 곳. 이 두 속도를 동시에 내야 하는 분야가 바로 사회복지 현장이다.
둘째, 배려의 근육이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빠지듯, 배려의 표현도 쓰지 않으면 약해진다. AI에게 "고마워"라고 말해보자는 제안은 AI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말투를 지키기 위함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이만큼 작고 중요한 자기 훈련도 드물다.
셋째, 글로 길러지는 ‘실천지혜’다. 사회복지에서 실천지혜란 책이나 매뉴얼로는 배울 수 없는 것, 수많은 사례 속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익는 판단력이다. 같은 상황 앞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고 왜 그렇게 했는지는 글로, 회의로, 동료와의 논의로만 다듬어진다.
AI가 30초 만에 결과보고서를 써 주면 편하다. 그러나 예전에는 보고서를 직접 쓰는 동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 들이 있었다. "그때 그분 표정이 왜 그랬을까?" "다음에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볼까?"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이에 경험이 질문이 되고, 질문이 다음 판단의 근거가 되었다. 그 시간이 곧 실천지혜가 쌓이는 순간이었다.
실천지혜는 한 사람 안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다. 회의록 한 줄에 남긴 판단의 근거가 후배에게 이어지고, 사례 일지에 적어둔 망설임의 흔적이 기관의 자산으로 쌓인다. 선배가 떠나도 그 사람의 실천지혜가 남아 있는 기관과 그렇지 않은 기관은 결국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 그러므로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AI가 일자리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AI가 써 준 매끄러운 보고서 안에 우리의 생각이 사라지고, 그와 함께 실천지혜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가장 빠르고, 가장 느리게
기술의 파도는 이미 우리 현장의 문턱을 넘었다. 이 앞에서 할 일은 파도에 휩쓸리는 것도, 파도를 가로막아 서는 것도 아니다.
사회복지 현장은 가장 빠르게 달려가면서, 동시에 함께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 곁에서 가장 느리게 걸을 수 있는 자리여야 한다. 그것이 다른 어떤 분야도 아닌, 우리 현장이 AI 시대에 가져야 할 속도이다.
실리콘밸리는 속도를 말한다.
우리는 과정을 말한다.
장애인신문·웰페어뉴스=정유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