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고용에서의 장애인 차별진정을 기각한 인권위를 규탄하며,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에이블뉴스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있는 지체장애인에게 택배보관소 업무를 준 것이 차별이 아니라고요?”

오른쪽 편마비로 오른쪽 팔과 다리에 모두 마비가 있는 지체장애인 A 씨는 12년 전인 2012년 장애인 의무고용으로 경기도 모 병원에 취업해 총무팀 사무보조로 우편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2020년 4월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다음 해인 2021년 3월, 택배 전담 직원이 그만두며 택배보관소 업무를 떠맡게 됐다.

택배보관소 업무는 택배기사가 두고 간 생수, 기저귀 박스 등 다양한 물품을 부서별로 정리해 옮기고 관리대장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장애가 있는 A 씨는 하루 최대 200개의 택배량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A 씨는 물건을 옮기려면 왼손과 왼팔로만 잡아 들어올려야 하고, 오른쪽 다리는 왼쪽에 비해 짧아 걸음도 절뚝거린다. 결국 물건을 옮기다가 뒤로 넘어져 3주간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기도 했다.

‘장애 고려없는 업무배치는 장애인차별’ 피켓을 든 중증장애인 활동가 모습.ⓒ에이블뉴스
‘장애 고려없는 업무배치는 장애인차별’ 피켓을 든 중증장애인 활동가 모습.ⓒ에이블뉴스

회사 측에 어려움도 호소해봤지만, 모두 거부당했다.결국 A 씨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1577-1330 장애인차별상담전화 평지’ 상담센터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지만, 인권위는 지난 8월, ‘부당한 업무배치와 차별이 아니다’라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는 ▲택배보관소는 일차적으로 택배기사가 정해진 곳에 분류해 물건을 적재하는 점 ▲수령자가 직접 물건을 찾고 옮기도록 하고 있는 점 ▲무거운 물건을 옮겨야 하는 경우에는 보안팀 직원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점 등을 고려해 신체적 부담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택배보관소 업무는 코로나19 발생 동안 일시적인 업무로, 그 전과 비교해 퇴근 시간이 크게 다르지 않아 업무 능력에 비해 과도한 업무량이라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이 같은 인권위 기각 결정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27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인권위의 잘못된 결정을 규탄하며, 인권위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당사자인 A 씨는"시간 변경도 업무 조율도 없이 일방적 통보가 사람 대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2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회의 참석 및 업무 결정권도 없고 사고가 나도 업무 변경도 전혀 없었다”면서 “앞으로는 저와 같은 장애인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두 아이의 아빠인 A 씨는 지난 7월 육아휴직을 낸 상태다.

서울대학교 공익법률센터 김산하 변호사가 행정심판 청구 취지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에이블뉴스
서울대학교 공익법률센터 김산하 변호사가 행정심판 청구 취지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에이블뉴스

서울대학교 공익법률센터 김산하 변호사는 “이 사건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간접차별에 해당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라고 청구 취지를 밝히며, “차별이 아니라고 본 인권위의 부당한 처분은 취소돼야 한다. 장애인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일할 수 있도록 올바른 판단을 내려달라”고 강조했다.

장추련 김성연 사무국장 또한 “당사자 의사 상관없이,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업무배치는 그 자체로 엄격한 차별행위로 규정돼 있다. 많은 분이 장애인 고용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인권위는 당사자 입장과 법의 해석을 명확하게 해서 장애인 차별 시정기구로서 역할을 다해달라”고 결정을 바로 잡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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