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이현옥 칼럼니스트】 올림픽과 패럴림픽에는 나라를 잃었거나 혹은 고국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난민들이 한팀을 이뤄 출전한다. 패럴림픽은 IPC 회원국 자격을 갖춰야 출전할 수 있다. IPC 회원국은 총 182개국으로 작년 파리 대회에는 회원국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난민팀(RPT)이 이름을 걸고 나와 총 183개국이 참가한 것으로 기록됐다.

2024년 파리 패럴림픽에는 총 6개 종목 9명의 난민 대표팀이 출전했다. ©IPC
현재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민족간 갈등이나 종교, 이념 등의 문제로 국가전이나 내전이 벌어지고 있어 이들이 난민 자격으로 패럴림픽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같은 경우는 난민과는 별개로 자국 국기를 가슴에 단 선수들이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출전 했다. 단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사국인 러시아와 이를 도운 벨라루스, 조지아 등의 선수들은 IOC와 IPC의 제제를 받아 국가 소속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러시아는 2014년 소치 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도핑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국제 종합대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를 두고 오히려 아무 잘못 없는 선수들이 인권 탄압을 받는다는 주장을 하지만, 국제 사회가 공조해 이를 저지하고 있다.
러시아 주변국과는 별개로 아프카니스탄처럼 내전이 있거나 종교분쟁이 일어나 국경을 탈출하는 민족의 선수들이 대부분 난민선수들인데, 이들은 국제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고 그 지위가 보장된 인물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아프카니스탄을 탈출한 난민선수 자키아 쿠다다디가 2024년 파리 패럴림픽 대회 태권도 동메달을 획득한 뒤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IPC
자신의 조국을 대표해서 나오지 못하고 난민 자격으로 패럴림픽에 나온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렇게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훈련을 이어 나간다. 때로는 국제경기연맹이 이들의 선수생활을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도와주기도 한다.
일예로 도쿄 패럴림픽 직전에 아프카니스탄이 탈레반 정권에 넘어가면서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던 중 패럴림픽 출전을 준비하던 태권도와 육상 선수가 탈출하지 못해 참가가 무산될 뻔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여자 태권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가 본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호주인의 탈출 비행기 탑승에 성공했고, 유럽 대륙을 거쳐 도쿄 패럴림픽 개막식 이후에야 일본 땅을 밟고 자신의 예정된 경기 스케쥴을 소화한 일화가 있었다.
탈레반의 보복이 염려됐던 쿠다다디는 극비리에 이동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세계태권도연맹의 노력과 전세계에 퍼져있는 한국인 태권도사범들이 일사불란 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나중에 알려지기도 했다.

2024년 파리 패럴림픽 태권도 경기장에서 관중들이 아프카니스탄 선수 자티아 쿠다다디를 응원하고 있다. ©IPC
마치 영화 대탈주를 보는듯한 느낌 그 자체인데, 가슴 졸이며 아프카니스탄을 무사히 탈출한 쿠다다디의 태권도 경기는 어땠을까? 도쿄 패럴림픽에서는 개최국 일본이 마련해준 경기복을 급하게 입고 아프카니스탄 국기를 가슴에 달고 사력을 다해 경기를 했지만, 첫 경기에서 지고 이후 더올라가지 못했다. 쿠다다디는 아프카니스탄 출신으로 패럴림픽에 처음 출전한 여성선수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용감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한 패럴림픽 정신의 산증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하겠다.
도쿄 대회 이후 그녀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으며 이후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파리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따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프랑스가 패럴림픽 개최국으로서 메달 욕심을 내는 상황이라 쿠다다디에게 프랑스인으로 대회에 나갈 것을 권유했지만 그녀는 난민팀을 고수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난민 상황을 알려야 조국 아프카니스탄에서 탄압받는 국민들이 세계에 알려진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제뉴스에서도 종종 보듯이 보트를 타고 유럽 대륙으로 넘어온 난민들이 그 지위를 얻기위해 목숨을 걸고, 또 실제로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이들을 막기위해 국경이 봉쇄되고 있다. 그런데 쿠다다디는 패럴림픽 참가 자격으로 주어지는 그 모든 혜택을 거절하고, 자신이 난민임을 전세계에 다시 알렸다.
쿠다다디 외에도 파리 패럴림픽에서 난민팀은 8명의 선수와 1명의 가이드 러너가 6개 종목(육상, 역도, 탁구, 태권도, 트라이애슬론, 휠체어 펜싱)에 참가했는데, 난민 패럴림픽 대표팀의 역사적인 첫 메달을 쿠다다디가 땄다. 쿠다다디가 메달 획득 후 환호하는 세레머니는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아프카니스탄 출신 첫 여성 선수 자키아 쿠다다니가 2024년 파리 패럴림픽대회 장애인태권도에서 동메달을 확정지은 후 코치와 기뻐하고 있다. ©IPC
여자 장애인 태권도 K44-47kg급에 출전한 쿠다다디와 남자 육상(T11) 400m에 출전한 ‘기욤 주니어 아탕가나’는 난민팀 사상 첫 메달(동메달)을 획득하며 이 메달을 전 세계 난민들에게 바쳤다.
난민 선수단의 또다른 동메달리스트이자 개회식 기수이기도 했던 카메룬 출신‘기욤 주니어 아탕가나’는 어린 시절 축구 선수를 꿈꿨지만, 시력을 잃어 꿈을 이루지 못했다. 2020 도쿄 패럴림픽에 카메룬 선수로 출전해 4위를 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영국으로 이주한 후 난민팀에 뽑혀 파리 패럴림픽에서는 시상대 위에 올랐다.
아탕가나는 "난민팀에 선발되고자 최선을 다했고, 기회를 얻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엔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줘 기쁘다"고 밝혔다. 아탕가나와 함께 달린 가이드러너(비장애인) 도나드 은딤 니암주아 역시 카메룬 출신 난민이라 그들의 질주 자체가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2024년 파리 패럴림픽에 난민팀으로 시각장애 육상에 출전한 아탕가나는 카메룬 출신으로 같은 난민팀 소속인 비장애인 선수가 가이드러너를 했다. ©IPC
강제이주 등을 겪은 장애인들은 특히 불편부당한 상황에 직면한다. 이들을 돕는 것은 유엔난민기구(UNHCR)인데, 이 기구가 IPC,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올림픽피난처재단(Olympic Refuge Foundation)과 파트너쉽을 맺고 파리 올림픽 및 패럴림픽에 참가한 난민 선수들을 지원해주었다. 전 세계적으로 최소 1,800만 명의 장애인이 강제로 자신의 조국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들에게 패럴림픽 난민팀의 활약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용기와 응원이 되었을 것이다.
신체적인 불편함에, 자신의 나라를 떠나야 하는 이중고를 겪은 난민 선수단은 패럴림픽으로 두 배의 감동을 안겨 주었다. 파리 대회는 난민 패럴림픽 대표팀에게 유산을 남겼고, 경기력과 기록 면에서 모두 주목할만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유엔난민기구는 "2024년 여름은 전 세계 난민 선수들에게 꿈의 여름이었으며,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 패럴림픽 그 이후를 위한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했다.
2021년 아프카니스탄을 탈출한 후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쿠다다디는“태권도는 내 삶에 있어서 마법과도 같다. 나를 구해줬고, 태권도가 없었다면 누구도 나를 몰랐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장애인스포츠가 마법처럼 인류평화와 인권을 지켜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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