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이 주최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이하 ‘드림팀’)’ 20기는 행동하는 장애청년드림팀을 주제로 영국, 미국, 호주 3개국 연수를 마쳤다.
그 중 다온(DAON)팀은 김성현, 신지우, 고명진, 이원진, 이채빈, 이태민 등 대학생과 직장인 청년들로 구성됐다. 팀명 ‘다온’은 ‘좋은 일이 다 온다’는 순우리말 의미와 ‘多(다양할 다)·溫(따뜻할 온)’의 한자 뜻을 함께 담아, 다양성과 따뜻한 조화를 지향한다. 장애와 비장애, 서로 다른 배경의 청년들이 함께 도전해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온팀은 이번 연수에서 ‘장애포괄적 청년정책’을 주제로 8박 10일간 런던·맨체스터·옥스포드 세 도시를 방문해 현지 사례를 탐구하고 교류의 장을 넓혔다. 특히 △청년기에서 성인기로 이어지는 전환기 지원 △장애청년의 고등교육 및 고용 기회 확대 △사회참여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봤으며, 각 기관 담당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정책 개선 방향을 모색했다. 다온팀의 영국 연수 여정은 총 5편의 기고문으로 나누어 독자들에게 소개될 예정이다.

GMYN 알렉스 페어웨더 CEO와 인터뷰를 마치고 다온팀이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 ⓒ다온
한국과 영국, 닮아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
필자는 더나은미래 청년기자로 활동하며 한국 고립·은둔 청년의 자립을 돕는 플랫폼 ‘두더지땅굴’을 취재한 바 있다. 방 안에서만 지내던 청년들이 소모임에 나와 간식을 나누고, 온라인에서 안부를 주고받으며, 잃어버린 유대를 서서히 회복해 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지난 8월 14일, 맨체스터에서 찾은 GMYN(Greater Manchester Youth Network)의 현장도 이와 닮아 있었다. 방 밖으로 나온 청년들이 원으로 둘러앉아 서로를 소개하고 게임을 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낯선 도시의 청년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두더지땅굴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GMYN의 청년들 또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용기를 얻고 사회와 연결되는 감각을 되찾고 있었다.
고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행복해지도록 돕는 일
맨체스터 지역 청년 자선단체 GMYN(Greater Manchester Youth Network)은 △삶의 질 개선 △사회적 연결 △자신감 향상 △지역사회 기여를 핵심 성과로 삼으며, 청년들이 지역과 사회 속에서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설립 20년 차를 맞은 지금, 연간 약 800명의 청년을 지원하며 30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더 인상적인 것은 규모가 아니라, 청년을 대하는 독특한 접근 방식이었다.
“우리는 청년들의 문제를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청년들이 행복해지도록 돕죠.” 알렉스 페어웨더(Alex Fairweather) CEO가 전하는 GMYN의 철학은 명확했다. GMYN의 주요 대상은 자립준비청년, 난민·망명 신청 청년, 장애청년, 그리고 자폐·ADHD 등 발달 특성을 지닌 신경다양성 청년들이다. 쉽게 고립되거나 사회에서 배제될 수 있는 사회적 취약청년 전반을 포괄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교차성(intersectionality)’ 접근법이다. “한 청년이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노숙 상태이고, 정신건강 문제가 있으며, 범죄에 연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복합적 취약성을 이해하고 통합적으로 지원합니다”라고 페어웨더 CEO는 설명했다.
다온팀은 인터뷰에서 경계선 지능 청년 지원 방안을 질문했다. 한국에서는 IQ 70~85 구간의 청년들이 여전히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페어웨더 CEO는 “우리는 진단서를 요구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청년들의 개별 행동과 표현을 살펴 지원하죠”라고 답했다. GMYN은 이처럼 단일 기준에 매이지 않고, 청년 개인의 삶을 세심하게 이해하며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GMYN의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인 ‘체인지메이커스(Changemakers)’는 맨체스터 시의회가 공식 예산을 배정해 운영하는 청년정책 자문그룹이다. 청년들이 직접 정책 개발 과정에 참여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한다. 이는 ‘청년이 할 수 있다(#YoungPeopleCan)’가 GMYN의 구호인 이유이기도 하다.

세션 시작 전, 화면에 ‘환영합니다’라는 한국어 인사가 띄워진 모습 ⓒ다온
고립에서 참여로
다온팀이 함께한 세션은 체인지메이커스의 정기 모임이었다. 맨체스터 청년들을 위해 열리는 이 모임에 특별히 우리 팀도 함께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진행을 맡은 리브 코디네이터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며 세션의 의미를 소개했다.
