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가장 가까운 순간”. ⓒ하석미“물과 가장 가까운 순간”. ⓒ하석미

【에이블뉴스 하석미 칼럼니스트】 춘천은 언제나 설렘을 주는 도시다. 잔잔하게 흐르는 의암호와 푸른 산이 마주 보는 풍경은 지친 일상에 부드러운 위로를 건넨다. 바람 끝에 실린 선선함과 뺨을 간지럽히는 햇살이 기분 좋게 어우러지는 5,

가만히 머물러 있기엔 흘러가는 초록이 너무 아쉬워 전동휠체어의 배터리를 가득 채우고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 춘천으로 향했다. 두 바퀴 대신 전동휠체어의 네 바퀴로 푸른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며,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거울처럼 맑은 호수가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춘천의 자연을 오감으로 마주했다.

하지만 온전한 감동 뒤편에는, 무장애 관광(Barrier-Free Tourism)을 연구하는 이들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가슴 아픈 '선선한 장벽'들과 그것을 뛰어넘는 '다정한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었다.

다정한 멈춤과 낭만이 깃든 푸른 물길

“하늘 위를 걷는 기분”. ⓒ하석미“하늘 위를 걷는 기분”. ⓒ하석미

춘천역에서 내려 조금만 이동하면 푸른 물빛을 품은 의암호 스카이워크가 마주해 온다. 투명한 유리 바닥 아래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아찔한 호수를 보며 함께 간 친구가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는 다정한 소란에 한바탕 맑은 웃음보가 터졌다. 한낮의 열기를 피해 들어선 전망대 그늘에서는 먼저 쉬고 계시던 어르신들이 "여기 잠깐 쉬어가요" 하며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셨다.

다정함이 깃든 이 멈춤의 순간, 이마의 땀방울과 함께 더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바람을 따라 잘게 일렁이는 의암호의 윤슬이 눈망울 가득 담겼다. 여행이란 결국 이렇듯 별것 아닌 작고 사소한 것에 마음을 열고 빵 터지는 웃음을 나누는 일이 아닐까~

“바람을 품은 기다림 소양가처녀상”. ⓒ하석미“바람을 품은 기다림 소양가처녀상”. ⓒ하석미

스카이워크 끝단에서 고개를 돌리면, 거대한 소양강 처녀상이 강바람을 맞으며 의연하게 서 있다.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과 애달픈 시선은 오랜 시간 이 자리를 지켜온 춘천의 얼굴이다. 투명한 현대의 길과 아날로그적인 기다림의 실루엣이 교차하는 이 구간은, 의암호 라이딩의 가장 화려한 서막이다.

"춘천사이로 248다리 위에서". ⓒ하석미"춘천사이로 248다리 위에서". ⓒ하석미

소양강 처녀를 부르며 다시 자전거 길을 따라 촉촉한 풀 내음을 맡으며 달리다 보면 잔잔한 호수 위로 가로놓인 '춘천출렁다리(춘천사이로 248)'가 모습을 드러낸다. 의암공원과 공지천 유원지를 다정하게 연결하는 이 다리는 의암 호수변과 멀리 춘천대교의 탁 트인 전망을 한눈에 선사한다. 다리 길이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호수 위에서 살랑거리는 걸음걸이마다 특유의 낭만적인 매력이 가득 묻어났다. 반가운 변화도 보였다. 예전에는 한쪽에만 엘리베이터가 있어 올라갔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만 했는데, 이제는 양쪽 모두 탑승이 가능하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찾아간 날엔 한쪽 엘리베이터가 마무리 중이었는데, 5월 말일 전에는 양쪽 다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앞으로 이곳을 찾을 휠체어 사용자들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졌다.

또 달려 도착한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KT&G 상상마당 춘천의 예쁜 카페 명당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새콤달콤한 음료로 싱그러운 안도감을 만끽한 뒤, 마침내 이번 여정의 가장 깊은 시사점을 남긴 두 공간으로 향했다.

