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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수용시설 문제는 현재진행형, 진실화해위원회 종료 후 상설 기구 필요”

  • 작성일: 중구나눔

“집단수용시설 문제는 현재진행형, 진실화해위원회 종료 후 상설 기구 필요”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7개월 남은 시점에서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만을 다루는 상시적인 독립기구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왔다. 부산 형제복지원으로 대표되는 부랑인시설을 ‘과거사’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집단수용시설까지 다루기 위한 별도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투쟁으로 2020년 12월,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등 주요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국가 사과와 배상, 재발 방지 조치 등을 권고했다. 또한, 부산 영화숙·재생원 사건에 대해선 직권조사 결정을 했으며 그 외에도 서울시립갱생원, 대구시립희망원 등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에도 여러 한계가 존재한다. 부랑인시설 외에 아동·장애인·여성 등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의 전체적인 실상을 파악하는 조사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배·보상을 위한 법령이 없어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에도 피해생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조사 개시일로부터 ‘3년’이라는 활동기간도 제한적이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은 2024년 5월에 종료된다. 법에 따르면, 1년의 기간을 추가로 연장할 수 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진실화해위원회는 18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의 해외동향과 한국의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2년 12월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 해외동향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에서 집단수용시설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조사하고 배·보상했는지를 담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이를 토대로 해외 사례를 참고해 향후 조사 방향과 배·보상 체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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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는 18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의 해외동향과 한국의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온라인 줌을 통해 케이티 라이트 교수가 호주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전 세계 시설아동 인권침해 사례 수집하며 ‘진실규명의 시대’ 밝힌 호주

이날 토론회에서는 온라인 줌을 통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집단수용시설 조사를 한 전문가를 연결해 직접 사례 발표를 들었다.

호주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시설 대응 조사를 위한 왕립위원회’(2013~2017)를 꾸려 시설 내에서 벌어진 아동 성폭력을 조사했다. 이 조사기구는 왕립위원회로서 법적 구속력을 가져 기관에 문서 제출을 요구하는 등 진상규명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케이티 라이트(Katie Wright) 호주 라 트로브(la trobe) 대학 사회학 교수는 “왕립위원회 조사 전에 16개의 소규모 조사가 있었으나 중요한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 내진 못했다. 그러나 왕립위원회는 법적 구속력을 갖고 많은 예산을 투여해 5년간 조사하며, 개별 면담뿐만 아니라 400여일 간의 공청회로 1300여 명의 증인을 소환했다”면서 “왕립위원회 조사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다른 국가의 모범사례로 벤치마킹 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티 라이트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시설아동 인권침해에 대한 공식 조사 사례를 수집하여 ‘진실규명의 시대(The Age of Inquiry)’라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 사이트엔 20개국에서 수행된 83개의 조사기구 사례가 올라와 있다. (▷진실규명의 시대 사이트 바로  가기)

케이티 라이트 교수는 “시설 아동학대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는 것은 ‘전환기 정의’의 메커니즘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전환기 정의는 과거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 이행할 때 국가폭력을 다루기 위해 사용됐던 개념으로, 이를 확장해 민주국가 내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문제를 다루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이어 “어느 한 국가, 한 지역에서 진상규명 조사가 일어나면 다른 국가와 지역으로 퍼져나간다”면서 이를 “진상규명의 연쇄작용”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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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줌을 통해 쟈넷 도티 전 사무관이 뉴질랜드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종교단체가 운영한 민간 복지시설까지 ‘국가 폭력’으로 규정한 뉴질랜드

뉴질랜드의 경우, 2018년 국가 및 종교 단체 산하의 복지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왕립위원회를 꾸렸다. 왕립위원회는 1950년부터 1999년까지 국가와 민간 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2019년에는 권고사항 이행을 위한 ‘왕립 배·보상 기구(Crown Response Unit)’를 설치했다.

