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다뤄지지 않고 있는 중요한 주제가 있다. 바로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권’ 문제다.「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은 정부가 발달장애인을 위해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정책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넘도록, 정부는 ‘쉬운 정책 정보’의 구체적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해하기 쉬운 정책 정보 기준, 그 어디에도 없다.

‘이해하기 쉬운 정보’는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헌법상 보장된 알 권리의 문제다.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과 제도를 스스로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권리 보장의 출발점이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발달장애인법 제10조와 시행령 제4조가 부여한 ‘이해하기 쉬운 정책정보 제공 의무’를 10년 넘게 방치해왔다.

<발달장애인법 제10조 3단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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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법 제10조 3단 비교.ⓒ소소한소통

현재 복지부가 제시하는 유일한 근거는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사업안내서’에 수록된 ‘이해하기 쉬운 문서 제작 원칙(안)’이다. 그러나 이 문서는 법적 근거도 없고, 공식적인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은 임시 자료에 불과하다.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라”, “그림이나 사진을 활용하라”는 식의 선언적 문구만 있을 뿐, 어떤 어휘를 사용하고 어떤 표현을 피해야 하는지, 보조적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등 구체적 기준은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그 누구도 쉬운 정보를 이해하고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법은 존재하지만 그 법이 보장하는 권리는 현실 어디에서도 작동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은 여전히 필요한 정책이나 복지서비스 정보를 제대로 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는 명백한 인권 침해다.

해외는 다르다: 쉬운 정보 기준의 제도화

최근 캐나다는 「Accessibility Standards Canada」를 통해 ‘쉬운 언어 기준(Plain Language Standard)’을 국가 표준으로 공식 발표했다. 이 기준은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이민자, 읽기 능력이 낮은 사람 등 다양한 정보접근 취약 계층이 공공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원칙과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문장 구조, 어휘 선택, 시각적 구성 요소의 사용 방식까지 상세히 규정하고 있으며, 공공기관은 이를 준수할 법적 의무를 지닌다. 이는 단순한 권고 수준이 아닌, 법적·제도적 기반 위에서 운영되는 실효성 있는 기준이다.

<캐나다 쉬운 언어 기준>

캐나다 쉬운 언어 기준.ⓒ캐나다 접근성 표준(Accessibility Standards Canada)
캐나다 쉬운 언어 기준.ⓒ캐나다 접근성 표준(Accessibility Standards Canada)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쉬운 정보'에 대한 공식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10년 넘게 법적 의무를 방치한 채, 선언적 문구만 되풀이하고 있는 현실은 국제적 흐름에 크게 뒤처져 있는 모습이다. '쉬운 정보'는 전 세계적으로 정보 접근성과 포용의 기준이 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여전히 이를 '선택 사항’처럼 취급하고 있다. 이 같은 인식 차이는 결국 장애인의 자립과 권리 보장 수준에서도 본질적인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사업안내 일부>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사업안내 일부.ⓒ2025년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사업안내 2쪽(보건복지부)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사업안내 일부.ⓒ2025년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사업안내 2쪽(보건복지부)

 쉬운 정보는 ‘정보 이해’ 그 이상의 변화로 이어진다

시각장애인은 ‘보는 방식’ 대신 ‘듣거나 만지는 방식’으로, 청각장애인은 ‘듣는 방식’ 대신 ‘눈으로 보는 방식’으로 정보를 접한다. 정보 접근 방식은 개인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으며,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 역시 당연한 권리다.

실제 쉬운 정보를 접한 발달장애인의 변화는 단지 ‘이해한다’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전에는 누군가에게 묻거나 의지해야만 했던 일상 속에서, 쉬운 정보를 스스로 이해하고 해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단조롭기만 했던 일상은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동기가 생기면서 삶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도 함께 자라난다. 복잡하고 어려운 정보로 가득 찼던 세상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늘어나자, 이제는 오히려 ‘쉽게 알려달라’ 요구하는 발달장애인도 있다. 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한, ‘자기옹호(self-advocacy)’의 시작이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결정이 가능한 환경의 첫 번째 조건이 바로 발달장애인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를 쉽게 알려주는 것이다.

정부의 책무, 지금이라도 이행해야 한다.

복지부는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법에 근거한 ‘이해하기 쉬운 정책정보 제공 기준’을 공식 고시로 제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실질적인 정책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며,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와 공공기관이 쉬운 정책 정보를 만들 수 있도록 예산과 인력 기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쉬운 정보’는 시혜가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권리이며, 자립과 사회 참여의 출발점이다.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위한 정책을 직접 읽고,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립의 길이 열린다. 정부는 법에 담긴 약속을 지금이라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