'교체 탑승'이라는 장벽, 열린 관광의 무색한 뒷면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춘천 삼악산 호수케이블카는 탁 트인 호수 위를 가르며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고령층에게도 삼악산의 비경을 선물할 수 있는 훌륭한 이동 수단이 될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하지만 매표소 초입에 붙은 '케이블카 휠체어 탑승 이용규정' 안내문 앞에서는 아쉬움 가득한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안전과 캐빈 내부 공간 크기를 이유로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의 탑승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동 이동 장치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케이블카를 타려면 1층 매표소에서 자신의 기기를 맡기고 '일반 수동휠체어'로 갈아타야만 한다.

"열린관광지에 대해 생각의 필요성". ⓒ하석미"열린관광지에 대해 생각의 필요성". ⓒ하석미

비장애인의 시선에서는 "휠체어를 대여해 주니 갈아타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중증 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신체의 일부'와 같다. 스스로 조작할 수 없는 수동휠체어로 갈아타는 순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의존적 상태'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개인용 보조기기나 자세 유지 장치를 포기해야 하므로 신체적 불편함과 위험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제부도와 임진각의 케이블카처럼 전동휠체어 사용자가 그대로 탑승할 수 있는 국내외의 선례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2026년 현재 가장 현대적인 관광 시설에서 배터리와 무게, 공간을 이유로 '환승'을 요구하는 현실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열린 관광'이라는 따뜻한 이정표 뒤에 가려진 이 차가운 규정은, 무장애 관광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음을 시사한다.

물 위를 날아오른 자유, 킹카누가 보여준 다정한 포용

케이블카의 아쉬움을 뒤로 접어두고 미리 예약해 둔 오늘 여정의 하이라이트인 의암호 킹카누 나루터로 열심히 달려 도착했다. 솔직히 선착장에 서서 전동휠체어를 탄 채 카누에 올라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먼저 떨렸다. '혹시 균형을 잃어 배가 뒤집히지는 않을까?', '내 휠체어가 정말 무사히 탈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익숙하고 다정한 손길로 천천히 탑승을 도와주시며 건넨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한마디는 생각보다 깊은 위로가 되어 긴장감을 녹여주었다.

"휠체어체 카누에 탑승 중". ⓒ하석미"휠체어체 카누에 탑승 중". ⓒ하석미
“물 위에서 만난 자유”. ⓒ하석미“물 위에서 만난 자유”. ⓒ하석미

그렇게 미끄러지듯 나아간 무동력 킹카누 위에서는 굳이 노를 젓지 않아도 괜찮았다. 자연의 잔잔한 흐름에 몸을 맡기자 사각사각 물을 가르는 소리, 뺨을 스치는 바람, 푸른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오감을 깨웠다. 갈대습지를 부드럽게 스치고 붕어섬을 향해 나아갈 때, 나는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드넓은 하늘을 날고 있다는 선명하고 벅찬 자유를 느꼈다.

다정한 이야기꾼인 '킹스맨'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물결 위에 잠시 멈춰 서서 가지는 물멍의 시간은 복잡한 생각들을 하얗게 비워주었다. 사실 원래 탑승료가 3만 원이라 조금 부담스럽긴 했는데, 다행히 6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되는 바우처 지원 혜택 덕분에 15천원이라는 예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지원금은 소진 시까지라고 하니, 이 푸른 길을 경험하고 싶다면 꼭 미리 예약하고 방문하시길 권합니다.

진짜 무장애 여행이란: 장벽을 넘어 함께 흐르는 길

같은 배 위에서 우리는 억지로 노를 젓지 않아도 다 함께 약속된 곳으로 나아간다. 서로 다른 몸과 모습을 가졌지만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다정한 동반자가 된다.

춘천의 케이블카가 신체적 차이를 이유로 누군가의 발걸음을 제한하고 배제했다면, 이 킹카누는 그 차이를 따스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해 준 귀한 경험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무장애 여행은 단순히 '도착지에 도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행의 전 과정에서 개인의 존엄성과 자립성이 얼마나 지켜지는지가 핵심이다. 진정한 열린관광은 가능한 사람만 이용하는 차가운 구조나 기술적 한계를 먼저 긋는 장벽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몸과 속도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자립을 지키며 함께 머물 수 있을까 다정하게 고민하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