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저는 가장 안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망 선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제 개인 보유 외장하드가 완벽히 손상되어 ‘사망’했다는, 즉 완전 사용 불가라는 엔지니어의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동안 축적해온 모든 자료 자체가 일제히 날아간 것입니다. 일전부터 촬영한 사진, 에이블뉴스에 기고한 이전 원고 등 모든 자료가 한 번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엔지니어의 설명에 따르면 4차례의 작업을 시도했지만, 보존과 이식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30일 갑자기 외장하드 인식이 안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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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히 발주해서 확보한 6테라바이트 저장용량의 외장하드로 전원 연결이 되어야만 작동한다고 한다. ⓒ장지용

급한 상황이라 어쩔 줄 몰라 거대한 외장하드인 6테라바이트 외장하드를 긴급 발주하는 등 최후의 상황을 대비하려고 했지만, 결국 지난 11일에 이 사안은 ‘백약이 무효’라는 전달을 들은 것입니다. 6테라바이트 외장하드는 지난 3일에 도착해서 긴급 조치를 시행해봤지만, 이번에는 전기가 연결되어야 작동되는 특수 장치라고 엔지니어가 알려주는 바람에 상황은 복잡해졌습니다.

참고로 테라바이트라는 것은 컴퓨터가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의 크기 중 하나인데, 1테라바이트는 20만 장의 고화질 사진, 25만 개의 음악 파일, 1억 4,000개 이상의 문서, 240개의 고해상도 영화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테라바이트가 이 정도이니 6테라바이트는 그만큼 거대한 용량이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엔지니어를 호출하여 마지막 조처를 해달라는 연락을 했지만, 결국 지난 11일 이 모든 처방에도 불구하고 손상되어 ‘사망’ 통지가 온 것이었습니다.

일전에 친구가 앞으로 하드디스크 대신 외장하드에 저장하라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그렇게 했는데, 이제 그것을 완벽히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저도 사실 컴퓨터 지식이나 상식이 없어서 외장하드 이전 등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결국 ‘이장’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망 원인’을 엔지니어에게 물어보니 ‘수명초과’이며, 쉽게 말해 사람으로 치면 죽을 때까지 계속 현역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하철 전동차도 25년이 지나면 폐차하고 새로운 차량으로 도입되어 최근 서울지하철이나 부산지하철에서 기존 차량을 폐차하고, 그 역할을 대신할 새 차량이 노선별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과 비슷합니다.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일전에 제가 아는 역술인은 “자신에게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대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른 것에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며, 그것이 나쁜 일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생각합니다. 비록 역술인이 역술의 논리로 이야기했었던 것이지만, 내 목숨이나 일이 안 좋아질 바에는 다른 것이 대신 희생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참, 기존의 외장하드는 엔지니어의 설명에 의하면 완전 사용 불가이기 때문에 폐기될 예정이며, 새로운 외장하드로 유상 교체될 것이라고 합니다. 껍데기는 유지되고 새로운 내용물, 즉 새 외장하드가 삽입될 예정입니다.

다행히 몇몇 자료는 다른 곳에 분산 배치된 것도 있습니다. ‘엘리트 사진’이라 부르는 사진 작업중 가장 잘 나온 작품은 스마트폰에 들어있어서 살아남았습니다. 글꼴들에 대한 자료는 새 MCV, 즉 노트북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복제되었기에 살아남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집필하고 있는 에피소드 에세이 원고는 카카오 브런치스토리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복사하는 형식으로 복원할 수 있습니다. 의외로 중요한 문서이기에 의외의 장소에서 살아남은 것입니다.

지난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곡물 종자가 상실된 시리아에서 반출을 요청한 곡물 종자가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의 국제종자저장고에서 반출되는 순간. ⓒYTN 뉴스 화면 갈무리
지난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곡물 종자가 상실된 시리아에서 반출을 요청한 곡물 종자가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의 국제종자저장고에서 반출되는 순간. ⓒYTN 뉴스 화면 갈무리

또한, 이번에 발주한 6테라바이트짜리 외장하드는 북극과 가까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에 있는 국제종자저장고와 비슷한 개념으로 활용하여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꺼내쓸 수 있도록 하게끔 활용하는 전략을 써야겠습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개설되었고 2015년 시리아 내전 와중에 파괴된 시리아를 재건하기 위하여 시리아에서 온 종자 일부가 반출된 것을 시작으로 제에게도 언젠가 잠들어있는 자료가 비상시에 인출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날아가서 아쉽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작은 보완 체계를 단단히 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이중삼중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보겠습니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시간입니다. 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작을 알릴 시간이 된 것입니다. 또한, 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도 장기적으로 시작할 시간입니다. 자료 보관에 있어서 클라우드 체계 도입 등 장기적으로 백업의 보장을 철저히 할 시간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부족했고 엔지니어를 만났을 때 외장하드의 안전 여부를 물어보지 못한 제 책임도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최후의 순간까지 저를 지켜준 외장하드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이죠!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