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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이하 연대) 등이 7월 31일 고 김진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공동대표의 1주기를 맞아 국회의사당역 농성장에서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다시금 촉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에이블뉴스 장지용 칼럼니스트】장애계를 가끔 바라보면 조급해하는 성향이 보입니다. 언제나 ‘지금 당장!’을 외치는 모습은 늘 봐왔던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겐 그 ‘지금 당장’이라는 말 속에 ‘부실 입법도 좋아’라는 메시지가 살짝 숨어있다는 느낌이 들어 보입니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장애계가 요구하는 상당수의 정책 요구는 법령 수정으로 그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장애계의 요구가 빠르게 이뤄진 입법사례는 잘 보면 법령 수정만으로도 끝낼 수 있는 요소가 많았습니다. 대부분은 법령 제정이나 수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예산과 인력 투입 같은 복잡한 요소를 같이 끌고 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단 장애계는 법령 제정 이후에 들이닥칠 청구서를 생각해 두지 않은 점도 가끔 있습니다.

장애계 요구사항을 잘 관철하기 위해선 일단 재정 수요와 인력 투입 같은 다른 요소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해서 당장 요구하더라도 시행은 바로 시행하지 않아도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물자를 생산하고 인력을 훈련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정책 요구 등에서 필요 재정 규모 추계를 정확히 하고, 재원 조달 방안 같은 요소까지 완벽한 패키지를 내놓을 수 있어야 정부와 국회도 긍정적인 검토를 내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장애계의 요구사항 상당수는 민간 분야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많은 점이 있습니다. 최근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요구는 타당한 요구였지만, 실행 과정에서 자영업자 등의 반발이 요즘 잦아지고 있습니다. 유예기간 등 전환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 당장’ 바꾸라고 요구하는 수준을 요구했던 점이 이런 결과로 되돌아왔습니다.

물론, 장애인차별금지법처럼 처음 제정 당시에는 민간의 반발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민간의 반발 우려 부분이 거의 실현되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그때는 법령과 제도로만 충분한 입법이었기 때문에 재정 부담 요소가 덜했던 점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법령 몇 구절 바꾸는 정도에서나 장애계 요구가 빠르게 먹히지, 재정 투입되는 순간 반발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거꾸로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몇몇 요구사항은 산업계 같은 다른 곳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점도 있습니다. 저상버스 보급 속도가 느려지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국내 생산공장의 여력이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장애계가 요구하는 속도를 산업계가 따라오기 어려운 점이 분명히 있어서입니다.

그래서 최근 저상버스를 보면 전기버스 보급과 맞물려 빠르게 교체한다는 명분으로 중국산 전기 저상버스가 대규모로 투입되고 있습니다. 즉, 국내 산업 보호라는 장애계 요구사항만큼이나 중요한 지점을 자주 놓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반발하는 세력들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점도 있습니다. 장애인 탈시설 논란조차 현재 시설이용자부모회 같은 반대 세력과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점이 드러나는 실정입니다. 대안은 많다고 해도 결국 반발 세력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역량을 먼저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최근 밑바닥 민심을 알 수 있는 뉴스 댓글을 보면 장애인 관련 보도에서 꼭 ‘시위 안 했으면 한다’라는 내용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윗전’만 불편하면 될 문제를 대중에까지 불편해하게 하는 문제로 만들어 결국 가장 중요한 동력인 대중의 지지를 잃고 시작하는 오류를 빚게 만든 것입니다. 오히려 대중을 불편하게 하는 방식이 아닌 대중에 스며드는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제가 출근할 때 갖춰야 할 일을 까먹고 출근하면 일하는 내내 그 까먹은 일은 생각 한구석에라도 맴돕니다. 빠르게 출근한다고 갖춰야 할 일을 챙기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장애계의 요구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쟁 앞에 준비 없이,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실패와 반발을 결국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장애계의 행동을 가끔 보면 ‘청구서’를 넘어 ‘고지서’ 수준의 요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언제야 대중으로부터 신뢰받고 환영받는 장애계가 될 수 있을지 걱정만 앞섭니다.

우리의 행동은 이제 거대한 회전(會戰)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고 오히려 이제 국지전처럼 각지에서 조용하게 행동해서 그러한 성과가 모이는 과정에서 성과를 낼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너무 ‘지금 당장’에 얽매일 필요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조금 더 차분하고 역설적인 흩어짐을 시작합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