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LH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박(1949년생, 하지지체장애) 씨는 지난 5월 28일(일요일) 지인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기 위해 마곡나루역을 찾았다. 처음 가 보는 지역이라 좀 일찍 나서서인지 마곡나루역에 도착하고 보니 시간이 좀 여유가 있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으로서는 항상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교통혼잡이 있거나 휠체어 이동에 불편한 시설물이 갑자기 나타나 돌아가야만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고, 편의시설이 없거나 장애인화장실, 엘리베이터 이용, 지하철 환승에 필요한 시간 등을 감안하면 한두 시간의 여유는 항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로 장애인이 사회활동을 하는 경우 비장애인은 적은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이동을 장애인은 하나의 행동에 거의 반나절을 보내야 하니 접근성만이 아니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장애인의 사회참여가 동등해지고 경제적 손실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늘 생각해 왔다. 그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외출에서 활동지원사의 활동은 상당히 절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 씨는 동행자와 함께 마곡나루역에 도착하여 지하철에서 내렸다. 1층으로 이동을 하려고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엘리베이터는 비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 박 씨 혼자만이라도 탈 수 있는 것이 큰 다행이었다. 겨우 박 씨만 비장애인의 틈을 헤집고 탑승을 하였고, 할 수 없이 동행자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여 1층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단순히 1층으로 올라가는 시설물이 엘리베이터이고 에스컬레이터인 줄 알았는데, 1층 도착 지점이 서로 먼 거리를 두고 있었다. 1층은 서울식물원으로 녹지공원으로 조성하여 다양한 위치에 이동 경로가 필요하여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의 도착 지점을 달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 씨는 동행자와 분리가 되자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빨리 동행자를 찾아야 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동행자의 위치를 물어보았으나 도대체 어디가 어디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역사이든지 고객센터는 있기 마련이므로 고객센터를 찾아 서로 그곳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천시 전동휠체어를 운전해야 하는 장애인으로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한 손으로 우산을 들어야 하고, 다른 한 손으로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운전을 한다고 하여 위험이 더 가중되는 것은 아니다. 전동휠체어는 스위치를 어차피 한 손으로 조작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두 손 모두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니 신체는 부자유스럽고 힘든 것이다.
빨리 동행자를 만나야겠다고 여기며 박 씨는 조금 속도를 내어 고객센터를 향해 갔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분수대를 지나가야 했다. 분수대 옆을 지나가는 도중에 비가 와서 미끄러운 바닥에 그만 휠체어가 미끄러지면서 박 씨는 분수대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잠깐 전복된 휠체어에서 불빛이 깜박였다. 얼른 전원 스위치를 꺼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스위치를 끄기도 전에 전동휠체어는 물이 스며들어 스스로 작동을 멈추었다. 박 씨는 도와달라고 소리치며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여러 행인들의 도움으로 겨우 물에서 나와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행인 중에 한 사람이 119도 부르고 경찰도 불렀던 모양이다. 중증장애인이 물에 빠졌으니 심각한 사태라 여겼던 것 같다.
분수대는 물가에 경고를 하기 위해 노란선이 그어져 있었고, 노란선 밖의 통로는 2미터 정도였다. 그러나 안전 펜스나 물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추락 방지용 안전턱은 없었다. 그리고 재질은 판석으로 비가 와서 물기가 묻으면 매우 미끄러운 재질이었다. 분수대 특성상 물기가 주변에 묻기 마련인데 재질이 미끄럽지 않은 것으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고가 나면 주의나 시야 확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안전에 만전을 다해야 한다.
침수로 인해 전기조작이 불가능해지자, 수동으로 바꾸어 겨우 이동이 가능했고, 온몸이 흠뻑 젖어 결혼식 참여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식물원 측에서는 시설물 이용에 안전문제를 대비하여 보험을 가입해 두었으니 안심하고 돌아가 기다리라고 하였다.
모 해상화재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사고 조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보험배상 불가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서울시가 가입한 보험은 시설물의 하자로 인한 배상이었다. 여행자 보험이나 자동차보험처럼 이용자의 모든 사고에 대해 배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과실이 없어야 하고, 피해가 시설물의 하자에 의한 것이라는 증명이 되어야만 보상이 이루어지는 보험이었다.
