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derED 민동필 대표는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Washington State University)에서 생화학ㆍ생물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뉴욕의 코넬대학 의과대학(Weill Cornell Medical School)에서 박사 후 과정을 거친 후 콜럼비아 대학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캐나다 이민 후 캐나다 국립 연구원에서 연구를 하며 동시에 몬트리올에 위치한 콩코디아 대학의 겸임교수로 혈우병 치료제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밴쿠버로 이주한 후에는 고기능 자폐 증상이 있는 아들(민가빈 군)의 교육을 위해 수년간 진행해 온  교육방법에 대한 연구 과정에서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사고의 전개과정을 기반으로 한 교육’이라는 학습법으로 발전시켰다. 관련 내용은 http://www.PonderEd.ca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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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빈 군(아들)과 캐나다의 자연 속에서 민동필 대표(사진 오른쪽). ©황서영

황 : 목표 지향적인 사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민 : 목표가 명확한 상태에서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건 쉽지만 스티브 잡스 같은 혁신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단계에 미치기는 힘들어요. 스티브 잡스가 폰트를 개발했잖아요. 그전까지 폰트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스티브 잡스가 폰트 시스템 도입이라는 목표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을 거란 말이죠. 아름다운 필체를 컴퓨터에 적용하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 됐을 거고 그 결과가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폰트 시스템이라는 게 만들어진 것이죠.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목표를 만들어 가는 과정, 그걸 연구하고 가르치는 거예요.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토론을 통해 사고를 펼쳐 가는 거죠.

황 :사냥감을 쫓는 동물적인 본능을 따르는 사냥 방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냥감을 설정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근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토론을 통한 사고력 확장을 위한 연습과 노력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민 : 기존의 방식은 목표가 보여야 움직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본능 그 이상의 후천적인 연습이 필요하죠. 그런데 문제는 자폐성 장애 혹은 지적 장애, 그리고 발달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에 필요한 요소들이 더욱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차별화된 방식이 필요하죠.

황 :사실 스티브 잡스의 사례와 더불어 해주신 말씀을 들어보니 없는 목표를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누구에게나 엄청난 사고력을 필요로 할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발달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는 더욱 어렵다는 말씀이시겠죠? 목표를 도출해 내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생각의 고리들을 연결하는 능력과 관련된 문제일까요?

민 : 저희 아이도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요. 뇌 활동을 오른손과 왼손으로 비유해 보면 비자폐인들은 오른손을 쓴다고 할 때 자폐나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왼손을 쓴다고 볼 수 있어요. 오른손을 써야만 어떤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무조건 '왼손 쓰지 말고 오른손을 써'하며 강요할 게 아니라 왼손을 잘 써서 오른손까지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끌어 줘야 한다는 거예요.

황 :어떻게 하면 왼손을 잘 쓸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민 : 호기심을 활용해야 해요. '어떻게'도 좋은 질문이지만 더 자극이 되는 것이 '왜'라는 질문이에요. 그런데 이 '왜'라는 질문은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억압되어 왔어요. 권력관계가 관여하거든요. 잘 생각해 보면 상하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 '왜'라는 질문은 위에서 아래로, 혹은 수평적인 관계에서만 가능해요.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것을 건드리는 깊은 질문이다 보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대답을 제공해 주지도 않고요.

황 : 생각의 연결을 통한 사고력 확장은 호기심에서 비롯된 '왜'라는 질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그 질문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가 그걸 더 어렵게 만드는 거네요.

민 : 사회적 편견이 질문에 대한 자유를 막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경우 그 질문을 끌어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야 해요. 템플 그랜딘을 통해 최근에 알려진 게 자폐 아이들은 '그림으로 생각한다' 거든요. 제 연구의 시작점이기도 했어요. 아이가 어렸을 때 한국에 잠시 있었는데 횟집 수족관 앞에서 30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더라고요. 눈앞에 보이는 장면과 머릿속 그려지는 가상현실이 겹쳐져서 아이 머릿속에는 <니모를 찾아서> 같은 영화가 재생되나 봐요. 그러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걸 보고 있는 거예요.

황 : 그림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가지고 어떻게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까요?

민 : 아이가 그림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면 질문의 형태가 좀 달라지겠죠. 어렸을 때는 제가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져주는 데 집중을 했고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대학에 가서 생물학자가 되겠다길래 그럼 '너 스스로 공부하거라'했죠.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에서 주제를 뽑도록 하고 아이한테 공부 방법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게 해요. 그리고 스스로 공부한 내용을 보고 저는 교정한 후 추가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기만 할 뿐이죠. 다만 우리 아이가 빠른 시간에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연구한 학습법이 있었고, 또 제가 과학자로서 그 분야에 대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황 : 스스로 공부 주제를 찾고 공부 방법에 대한 결정도 스스로 하게 하는 게 인상적이에요. 그걸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의 통찰력이 아주 중요하겠네요. 비어있는 부분을 발견해서 연결해 주고 확장할 수 있는 질문을 적절하게 던져주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조금 전에 말씀하신 왼손과 오른손에 대해 예시를 다시 가져와 보면 왼손을 잘 사용하게 이끌어 준다는 것은, 그림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시각적인 요소를 활용해서 호기심을 갖게 하고 인지로 연결되도록 도와준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봐도 될까요?

