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이복남 객원기자】여름이다. 찌는듯한 폭염에다 비 오고 바람 불고, 습하고 더운 날씨는 세균의 발생률을 높여 각종 피부염과 식중독, 수인성 전염병 등의 위험이 높다.
해마다 여름이면 병원성 미생물에 오염된 물에 의해 매개되는 전염병으로 설사, 복통, 구토 등이 나타나는 소화기계 질환이 많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폭우 수해로 인해 오염된 물과 음식물을 직접 섭취하거나, 환자와의 직간접 접촉, 위생곤충 등을 통해 수인성·식품 매개 감염병이 전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심 구토 설사가 동반되기도 하는데 A 씨는 어느 날 갑자기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약국에서 지사제를 사 왔는데 지사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아내는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 활동지원사가 밥을 하고 누룽지를 만들어서 죽을 끓였다.
하루가 지났다. 구구절절 나열하기는 좀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사가 지속되면 죽을 맛이다. 그런데 보조기를 하는 지체장애인의 경우 그 어려움이나 고통은 몇 배나 더 심하다.

전동스쿠터를 타는 A 씨. ⓒ이복남
방에 누워 있다가도 설사의 신호가 오면 빨리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일어나서 보조기를 착용하는 시간이 족히 2~3분은 걸린다. 그러다가 팬티에다 설사를 지리는 경우도 있는데 차마 활동지원사에게 말하기도 어려워 겨우겨우 한 손으로 주물러 빤 후에 몰래 세탁기에 넣는다고 했다.
지사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었지만, 그래도 견뎌 보려고 하다가 결국 못 견뎌서 활동지원사도 가고 없는데 저녁에야 하는 수 없이 보조기를 하고 전동스쿠터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갔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 몇 군데 병원(의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작은 병원은 대부분이 엘리베이터도 없는 2층에 있어서 멀어도 큰 병원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A 씨가 응급실에 갔다기에 그 정도면 119를 불러서 가지 왜 119를 안 불렀느냐고 했더니, 119를 부르면 올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올 때는 두리발을 부르면 되지, 두리발이 언제 올지 알고.
아무튼 응급실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링거도 맞고 전동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필자 :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던데요?”
A 씨 : “장염이라고 하던데요.”
필자 : “검사를 했으면 원인이 무엇이라고 말 안 하던가요?”
A 씨 : “장염이라는 거 외에 별 말이 없던데요.”

우렁이가 알을 낳은 도랑물. ⓒ이복남
A 씨는 응급실 비용 십여만 원만 지불하고 나왔다고 했다. 응급상황이면 응급실 비용은 안 내도 되는데, 안 따져 보았다고 했다. 그러고도 설사는 5일이나 더 계속되었다고 했다.
며칠 동안 설사할 때의 고충은 말로다 설명할 수가 없다고 했다. 어른용 기저귀가 있는데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기저귀를 준비하세요.
A 씨는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마비된 중증 장애인인데 파크골프 선수다. 다리에 보조기를 하고 전동스쿠터를 타고 파크골프는 왼손으로 친다.
부산의 삼락파크골프장은 낙동강변에 있다. 윗지방에 비가 많이 와서 낙동강물이 불어나면 파크골프장도 물에 잠긴다. 물이 어느 정도 빠지고 나야 다시 공을 칠 수가 있다.
A 씨가 며칠 동안 설사병을 앓고 난 후 다시 파크골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완전히 나은 것 같지는 않아서 음식은 조심한다고 했다. 우리 클럽 회장이 하드와 팥빙수를 사 왔는데 A 씨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A 씨의 설사병을 병원에서도 장염이라고만 했지 정확하게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A 씨 스스로가 진단하기를 비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삼락동 파크골프장에는 곳곳에 벙커가 있다. 파크골프장에서 벙커란 일종의 구덩이인데 삼락 파크골프장 벙커는 비가 오면 물웅덩이가 된다.

물에 잠긴 파크골프장. ⓒ부산장애인파크골프협회
파크골프장에서 공을 치다 보면 공이 벙커에 빠지기도 한다. 벙커에 빠진 공은 집게로 끄집어내서 다시 공을 치기도 한다. 물론 OB선이 쳐진 벙커에 공이 빠지면 OB가 되기도 하지만.
A 씨는 오른쪽 팔과 오른쪽 다리가 마비상태라 그 기능을 잃었다. 그래서 오른쪽 다리에는 보조기를 하고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동스쿠터를 타고 왼손으로 공을 친다.
장갑은 파크골프 장비의 일부라 할 수 있는데 공을 칠 때 클럽 그립을 안정적으로 잡고 손의 미끄러짐을 방지하며, 반복적인 스윙으로 인한 물집이나 굳은살을 예방하기 위함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손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파크골프에서 승패는 장갑을 벗을 때까지라고 한다. 파크골프는 각 홀을 마칠 때마다 점수를 기록하며, 장갑을 벗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종 타수가 확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파크골프를 치면서 끝날 때까지 중간에는 장갑을 벗지 않으므로.
그만큼 장갑이 중요한데, A 씨의 경우 혼자서 장갑을 끼고 벗고 할 수가 없다. 파크골프를 시작할 때는 누군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장갑을 좀 끼워 달라고 한다. 그러나 파크골프를 다 마치고 장갑을 벗을 때는 왼손 장갑의 가운데손가락 부분을 이빨로 깨물고 손가락을 잡아 뺀다.
“파크골프공이 벙커에 빠지기도 하는데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물이 얼마나 더러운 똥물이겠습니까?”
맨날 그 더러운 장갑을 이빨로 물어뜯다 보니까 그래서 수인성 전염병이 옮은 게 아닌가 했다. 양손이 가능한 사람들은 장갑을 이빨로 깨물 일도 없으므로.
그래서 요즘은 스쿠터에 소독제를 가지고 다니고, 장갑도 이빨로 벗지 않으려고 해 보지만 잘 안된다고 했다.
A 씨가 앓았던 설사병의 원인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번 여름에 또 한번 한손 장애인의 비애를 실감했다고 한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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