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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에게 감지덕지한 교육공무원을 퇴직했습니다

  • 작성일: 중구나눔

중증장애인에게 감지덕지한 교육공무원을 퇴직했습니다


2010년 11월 1일자로 교육 공무원 임용이 되었던 나는, 2023년 10월 16일자로 의원면직(일반 퇴직)이 되었다.

​퇴직의 중요한 사유는 우리 아이들 현혜의 교육 문제, IB(국제 바칼로레아) 학교로 전학하려고 대구로 이사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만의 퇴직 사유라면, 아래에 말하게 될 여러가지 고충으로 솔직히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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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혜가 전학하게 될 IB 월드 스쿨, 현풍초등학교 모습. ⓒ 박혜정


누군가는 감지덕지, 호강에 겨워 하는 말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나 역시도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 덕분에 개인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부당한 인사조치, 팀원들의 편견,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일을 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 때가 많았다. ​학내 구성원이라지만 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인으로만 인식되어 늘 외톨이였고,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조차 없는 분위기였다.

​안정적인 급여를 받으며 짤리지 않는 철밥통, 복지가 좋은 혜택만으로 버티기에는 늘 외로운 회사 생활이었다. ​언제든 기회, 명분이 되면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제 현혜의 교육 문제라는 명분이 생겼고 나는 더이상 내 인생을 저당잡히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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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필로 쓴 사직서. ⓒ 박혜정


처음에는 국가직 중증장애인 교육 공무원으로 부푼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일을 하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인식으로 인사 이동, 근무 환경 등에 생각보다 많은 불이익을 겪었다. 2008년 처음 중증장애인 특별채용이 시행되고, 나는 2010년 초창기 임용이다 보니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장애인 차별에 해당하는 상황도 많이 있었다.

​하는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고 힘들어서 인사 이동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동을 원하는 부서에서 내가 장애인이라 부서원들이 부담스러워 한다며 거절을 당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인사 이동 요청을 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14년째 근무하게 된 총무과 부속실에는 2명의 팀원들이 함께 있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가면 무조건 거절하는 한 사람, 창문이 손에 닿지 않아 열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일일이 대신 열어줄 수 없다며 막대기를 하나 가져와서 스스로 열라고 했던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배려조차 없었기에 너무나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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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업무를 하는 모습. ⓒ 박혜정

근무 환경에 있어서도 욕창 때문에, 통증 때문에, 대소변 처리 때문에 내가 몇 가지 편의를 요청하고, 재택근무나 병가를 쓰겠다고 요청했지만, 규정과 관례상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국립대학교 교직원 1,500명이 넘는 중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 장애인은 14년 동안 유일한 나 혼자였기에, 경직되어 있고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규정과 통상적인 관례를 깨기 위한 외로운 싸움은 하나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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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장애인 공무원 인사 매뉴얼. ⓒ 박혜정

그런 세월을 지나 2018년 처음 중증장애인 공무원 간담회가 열렸다. 나는 2019년 간담회에 직접 참석을 했고, 2020년에는 코로나 상황으로 줌(zoom)을 통해 간담회를 참석하면서 그 동안 겪었던 내 고충에 대해 발언을 했다. 사실 얼마나 내 의견이 받아들여질까 의문이었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20년 나의 의견이 반영이 되어 인사혁신처에 균형인사지침이 공문으로 내려왔다. 이후 장애인 공무원 인사관리 매뉴얼이 배포되었다. 인사이동에 관한 부분은 다른 장애인 분들이 건의를 많이 했고, 나는 재택근무에 대한 의견을 냈었다. 그런 의견이 받아들여진 걸 보고 나는 정말 너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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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의견이 반영되어 나온 장애인 공무원 인사매뉴얼 중 복무 관련 내용. ⓒ 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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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의견이 반영되어 나온 장애인 공무원 인사매뉴얼 중 유연근무 관련 내용. ⓒ 박혜정

학교 인사 담당자와 직속 팀장님, 과장님께 재택근무를 계속할 근거가 생겼고, 욕창이나 재활 치료 때문에 병가도 떳떳하게 쓸 수도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특별히 잘해서라기 보다 세월을 어찌 견디며 세상이 변했고, 코로나 시국이라는 상황이 와서 타이밍이 잘 맞아졌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더 목소리를 내어 장애인 복지를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었다. 장애인 공무원이든 아니든 우리 젊은 후배들, 장애인이 아니어도 씩씩하게 자라고 일했으면 하는 후손 세대들을 위해 내가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드디어 의원 면직 공문이 나왔고, 지난 달에 퇴직이 되었다. 한편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당연히 들었지만, ​홀가분하기 짝이 없었다. 뭔가 자유의 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고, 공무원 생활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퇴직을 하기도 전에 벌써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아는 분의 소개로 지역 신문사에서 온라인 팀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신문사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신문사의 후원사, 맛집 홈페이지 제작을 매월 10개 정도씩 하게 되었다. ​출퇴근 필요없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가까이 했던 홈페이지 제작, 웹 디자인 업무는 당시에 계속된 야근으로 욕창도 생기고 너무 하기 싫었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에 허튼 시간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배우고, 일하고, 노력을 쏟았던 모든 일은 모두 밑거름으로 나에게 탄탄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앞으로 나는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오늘과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삶도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