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주말드라마 ‘미녀와 순정남’에 출연하는 두 주인공 고필승(지현우 분)과 박도라(임수향 분) 포스터. ⓒKBS
요즘 필자는 ‘미녀와 순정남’(극본 김사경, 연출 홍석구)이란 드라마를 본다. 이 드라마는 인기 톱스타인 박도라(임수향 분)가 악성 댓글 등 힘든 시간을 겪다 하루아침에 몰락했지만, 초짜 드라마 PD인 고필승(지현우 분)의 용기 주는 마음에 다시 일어서는 등, PD와 톱스타의 인생역전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이 드라마엔 공마리(한수아 분)란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녀는 어렸을 때 사고로 뇌가 손상돼 지적장애가 있고, 26세인 아가씨다. 마리가 초등학생과 어울리는 모습에 엄마 장수연(이일화 분)은 힘들어하지만, 아빠 공진택(박상원 분)은 장수연을 위로한다.
공진택은 마리를 잘 챙길 수 있는 남자와 결혼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던 중에 고필승을 장수연에게 제안한다. 고필승이 남자답게 잘 컸다고 하며 말이다. 장수연은 그 제안을 거절하는데, 실은 장수연이 고필승을 낳은 뒤 자신의 친구인 김선영(윤유선 분)의 집에 몰래 버렸기에 그랬다. 그런 관계였기에 공진택에게 차마 그 얘기는 할 수 없었고 그냥 거절했다.
초등학생과 어울리는 마리는 어느 날 혼자 인형 뽑기를 하러 간다. 당시 인형을 뽑아 준다는 남자의 꼬임에 마리는 그를 따라다가 무서움을 느꼈지만, 그는 마리를 납치하려 한다. 이때 오랜만에 한국에 귀국했던 박도준(이상준 분)이 마리의 비명을 듣고 달려가 마리를 구하고 도준은 그 남자와 함께 경찰서로 간다. 마리 아빠 진택은 뒤늦게 경찰서에 도착하곤 마리의 말에 그 남자를 혼낸다.
그 일 이후로 진택은 마리를 보호할 운전기사를 고용하기에 이르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와 함께 레스토랑으로 간 수연은 그곳으로 박도준을 불러 식사대접을 하며, 도준에게 마리가 어릴 때 사고로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연을 전한다. 이에 도준은 마리가 순수하고 솔직하다는 얘기를 한다. 그때 당시 마리는 도준에게 누나라고 부르라며, 전화번호를 찍어달라고 했다.
박도준(왼쪽, 이상준 분)과 공마리(오른쪽, 한수아 분)가 서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모습. ⓒKBS
며칠 뒤 마리와 도준은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고, 도준은 마리 생일 선물을 주었는데, 마리의 취향에 맞아서인지 마리는 흡족해했다. 도준이 학업 때문에, 미국으로 간다고 하자, 마리는 미국에선 친구 한다며, 우리도 서로 친구 하자고 했고, 도준도 좋다고 했다.
도준이 떠난 이후, 진택과 수연은 마리에게 나이가 조금 많은 사람과 맞선을 제안했고,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맞선 현장에서 아저씨 벌 되는 사람이 맞선 상대임을 알게 된 마리는 집으로 들어온 후 진택과 수연에게 내 짝 아니라며 거절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마리는 길을 가다가 자전거와 부딪치려는 순간 고필승에 의해 구출되는데, 순간 그녀는 이렇게 젠틀하고 멋있는 남자가 있는 거냐고 생각하며 첫눈에 그에게 꽂히게 된다.
이후 마리를 보호했던 운전기사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돼 진택과 수연은 새로운 기사를 구해야 할 처지였다. 당시 박도준은 한국에 귀국했지만, 자신의 누나인 박도라가 자살하려고 했던 게 엄마 백미자(차화연 분) 탓이라며, 집을 나가 레스토랑에서 알바 통해 생계를 해결하려 했다.
수연이 마침 운전기사를 고용하려던 찰나, 우연히 도준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도준에게 공마리의 운전기사 겸 경호원을 하라는 제안을 하며,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했고, 박도준은 제안에 동의한다. 마리도 박도준이 자신의 운전기사이자 경호원인 것에 상당히 좋아했고, 결국 박도준은 마리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마리의 운전기사 겸 경호원으로 일하게 된다.
박도준(왼쪽, 이상준 분)이 공마리 경호원 겸 운전기사 업무를 위해 마리 집에 들어온 모습 ⓒKBS
그런데 고필승의 첫 모습에 마리는 너무도 반해, 도준보다도 필승이 좋았다. 후에 장수연이 자신의 딸 마리가 고필승을 좋아하게 된 것을 알게 되고, 마리 자신이 필승을 만나고 집에 들어온 진택에게 필승과 결혼시켜 달라고 조르자, 수연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마리는 고필승에게 빠진 나머지, 자주 고필승 집에까지 드나들게 된다.