민 : 그렇죠. 그런데 그 '인지'라고 하는 것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요. 자동차 사진을 보고 '이건 자동차'야 라고 하는 것은 엄격하게 따지면 '인지'라고 볼 수 없어요. 그냥 이름만 알 뿐인 거죠. 자동차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정확한 인지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자폐를 가진 아이들은 단편적인 정보를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연결하는 것이 더욱 어렵기 때문에 단순히 '자동차는 위험하기 때문에 오면 피해야 해'라는 정보를 준다고 해도 인지로 발전되기 힘들어요. '자동차는 뭘로 만들어졌어?',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지', '단단하고 무거운 것이 빨리 움직이면 힘이 셀까? 약할까?', '그러면 사람이 자동차과 부딪히면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이 부서질까?'와 같이 질문을 쌓아가는 단계가 있어야 '인지'가 형성되는 거죠.

황 : '움직이는 자동차는 위험하다'라는 정보만으로는 유의미한 인지를 끌어낼 수 없는 거군요. 과학 분야의 연구와 실험에 대한 접근 방식과 비슷한 것 같아요. '움직이는 자동차는 왜 위험할까?'라는 질문을 통해 인지를 하고, 그래서 '움직이는 자동차가 다가오면 피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 즉 '왜'를 통해서 '어떻게'를 찾아가는 거네요. 그 방법론을 알려주는 것이 '사고의 전개과정을 기반으로 한 교육'이겠고요.

민 : 예, 맞아요.

황 : 학습을 도와주는 사람이 역할이 아주 중요할 것 같은데 보다 양질의 질문을 던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 : 관찰을 잘해야 하죠. 일상과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관심을 가지고 밀도 있는 관찰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야 좋은 질문이 가능해요.

황 :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연구해 오신 내용을 제가 인터뷰 2시간 안에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어제 선생님의 저서를 읽을 때보다는 조금 더 명확해지는 것 같아요. 생화학자라는 길을 걷다가 교육자로 커리어를 전환하겠다는 큰 결심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민 : 당시에 제가 혈우병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근데 신약 개발이다 보니 돈이 되는 사업이라 금전적인 문제로 부당한 일들을 겪게 됐어요. 개인 실험실을 갖지 못한 과학자의 설움이죠. 그런 일들을 겪으니 과학이 도대체 뭔가 싶고, 지금 아이가 자폐가 있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과학을 연구하나 그런 회의도 들었어요. 그런 일을 겪고 몬트리올에서 밴쿠버로 오면서 교육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황 : 가빈 군(민동필 선생님 아들)의 꿈이 생물학자가 되는 것인가요?

민 :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원래 어렸을 때 시작은 돌이었어요. 그런데 얼마전 학교에서 화산폭발 관련 전시회를 보고 와서 다시 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번에 한국 갔을 때 제주도에 갔었는데 돌을 잔뜩 들고 와서 가방이 엄청 무거웠어요.

황 : 하하. 그랬군요.

민 : 돌에도 관심이 많지만 동물, 특히 바다 생물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애초에 호기심 발동이 자연에서 시작됐어요. 지금은 사회성의 필요성을 학습에 의해서 인지한 상태고 차츰 키워가려고 하지만 어렸을 때는 사회성을 아예 꿈도 못 꿨죠. 사회성은 또래 아이들과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면 어렵거든요. 그래서 자연에 초점을 맞춰 호기심을 유발한 거죠. 자연 속에서는 공감대 형성 없이도 현상과 관찰을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이 되니까요.

황 : 캐나다의 자연이 그런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되었겠어요.

민 : 그럼요. 낚시를 하면서도 자연 현상에 대해서 많은 걸 보고 배우죠.

황 :나중에 가빈 군이 해양학자 혹은 지질학자가 되어 인터뷰를 하게 되었을 때 이런 질문을 받게 되었다고 가정해 볼게요. "민가빈 박사님이 아버지로부터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무엇인가요?" 그때 가빈 군이 어떤 대답을 할까요?

민 : 하나밖에 없죠.

황 : 그게 무엇일까요?

민 : 공부 방법. 저는 아이한테 그걸 알려주는 거예요. 어떤 분야에 대해, 어떤 주제로 하든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그것뿐입니다.

황 :가치관이나 신념 같은 걸 이야기하진 않으시나요?

민 : 전혀 하지 않아요. 같은 내용을 가지고서 공부를 해도 어떤 이는 박사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도둑이 될 수도 있겠죠. 그건 당사자의 선택이고 그 결과 또한 그 사람의 몫이죠.

