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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픽사베이

사고나 질환으로 척수가 손상되면, 우리의 일상은 단숨에 바뀐다.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없고, 손에 감각이 사라지며, 스스로 소변을 보거나 체온을 조절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척수장애인의 현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복합적 장애를 가진 이들이 아직도 제도적으로는 ‘지체장애’라는 큰 틀 안에 묶여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척수장애인에 대한 독립된 유형분리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

척수손상은 단순히 이동 기능의 장애에 그치지 않는다. 척수는 인간의 생명 유지 기능에 깊이 관여하는 신경의 중심축이다. 손상 이후에는 신경병성 통증, 욕창, 요로감염, 자율신경 기능장애, 반복적 도뇨와 같은 지속적이고도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문제가 동반된다. 이로 인해 척수장애인은 사고 후 몇 달 또는 몇 년간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받고, 이후에도 평생 반복되는 의료·재활 관리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현행 복지체계에서는 이러한 고유의 필요가 간과되고 있다. ‘지체장애’라는 큰 범주 안에서는 척수장애인의 의료·재활 필요성이 통계로 드러나지도 않고,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예컨대, 하반신 마비 상태에서 하루 4회 도뇨를 해야 하는 이들의 특성과, 무릎 관절 수술 후 일시적인 이동 제한을 겪는 이들의 필요는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이를 같은 기준으로 접근하고 있다. 결국, 유형분리는 척수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구조화’다.

국내 의료 환경도 문제다. 재활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하고, 지역별 재활의료 인프라의 편차는 크다. 전문 재활치료가 절실한 척수장애인이 대도시 병원을 오랫동안 전전하거나, 퇴원 후 지역사회에 연계할 기관조차 없어 돌봄의 공백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반면, 미국·캐나다·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척수손상 장애인을 ‘SCI(Spinal Cord Injury)’로 별도 분류해, 국가 차원의 재활네트워크와 장기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장애 이후의 삶을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만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목소리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와 현장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우리는 지체장애가 아닙니다. 우리는 척수장애인입니다”라는 절박한 외침은 단지 명칭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안에서 실질적인 지원과 존엄한 삶을 보장받고자 하는 외침이다. 이들의 요구는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의료와 재활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절실한 외침이다.

장애유형의 분리는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는 일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정의 정돈이자, 생존을 위한 복지의 기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척수장애인을 제대로 보고, 듣고,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유형분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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