마침내 마리는 엄마인 장수연에게 고필승이 좋다고 고백하고 필승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수연은 이를 거절한다. 거절받은 마리는 장수연의 고등학교 친구인 홍애교(김혜선 분)를 통해 고필승 집을 알게 돼 집으로 찾아가 필승의 엄마인 김선영과 그녀의 시어머니인 소금자(임예진 분)에게 첫눈에 고필승에게 반했다고 고백한다.
마리가 없어진 걸 안 수연은 마리를 찾다 필승의 집에 있다는 얘기를 듣곤 마리를 찾아 집으로 데려갔다. 수연은 마리에게 필승은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고, 이 말을 들은 마리는 충격에 빠지며 필승의 집으로 찾아가, 김선영과 소금자에게 필승 여자친구에 관해 묻는다. 김선영과 소금자는 필승에게 여자친구가 없다고 했고, 그러기에 마리는 수연이 자신에게 거짓말했음을 알았다.
집으로 돌아온 마리는 수연에게 거짓말한 이유를 물었고, 수연은 명쾌하게 이유 밝히지 않으며, 필승과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를 보고, 공진택과 홍애교, 공진택 고모인 공대숙(정재순 분)은 수연의 행동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필승을 좋아하는 마음에 얼마 후, 마리는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필승 집 앞에 가, 필승에게 명품시계를 선물하려 하나, 필승은 이를 거절한다. 이에 마리는 슬퍼하며, 집으로 돌아와 아빠 진택에게 필승과의 결혼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마리의 부탁에 진택은 필승 집으로 찾아가 자신의 딸이 사고로 철이 없다고 하며, 필승을 사윗감으로 원한다고 말한다. 이를 들은 김선영은 양아들 필승에게 진택의 말을 전하며 마리를 만날 생각이 있냐고 물었는데, 필승 자신은 그럴 생각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래서 선영은 자신의 친구 수연과 약속한 후 그녀를 만나, 마리를 만날 생각이 없다는 필승의 말을 전한다.
그런데 필승에 대한 마리의 절절한 마음을 본 소금자는 마리가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따로 필승과 마리와의 자리를 마련했고, 필승 자신은 내키지 않았지만, 마리와 밥 먹으며 친구로 지내기로 한다. 필승이 마리와 만날 생각이 없음을 아는 김선영은 소금자의 이런 모습에 분노했지만, 필승 자신은 만남은 나쁘지 않았고 자신도 수연의 신세를 졌다는 말로 선영을 안심시킨다.
필승이 너무도 좋아서일까? 공마리는 소금자에게 부탁해 필승이 일하는 방송국에 치킨 100마리를 쐈다. 마리를 알아본 방송국 내 사람들 등은 마리에게 고필승과 어떤 사이인지 물었고, 마리는 필승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바람에, 필승이 재벌인 진택의 사위가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를 알게 된 필승은 마리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고, 충격을 받은 마리는 눈물을 보인다. 수연은 이 사실을 안 후 집으로 돌아온 마리에게 싫다는 사람에게 이러는 건 폭력이라 말한다.
공마리가 고필승 방 옷장에 몰래 숨어서 잔 모습이 들키게 된 장면 ⓒKBS
그래도 공마리는 필승과 결혼하고픈 마음에 김선영네 식구들 몰래 필승의 집으로 들어가 필승 방에 있는 옷장에 몰래 숨는다. 하지만 필승이 돌아오지 않자, 피곤한 나머지 졸게 된다. 밤이 되어 필승은 집에 돌아와 자신의 방에서 자게 되는데, 자는 도중에 코 고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자신 방 옷장 안에서 공마리가 코를 곤 것이었다. 선영네 식구들은 이 사실을 수연에게 알리고 수연은 마리 뺨을 때린 후 다음 날 마리와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필승과 결혼하고 싶다는 마리에게 수연은 필승은 마리의 친오빠라며, 자신이 필승이 어렸을 때 김선영 집 앞에 필승을 갖다버렸음을 고백한다. 마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충격받아 집으로 돌아와 드러누웠다. 이후 깨어난 마리 옆으로 수연이 왔는데, 마리는 3일 된 조그만 아기도 버리지 못하고, 버리면 잠 못 올 것 같은데, 엄마는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었냐며, 엄마 집안 사정으로 인해 힘들면 어른을 버려야지,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아기를 왜 버리냐며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라고 수연에게 소리쳤다.