황 :지금 방금 굉장히 과학자와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하. 역시 뼛속 깊이 과학자이신 것 같아요.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과학자로서 연구를 하실 때와 교육자로서 교육방법을 세상에 내놓고 알리는 일을 하실 때의 마음가짐이 분명 다를 것 같아요. 어떤 마음으로 연구하신 것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계신가요.

민 : 저는 과학을 할 때도 사람들이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서 그 생각 밖의 이면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령 '백신은 백해무익하다'거나 'HIV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많거든요. 과학자들이 수많은 실험 결과가 데이터로 증명을 하고 있는데도 자기가 믿기로 한 것 이외에는 받아들이지 않는 거죠. 심지어 여전히 '지구는 평평하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현상을 보면 사이비 종교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요. 이제는 그 이유를 찾았고 그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해오고 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그 사람들의 선택인 거예요.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저는 교육의 결과라고 봐요. 목표를 스스로 세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어진 목표만을 바라보고 조아가는 거죠. 그건 사회와 교육의 책임이지 개인을 탓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남는 건 하나죠. 그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스스로 모순을 발견해서 그 틀을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갖게 하는 것. 개인적인 문제가 해소되면 사회적인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겠죠. 저는 대단한 목표 같은 건 없어요. 공부 방법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부 방법을 전하고 스스로 목표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거, 그것뿐이에요.

황 : 교육자로서 가장 큰 역할은 개인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민 : 그 '좋다'라는 것도 기준에 따라 다르니까요.

황 : 그렇죠. 말씀하신 것처럼 같은 공부 방법을 가지고도 사기꾼이 되는 기술을 익힐 수도 있고, 지금껏 몰랐던 자연의 새로운 비밀을 밝혀낼 수도 있는 것처럼요. '좋다'는 기준에 정답은 없지만 개인이 행복하고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게 사회, 그리고 교육의 책임이겠지요. 어려운 내용을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민 : 제가 하는 일이 그런 건데요, 뭐. 하하.

황 : 마지막으로 세상에 하고 싶은 말씀 혹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자유롭게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민 : 할 만한 이야기가 딱 하나 있네요.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좀 달리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사실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도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조금 힘들거나 불편할 뿐인데 우리가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이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 사이에 벽을 만들어내는 거라 생각해요. 장애인이 불편한 이유는 모든 사회시설과 관점이 비장애인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자폐나 지적 장애의 경우에도 그들의 특성을 고려해서 그들에게 맞는 교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접근법이 필요해요.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는 장애라는 카테고리를 만든거죠. 다르기 때문에 특별히 도움을 주겠다고 따로 분류한 것이 오히려 '낙인'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고요. '다름'을 융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교육과 공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영어/수학 과목을 우등반, 일반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했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심화반 수업을 따로 운영했다. 정규 수업이 끝난 후부터 심화반 학생들이 이과 심화반, 문과 심화반으로  따로 모여 수업을 받을 동안 반에 남아있는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공부를 했다. 심화반의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바뀌었는데 물론 성적이 기준이었다. 심화반 운영보다 더욱 가관은 교무실 한복판에 있던 게시판이었다. 교사와 학생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학부모들에게 까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던(아니 의도적으로 전시했던) 그 게시판은 중간/기말고사나 모의고사가 치러질 때마다 학생들 사진의 순서가 부지런히 바뀌었다.

학교는 조선 초기보다 더 지독한 신분 사회였다. 꾸준히 교무실 게시판 꼭대기 층에 머무르는 큰 걱정이 없는 학생, 교무실 게시판에 사진이 붙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성적 발표가 나는 날 긴장을 하는 학생, 그리고 교무실에 사진을 제출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호출에서 자유로운 학생...... 공부 머리는 크게 없었으나 자리 운은 좋았던 나는 공부를 잘하던 친구와 꽤 오랜 기간 짝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전교 1등은 물론이고,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에서 전국 등수 한 자릿수를 받기도 하는 수재였다. 언젠가 그 친구에게 물어봤다. "니도 서울대 의대 가고 싶은 거 맞나?"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친구의 미래였지만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친구는 뜬금없는 내 질문에 조금 당황한 것 같았고 잘 모르겠다고 했다.

심화반 제도는 학생들의 겪는 기회의 격차를 심화시켰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더 공부를 잘하게 되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은 더 관심을 잃게 만들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심리적 박탈감과 소외감에 있었다. 학교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학생들에게 공평한 교육을 제공할지 고민하기보다 입시철마다 내 걸리는 현수막에 어떻게 하면 더 큰 숫자를 적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공평은 커녕 지독한 불평등처럼 느껴졌다. 

교육의 본질은 무엇이며 교육자의 책임은 무엇인가. 교무실 전시판에 학생들의 사진을 갈아 끼우며 연고대에 갈 수 있는 학생들을 서울대로 밀어 올리는 일에 온 힘을 쏟는 대신 강제적 '자율'학습에 방치된 아이들의 마음을 한 번 더 궁금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지덕체의 균형을 잃지 않는 전인적인 인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한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 자폐성 장애아동을 위한 교육법을 연구한 민동필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교육의 방향과 짊어져야 할 책임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아야 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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