쟈넷 도티(Janet Doughty) 전 뉴질랜드 복지시설 인권침해 조사 왕립위원회 보좌사무관은 현재 이 기구에서 수석고문으로 활동하며 배·보상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

그는 배·보상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응급성’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생존자들이 사망하기 전에 배·보상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존자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생존자 경험 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시설수용에 관한 정보에 접근하는 데 당사자가 어려움을 겪으니 현재보다 더 쉽고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쟈넷 도티 전 사무관은 “(배·보상을 위해 피해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피해생존자가 자신의 진술을 반복하면서 트라우마를 겪지 않게 해야 한다. 한 번 이야기했을 때 그 부분이 반영될 수 있게 배·보상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러한 배·보상 과정은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전제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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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는 18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의 해외동향과 한국의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강혜민


- “집단수용시설 문제 해결 위한 상설 기구 필요” 전문가들 한목소리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 해외동향 연구』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한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집단수용시설 문제를 다룰 상설 독립 부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사무국장은 “국가폭력과 책임에 대한 확장적 이해가 필요하다”면서 “뉴질랜드에선 국가의 허용 아래 민간이 운영한 종교단체 산하의 복지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도 ‘국가 폭력’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는 대다수 사회복지시설이 종교단체에 민간 위탁되어 운영되는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 준다.

이어 “피해생존자의 주장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수용 피해 그 자체가 깊이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를 ‘경청’해야 한다”면서 ‘생존자가 맨 앞에서 진상규명 문제를 주도해야 한다’는 쟈넷 도티 전 사무관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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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날 참석한 토론자들도 “충분한 예산을 들여 상설적인 독립기구를 설치하고 피해생존자에게 장기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방향에 모두 동의했다.

김재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조교수는 “진실화해위원회와 같은 일회성의 과거사 정리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시설수용 문제는 과거의 특수한 사람들이 겪은 문제가 아니다. 현재에도 여러 인구 집단이 경험하고,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명당 배·보상금을 얼마 지불해야 하는지, 상시적인 기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얼마나 드는지 등 문제해결을 ‘비용’으로 접근”하는 정부 태도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로 나아가는 데 불확실성을 안겨 준다고 지적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호주는 진상조사를 위해 2013년~2017년까지 4천억 원이 넘는 예산을 썼다”면서 상설기구 설치와 운영을 위해 충분한 재정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도희 변호사는 집단수용시설 문제는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지금도 장애인거주시설에는 3만 명의 발달장애인이, 정신요양시설과 정신병원에는 7만 명이, 아동복지시설에는 1만 명의 아동이 수용되어 있다”면서 “보수정권이 집권한 후 탈시설 제도가 퇴행하고 있는데 이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유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사 과정에서 ‘트라우마 인지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 연구위원은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진술 과정이 트라우마를 다시 유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조사와 진실규명 자체를 피해회복의 연장선상에서 사고해야 한다”고 전했다.

- 피해생존자 “얼마나 더 끌고 갈 건가” 현재진행형 고통 호소

이날 토론회에서는 시설수용 경험이 있는 피해생존자들이 참석해 이 문제가 현재진행형임을 다시금 알렸다.

조민호 씨는 4~5살 무렵 길을 잃어 당시 춘천에 있는 입양시설에 수용됐다. 국내에서 해외입양산업이 활개 치던 1970년대였다. 시설은 조 씨를 해외로 입양 보내기 위해 고아호적을 만들었다. 다행히 조 씨는 해외로 입양되지 않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원주의 한 수용시설에서 자라야 했다. 성인이 된 후 조 씨는 자신의 기록을 찾기 위해 시설을 돌아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조 씨는 “원가정에서 양육 받을 권리는 단순히 가족 찾기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자신이 겪은 문제는 “아동인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조 씨도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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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수용 피해생존자 홍성정 씨가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홍성정 씨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 경기도 선감학원, 부산 형제복지원 등 다양한 시설을 전전하며 살았다. 홍 씨는 토론회에서 울분을 토하며 “일주일에 한 번 먹었던 마약성 진통제를 이제 네 번, 여섯 번 먹는다. (한종선 씨가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나선 때로부터) 10년이 넘었다. 얼마나 더 끌고 갈 건가”라면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이날 토론회 시작 전 인사말에서 한종선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유가족모임 대표는 “배·보상과 함께 국가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어야 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사과를 권고했지만 국가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면서 “국가가 국민 세금 쓰는 게 무거움으로 다가와야 하는데 배상금 찔끔 주고 매번 끝나니 국가 폭력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진정성 있는 사과는 금액보다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5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