세션 현장은 세심한 배려로 가득 차 있었다. 시작부터 스크린에는 한국어로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띄워졌다. 멀리서 온 우리를 위해 준비된 한국어 인사는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테이블 뒤편에는 칸쵸, 알새우칩, 초코파이 같은 한국 과자가 놓여 있어 함께 나누어 먹으며 금세 친근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MYN 소개 책자와 무지개색 ‘푸쉬팝’ 장난감, 그리고 ‘돌려 뜯기(Pass the Parcel)’ 게임에서 사용된 질문지가 담긴 선물 꾸러미 ⓒ다온
자리마다 놓인 무지개색 ‘푸쉬팝’ 장난감은 ADHD를 가진 청년들이 손으로 누르며 긴장을 풀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몇 가지 모임 규칙도 안내됐는데,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언제든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모두를 존중한다”는 규칙은 청년들에게 안전한 발언권을 보장해 주는 약속으로 다가왔다. 이어 ADHD 청년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소개됐다. 이를 공유하는 과정은 “나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며, 서로에 대한 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세션에서 진행한 첫 활동은 ‘진실 혹은 거짓(Truth or Lie)’ 게임이었다. 참가자들은 자신에 대한 사실과 거짓을 하나씩 말하고, 다른 이들이 진실을 맞추는 방식이다. 간단한 게임이었지만 웃음 속에서 긴장이 풀리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체인지메이커스 정기 모임에서 ‘찬성/반대(Agree/Disagree)’ 게임에 참여하며 웃음을 나누는 청년들의 모습 ⓒ다온
이어서는 “강아지가 좋은가, 고양이가 좋은가”, “여름이 좋은가, 겨울이 좋은가”처럼 가벼운 질문부터 “청년의 목소리가 어른의 목소리보다 더 중요한가” 같은 깊은 주제까지 다루는 ‘찬성/반대(Agree/Disagree)’ 토론 게임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방 안에서 서로의 입장에 따라 자리를 옮기며 생각을 표현했고, 이는 발언이 서툰 청년들도 몸을 움직이며 의견을 드러낼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진행된 활동은 ‘돌려 뜯기(Pass the Parcel)’ 게임이었다. 초콜릿이 담긴 선물을 음악에 맞춰 돌리다가, 음악이 멈추면 포장지를 쥔 사람이 한 겹을 뜯고 안에 담긴 질문을 읽어 답하는 방식이었다.
포장 안에는 “이 그룹은 어떻게 모두가 속해 있다고 느끼게 해주나요?” 같은 질문이 들어 있었다. 이에 청년들이 차례로 답했는데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서로 도와주기”, “조용히 있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주기” 같은 대답이 나왔다. 게임 속에서 GMYN이 지향하는 포용의 원칙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체인지메이커스 세션 후 다온팀과 영국 청년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다온
참여에서 변화로
체인지메이커스 세션은 청년들이 함께 웃고 용기를 얻는 경험을 넘어, 그 힘을 정책 참여로 확장해 나간다. 세션에서 오간 대화와 짧은 발언 하나까지 청년정책에 반영될 소중한 의견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GMYN은 이를 런디 모델(Lundy Model)에 따라 △안전한 공간(Space) △목소리(Voice) △청중(Audience) △영향력(Influence)의 네 단계를 거쳐 실제 정책 과정에 반영한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의 의견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뤄지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키나 코디네이터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청년에게는 그림카드와 감정카드를 활용해 의견을 받습니다. 이렇게 모은 의견은 반드시 문서로 정리해 정책 결정자에게 전달하고, 그 결과를 다시 청년들에게 피드백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정책 결정자들에게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아요. 대신 청년들이 직접 테이블에 앉아 정책을 논의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철학은 이날 GMYN의 현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고립에서 참여로, 참여에서 변화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GMYN은 단순히 청년을 돕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들이 스스로 변화의 길을 열어갈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청년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다음 편에서는 영국 연수의 마지막 일정으로 인터뷰한 ‘LIMUN(런던 국제 모의유엔)’을 다룬다. LIMUN은 전 세계 청년들이 모여 국제 의제와 사회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로, 청년들의 목소리가 세계적 차원에서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장애와 청년, 인권 의제가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경험이 한국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어본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