이후 수연은 용서받지 못한 죄를 지은 것 맞으니 잘못했다고 마리에게 말했고, 마리는 내가 아닌 필승 오빠에게 사과하라며, 오빠가 너무 가엽다고 울먹인다. 그리고선, 다음날 마리는 선영 집에 찾아가 그동안 자신이 벌인 일을 사과하고, 앞으론 필승을 남자 아닌 오빠로 생각하겠다며, 자신을 필승 여동생으로만 생각해달라고 한다. 선영 가족은 마리 사과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마리는 밤에 집에 들어온 필승에겐 자신을 동생으로만 생각해달라며, 혼자 외롭게 커 오빠 가지고 싶었는데, 오빠를 남친으로 헷갈렸기에 그동안 해온 행위를 사과한다고 했다. 여동생으로 생각해달란 마리 제안에 대해 필승은 흔쾌히 받아들인다. 집으로 들어온 마리는 수연이 이해되지 않지만, 멋진 오빠를 만들어주어 고맙다며, 자신 재산을 나눠 필승을 돕고 싶다고 수연에게 말했고, 수연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진택을 설득해 드라마 제작사인 고고엔터테인먼트를 차린다.
장수연은 고필승에게 거액을 제안하고, 필승은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여 고고엔터테인먼트 1호 감독이 된다. 고고엔터테인먼트 창립식이 열렸는데 거기엔 장수연 시동생 공진단(고윤 분)도 와있었다. 고필승과 공진단은 화장실에서 만났는데, 결혼할 여자 있었던 공진단이 자신이 좋아했던 김지영(임수향 분)을 가지라고 했고, 필승은 딴 여자한테 집적거리는 진단에게 인간쓰레기라고 했는데. 이에 진단은 격앙돼 싸움을 거는 바람에 둘은 서로 주먹 다툼을 했다.
주먹 다툼을 본 공마리는 필승은 자기 오빠라며 싸움 그만하라고, 공진단을 말리고, 진택의 제지 속에 둘의 싸움은 끝났다. 마리를 포함한 진택 가족은 집으로 돌아왔고, 수연은 마리를 따로 불러 마리에게 필승이 우리 오빠라 하면 사람들이 그 사실을 눈치채니 말조심하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마리는 자신이 필승을 좋아해서 그런 줄 사람들이 안다고 수연에게 말하더니, 그런 걱정은 엄마만의 걱정이라며 이런 걸 가리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엄마에게 일침을 가한다.
병원에 입원한 고필승은 깨어나 가족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공마리 엄마 장수연은 침상에 누워있는 모습 ⓒKBS
어느 날, 필승 촬영장에 수연과 마리는 놀러 갔는데, 그때 촬영장 내 가벽이 필승을 덮치려 해, 필승을 구하려 수연이 몸을 날리는 바람에 수연과 필승은 가벽에 깔렸다. 이 소식을 들은 필승 가족은 급히 병원을 찾았는데, 필승을 수연이 구하려다 다쳤단 말에 의아함을 품는다. 게다가 병원에서 수연이 필승의 이름을 부르니, 필승의 가족과 필승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수연과 마리는 필승의 양아버지 고현철(이두일 분)의 식당 개업식에 참석했는데, 선영 가족은 수연에게서 필승을 평소 아끼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 병원에서 필승을 부른 수연의 모습까지 보니 수상쩍은 느낌이 들었다. 그 찰나에 소금자는 식당 근처 주차장으로 우연히 갔는데, 거기서 마리가 “필승 오빠는 내 오빠잖아. 엄마 아들이고.”라고 수연에게 말하는 걸 듣게 돼 충격받았다.
이에 소금자는 공마리를 따로 불러, 필승이 수연의 아들인지 추궁한 끝에 마리로부터 그가 수연의 혼외자임을 밝힌다. 놀란 소금자는 수연의 혼외자가 필승이라는 사실을 비밀로 했으면 한다는 마리의 말을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약속하고 나서 바로 소금자는 필승의 칫솔과 마리의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검사를 했고, 검사 결과 남매지간임이 드러난 결과지를 숨기려다 자신의 딸 고명동(이영은 분)에게 들켰다. 고명동은 자신의 오빠인 고현철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경악한 고현철은 아내 김선영에게 이 사실을 숨기자고 말했지만, 수연이 필승의 생일에 필승을 포함한 필승 가족에게 선물을 평소 보낸 것까지 생각나선지, 현철은 수연의 행동이 가증스럽다는 느낌에 수연이 다신 주제넘는 짓 하지 말고, 선영에게 관심 끄라고 수연에게 말할 거라며 분노했다. 그 찰나에 현철 아내 김선영은 이를 우연히 듣게 돼 충격받아 쓰러졌지만, 다시 기운을 차려 친구 수연을 찾아가고선 분노를 터뜨리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
자신과의 약속을 소금자가 어긴 걸 알게 된 마리는 선영 집으로 찾아와 소금자에게 약속 어긴 이유를 물었고, 소금자는 장수연이 천벌 받을 짓을 했기에, 지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마리는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했지만, 집으로 들어온 현철은 속은 우리 가족은 뭐냐며, 마리에게 당장 나가라고 호통쳤고, 마리는 선영 집에서 나갔다.
