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시내 칼럼니스트】얼마 전 한 포스터를 보았다. 모바일 장애인등록증을 홍보하는 문구였지만, 기술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문장이 사용한 언어였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장애인 <자격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웃음이 났다.
의외였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문장이라면, 최소한 의미는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 자격 확인’이라는 표현은 전달하려는 내용과 사용된 단어 사이에 분명한 어긋남이 존재했다. 장애인등록증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안내라면, 그것은 절차나 방식의 변화에 대한 설명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기술의 변화가 아니라, 장애를 설명하는 언어부터 다시 규정하고 있다.
더 문제적인 지점은 이 표현이 어색하다는 사실보다, 어색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말이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장애를 관리와 점검의 대상으로 다루는 행정 언어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음을 보여준다.

AI 생성 이미지 . ©김시내
장애인등록증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방식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다. 종이 증명서를 화면으로 대체하는 행정적 편의의 문제일 뿐이다. 문제는 그 기능을 설명하는 언어다. 같은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자격 확인’이라는 표현이 선택된 순간, 이 문장은 단순한 안내를 넘어선다. 장애를 어떤 성격의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지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격’이라는 단어는 선별을 전제로 한다. 일정한 기준을 충족했는지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허용 여부를 판단하는 말이다. 시험, 면허, 인증과 같은 맥락에서 이 단어는 기능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장애는 그러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장애는 취득하는 지위가 아니며,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서 상실되는 상태도 아니다.
물론 장애가 상실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바람이거나 삶의 희망에 가까운 문제이지, 행정이 ‘자격’이라는 언어로 관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장애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에서, 장애를 마치 유효기간이 있는 상태처럼 다루는 언어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책임만 개인에게 돌린다.
‘장애인 자격 확인’이라는 표현은 장애를 삶의 조건이 아니라 점검 대상으로 만든다. 그 순간 장애인은 시민이 아니라, 먼저 확인받아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이 문장은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다.
필자가 장애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 문제의식이 피해의식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공공 정책의 언어를 비판하는 일을 개인의 감정 문제로 축소하는 순간, 언어가 만들어내는 구조와 권력 관계는 검토 대상에서 빠져버린다. 중요한 것은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언어가 어떤 질서를 만들고 있는가이다.
‘자격 확인’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순간, 장애는 권리가 아니라 점검 대상이 된다. 서비스 이용의 기준은 삶의 필요가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확인으로 바뀐다. 이 언어는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존재로 남겨 둔다.
이 표현이 개인의 말이 아니라 국가의 언어라는 점은 가볍지 않다. 이 문구는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라는 정부 부처 명의로 제시되었다. 국가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기준이 된다. 반복될수록 익숙해지고, 익숙해질수록 질서가 된다. 무엇이 당연한 권리이고, 무엇이 점검 대상인지는 이렇게 언어를 통해 정렬된다.
모바일 장애인등록증의 도입 취지는 분명하다. 행정 절차의 불편을 줄이고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목적은 다른 언어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장애인등록증 확인이나 등록 정보 확인이라는 표현만으로도 기능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격’이라는 단어가 선택되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이 표현은 장애를 권리의 전제가 아니라, 제도가 승인하고 관리하는 상태로 위치시키기 때문이다.
기술은 진보했지만, 국가의 언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자격’이라는 표현이 유지되는 한, 장애는 권리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다. 이는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시민으로 전제되는가에 대한 국가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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