보험사는 통행로의 폭이 2미터나 되니 그곳으로 얼마든지 갈 수 있는데 굳이 물가로 이동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변의 통로는 경사진 곳이 아니므로 편의증진법 상 어떤 위반도 없으니 배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원에는 안전 펜스의 설치가 법적으로 의무도 아니라고 했다. 노란선 경고는 거리에 사고다발지역이란 경고만 하면 어떤 사고도 책임이 없다는 말과 같다.
국가배상법에서는 공공시설물의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는 경우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편의증진법에서는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물을 이용하고 접근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그 시행령에서는 공원은 바닥의 재질 및 마감을 고려하여 보도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수변의 도로의 안전 주의에 의한 정보제공이나 바닥의 재질이 미끄럽지 않아야 하고, 물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턱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법적 하자로 보인다. 하지만 보험사는 경사진 곳도 아니고 통행폭도 충분하다는 법적 요건을 갖춘 것만 강조하면서 배상을 거부하였다.
당장 휠체어를 구해야 외출이 가능한 박 씨는 휠체어를 마련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비록 사용 연한이 6년이라고는 하지만 중도에 고장이나 사고가 있는 경우 건강보험에서 보장구 지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 씨는 서울식물원에 사고 경위에 대한 내용을 공문으로 받아 건강보험에 제출했다. 식물원의 공문에는 우산을 든 채 단차 구간을 인지하지 못하고 전동휠체어 탑승 상태로 물속으로 넘어졌다고 적고 있었다. 그곳은 단차가 전혀 없다. 식물원의 책임이 전혀 없고 이용자가 전적으로 잘못했다는 내용으로 면피용 공문을 만들어 준 것이다.
박 씨는 건강보험으로부터 새로이 전동휠체어를 지원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어떤 경우라도 사용 연한 6년을 지켜야 하니 앞으로 4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앞으로 4년 동안은 꼼짝하지 않고 집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박 씨는 일단 차상위계층에 속한 자로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당장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월 대여료를 내고 휠체어를 빌리기로 했다. 그리고 서울시가 서울식물원을 운영하는 상부 기관이니 배상을 고려해 달라고 연락을 취했다. 서울시장의 보좌관과 비서실 담당자와 통화를 하였는데 서울식물원에 사정을 알아보고 있다며 시간만 끌고 있다.
박 씨는 장애인의 법률지원을 무료로 하는 법률구조공단을 찾았다. 판례를 살펴보면 관리자가 시설물 하자에 관리행위가 미칠 수 없는 경우는 관리상 하자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과 피해자의 행위와 관리상 하자가 공동원인이 되는 경우 하자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해석한다는 판결이 있다(선고 94다32924). 분수대의 경우 조도나 통행로의 폭, 경사 등에 하자가 없다 하더라도 방호조치를 다한 것이 아니라면 70퍼센트의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례도 있다(2020가단115447).
법원은 소송을 제기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이를 위하여 소송비 대납제도가 있으며, 공익적 소송에 대하여 무료 변론을 자처하는 공익변호사들도 있다. 박 씨의 경우는 통행폭이나 경사로의 문제가 아니라 물기가 묻은 상태에서 미끄럽지 않은 재질이었는가가 관건으로 보인다. 물론 우천시 미끄러졌으니 물기가 묻은 상태의 마찰계수는 분명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안전턱과 경고판을 설치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 통행로가 넓으니 인접한 위험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은 잘못이다. 단지 경고선으로 노란선을 하나 그었다고 방호 조치를 다하였다고도 할 수 없다.
장애인인권센터는 박 씨의 사고는 불의의 사고이고 긴급지원이 필요한 상태라 판단하여 우선 100만원의 소액 긴급지원을 하였다. 그리고 건강보험에 무조건 연한 내의 보조기 손실은 추가지원이 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 서울식물원의 시설물 하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지원할 변호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지자체는 늘 사고가 발생하면 누구의 과실인가를 따지며 소송에 몇 년을 보낸다. 피해자는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고 세상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억울한 입장이 되고 만다. 보험은 하자보험이 아니라 이용상 어떤 사고라도 보상이 이루어지는 보험이어야 한다. 지자체의 책임을 담보하는 보험이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보험으로 가입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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