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각’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독일 베를린의 통합놀이터. ⓒ국립특수교육원
통합놀이터는 장애와 상관없이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의미한다. 하지만 2022년 7월 기준 국내 통합놀이터는 전국 23곳에 있으며 이는 전국 일반 놀이터의 0.04%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고 통합놀이터를 확산하기 위해 김영호 의원과 이종성 의원이 각각 2020년과 2021년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지만, 수년째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국립특수교육원 현장특수교육에 최근 게재된 ‘독일의 배리어프리 놀이터 : 통합놀이터’에서는 독일의 통합놀이터 현황과 통합놀이터 지원 프로젝트 ‘행복의 조각’을 통한 성공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장애와 상관없이 모든 아동이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통합놀이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30조는 장애인의 문화생활, 레크리에이션, 여가생활과 스포츠 참여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독일은 장애인이 스포츠·여가·관광 시설에 접근하고, 장애아동이 놀이, 여가활동, 스포츠 등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는 의무를 지닌다.
장애아동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무슨 여가활동을 어떻게 할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
아동의 여가활동 중심에는 놀이터가 있다. 그런데 독일에는 아직도 많은 장애아동이 각종 장애물과 장벽으로 인해 놀이터에서 놀이를 즐기기도, 놀이터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배리어프리 놀이터의 중요성은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독일에는 배리어프리 놀이터를 ‘통합놀이터(Inklusiver Spielplatz)’라고 부른다. 장애와 상관없이 모든 아동이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놀이터인 것이다.
베를린 통합놀이터에 설치된 바구니형 그네. ⓒ국립특수교육원
독일 놀이터 20%가 통합적 특성 조성, 지체·시각장애아동 소외 등 사각지대
올해 독일 최대 장애인복지기구인 악치온멘쉬(AktionMensch)가 독일 전역 놀이터 1,000곳을 선정해 분석한 결과, 이 중 21%가 통합적 특성이 있었다.
이때 '통합적 특성'이란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함께 놀 수 있는 요소 또는 범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통합적 특성이 있는 놀이터'는 통합놀이터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춘 놀이터가 아니라, 일부 기구나 범위에서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전체 놀이터 중 60%는 놀이기구에 다양한 높이와 형태의 손잡이가 있고 59%는 놀이터 입구의 높이가 지면과 똑같거나 배리어프리다. 42%는 외부자극이 덜한 쉼터를 제공한다. 20%는 놀이터 전반에 걸쳐 바닥에 이동 경로가 표시돼 있다.
12%만이 모래사장의 지면 높이가 다양하며 11%만이 다양한 감각체험이 가능한 놀이 요소 및 재료로 돼 있다. 2%만이 휠체어로 이동이 가능한 충격 흡수 바닥재로 포장되어 있고 1.7%만이 완만한 경사로를 이용해 올라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다. 또한 1%만이 주차장 및 대중교통과의 연결이 배리어프리이며 0.2%만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경로 안내 시스템이나 촉각적 지원, 색상 대조 효과 등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독일 놀이터 중 5분의 1이 통합적 특성이 있지만, 여전히 많은 장애인, 특히 지체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이 대다수 놀이터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동의 자기결정적 사회참여를 위한 기본조건이 여전히 충족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를린 통합놀이터 ‘낮은 그네·휠체어 탑승 가능한 회전무대’ 등 조성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2018년부터 악치온멘쉬는 몇몇 대기업과 공동으로 ‘행복의 조각(Stück zum Glück)’이라는 통합놀이터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행복의 조각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까지 독일 전역에 50개가 넘는 통합놀이터가 신설되거나 기존의 일반 놀이터에서 통합놀이터로 거듭났다.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통합놀이터설계 단계에 장애아동과 부모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수렴해 이들의 요구에 최대한 부응하는 통합놀이터를 디자인하고 실현했다는 데 있다.
‘행복의 조각’ 프로젝트를 통해 2020년 탄생한 베를린 통합놀이터에는 다양한 연령의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들로 붐빈다. 이 놀이터의 주변에는 공동주택이 밀집해 있고 인근에 노면전차 트램역과 버스정류장이 있다.
유아 놀이공간에는 미끄럼틀과 다양한 등반기구가 결합된 조합 놀이대, 낮은 그네, 용수철 시소, 유아가 다양한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며 활동할 수 있는 기구들이 있다. 이공간의 바닥은 유아의 안전을 고려하여 부드러운 충격 흡수 바닥재로 포장돼 있다.
유아 놀이 공간을 벗어나면 다양한 회전 놀이기구가 마련된 놀이 공간이 펼쳐진다. 휠체어도 탑승 가능한 회전무대, 깔대기 모양의 회전기구, 배리어프리 회전반 등이 있다. 또한 아이들이 가장 북적거리는 정글돔이 설치된 구간의 바닥 역시 충격흡수재로 포장돼 있다.
이 외에도 놀이터에는 축구장과 농구장 그리고 탁구대도 설치돼 있어 놀이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한다. 또한 모래사장도 마련돼 있어 유아들은 모래사장에서 흙 놀이도 하고 아이들은 모래사장 한가운데 위치한 바구니형 그네를 즐길 수도 있다.
베를린 통합놀이터의 다양한 회전 놀이기구와 암벽등반 기구. ⓒ국립특수교육원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재미와 성취감 제공하기” 독일 통합놀이터 통한 시사점
보고서는 “현재 통합놀이터 상황에서 독일이 통합놀이터 선진국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장애아동의 여가활동 및 사회통합과 관련해서는 한국 보다 훨씬 일찍 고민을 시작했고 훨씬 많은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 독일이기에 통합놀이터와 관련해 시사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통합놀이터를 살펴보면 안정성 측면에서는 매우 우수하게 조성돼 있다. 하지만 통합놀이터라고 무조건 장애아동의 특별요구에만 맞출 필요는 없다. 장애아동을 위한 놀이기구로만 구성된 놀이터는 오히려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의 조화로운 놀이를 방해하거나 비장애아동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에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정글돔, 암벽등반 기구처럼 신체적 제약이 없거나 덜한 아동도 한번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놀이기구 등 재미와 성취감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아무리 훌륭한 통합놀이터라고 해도 집에서 놀이터까지 이동하고 진입하는데 장벽이 많다면 장애아동에게 그 놀이터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며, “통합놀이터를 조성할 때 놀이터 주변의 장벽도 최대한 제거하고 나아가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수단을 타고 내려서 놀이터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공간적 접근성 또한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통합놀이터란 장애아동만을 위한 기구를 배치한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된다. 모든 아동이 반드시 모든 놀이기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통합놀이터는 모두가 함께 놀 수 있도록 함께 놀고 싶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장소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통합놀이터 설계 단계부터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 부모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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