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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9월 14일) 서울 당산역에 위치한 은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번에 금융감독원이 시각장애인도 금융상품에 편리하게 가입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하여 필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은행 문을 열었다.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려 직원을 만났을 때 필자는 정기 예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창구의 직원은 이런저런 서류를 쓰라고 했으나, 시각장애인인 필자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점자 아닌 문자는 쓸 수 없다고 말하자 직원은 도장을 가져왔는지, 같이 온 사람은 없는지 여러 차례 물었다.

시각장애인은 자기 돈으로 예금 가입도 못하냐고 묻자 그렇진 않다고 하며 이러한 경우에 추가로 필요한 서류들이 있어서 직원도 힘들다고 대답했다. 한참을 헤매고 여기저기 전화로 알아본 끝에 이름은 써야 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중에는 자기 이름을 글로 적을 수 없는 이가 많다. 필자처럼 맹학교를 졸업했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 금융거래를 하기가 매우 난감하다.

필자는 문자를 적지 못하는 경우 대필이 허용되고 한글을 아예 모르는 경우 직원이 시각장애인의 손을 잡고 함께 쓰면 본인이 쓴 것으로 인정이 된다고 말했고, 그제야 그렇게 업무가 처리됐다.

직원은 창구가 아니라 콜센터를 통해서 정기예금 가입을 하도록 안내했다. 5분 남짓 기다려서 콜센터의 전화를 받았고 본인 인증을 거친 다음 가까스로 예금 계좌 하나를 개설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의 금융거래 편의성을 지금보다 더욱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종종 목돈이 아닌 경우 시각장애인 이동지원센터 차량을 타고 혼자서 은행에 방문해 계좌를 개설한 적이 있다.

필자처럼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도 편하게 일을 하게 배려했던 은행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고 이런저런 난관에 막혀서 어쩔 줄 몰라 하다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일이 없도록 금융감독원이 제도를 정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에게는 은행 업무가 너무나 힘들다. 이번에도 비장애인과 비교해 세 배 넘는 시간이 걸렸고 창구 직원의 업무도 늘었다.

만일 예금 가입이 아니라 대출 신청 내지 신용카드 개설 같은 일을 하려고 했다면 은행에서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을 것이고 필자는 필요한 일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금융감독원은 시각장애인 당사자와 그 연합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시각장애인이 금융거래를 더욱 편하게 하도록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각장애인의 금융거래 편의성 개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장애 당사자의 직접 참여다. 활동지원사든 지인이든 본인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야 한다면 시각장애인은 자기의 금융 정보를 타인에게 고스란히 노출해야 한다.

나에게 돈이 얼마나 어디에 있는지를 남에게 낱낱이 알리고픈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단지 께름칙한 마음 때문만이 아니라 개인정보 유출이란 실질적인 위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시각장애인도 금융거래를 안전하게 하도록 현행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할 때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