이후 마리는 엄마와 따로 만나 필승이 수연의 친아들인 걸 필승 가족이 알게 된 과정을 설명하며, 이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고백한다. 수연은 마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마리는 주차장에서 필승 얘기하지 말 걸 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이를 들은 수연은 마리, 선영, 필승에게 상처를 준 자신의 잘못이라 하며 눈물을 글썽였고, 마리는 수연에게 울지 말라고 하더니, 수연은 마리를 끌어안고선 마리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울게 된다.
장수연과 공마리가 서로 이야기하는 장면. ⓒKBS
마리가 잘못했다고 했지만, 실은 수연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한 게 맞다. 미국에서 필승 친부를 잃은 상실감 속에 귀국했고, 이후 자신의 임신을 알게 됐고 재혼할 생각이 없었지만, 수연 아버지는 국회의원 선거에 나갔고, 파산 직전인 친정을 구할 목적에 수연이 재벌남 공진택과 재혼하게 됐음을 마리에게 고백한 장면이 나온다. 결국, 진택과는 정략 재혼을 한 셈이다. 진택은 수연을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수연이 사랑이 아닌 정략 재혼을 한 것에, 수연 자신이 혼외자를 버렸던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진택이 받을 충격, 배신감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크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친모에게 버림받는다는 게 상당히 큰 상처인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거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상처는 물론이고, 두 번 다시 친모를 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마리는 엄마를 위해 엄마가 혼외자를 버린 사실을 숨기려고 했지만, 소금자의 추궁 속에 고백하게 돼, 엄마가 욕먹게 됐다. 마리로선 힘들겠지만, 한편으론 소금자에게 한 고백을 통해 엄마가 자신의 잘못을 참회할 기회를 주게 된 결과가 됐으니,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고백하는 게 맞다. 마리에게 잘못은 사실 없는 거다.
그러기에 잘못은 엄마 수연이 한 건데, 마리가 자신의 잘못인 것 같다고 말한 게 사실은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면 나의 경험 등이 생각나서, 잘못했고 미안했다고 하는 게 나로선 불편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에 장애인단체에서 근무할 시 직원이었지만, 알기 쉬운 권리협약 만들기에 함께 하고픈 마음에 권리협약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 몇몇의 장애인단체가 장애인의 이동권이 차별받는다며, 저상버스를 늘리라고 휠체어 이용인들이 요구할 때였다. 저상버스를 늘리게 되면, 아무래도 장애인의 이동권 증진에는 도움이 될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 요구에 공감했었다.
그 요구에 공감한 나머지 권리협약을 알려주는 분에게 저상버스 도입의 의무화를 말한 게 기억난다. 하지만, 그분은 저상버스 도입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저상버스 의무화를 하면, 장애인이 저상버스에 탑승한 상태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다. 얘기를 들으면서 그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당시엔 내가 잘 모르는 것도 있으니까 미안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식이 늘어나게 되면서, 조금 생각이 달라지게 됐다. 저상버스를 의무도입할 때, 시골 지역의 경우엔 길이 울퉁불퉁하기에, 도입 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걸림돌이 있을 거다. 그렇다면, 시골지역 등에 저상버스 도입 시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요인들을 제거하도록 실태조사를 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물론 실태조사엔 예산이 들겠지만,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통한 장애인의 이동권 증진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은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걸 생각해보니, 구지 내가 권리협약을 알려주는 분에게 미안하다고 그래야 했을까 의문이 남았다. 아니, 사실은 내 마음속엔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그분의 권위에 굴복해서 미안했다고 얘기하지는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에 대해 실태조사를 해, 조사결과를 통해 의무화 걸림돌 요인을 제거하자고 분명히 그분에게 얘기했다면 어땠을까?
‘생각은 자유다’. ⓒPixabay
그냥 서로 의견이 달라서 그런 것뿐인데,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의견을 낸 나에겐 아무 잘못이 없는데, 미안하다고 그랬던 걸 생각하면, 나 자신이 당당하지 못했단 느낌에 슬프면서도 화가 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상이란 말이 비정상과 정상을 가르며,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지칭하며 차별하는 정서가 오랫동안 있었기에, 나는 교회 형에게 그 말 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 형은 널 차별하는 것 아니라며 오히려 신경질까지 냈다. 그 형의 눈빛과 신경질에 난 미안하다고 굴복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정상’이라는 말을 통해 상처받은 경험이 사장된 거 같아. 억울하기도 하다. 난 이런 이유 땜에 ‘정상’이란 말 쓰지 말라고 당시 당당히 얘기했다면 억울함은 없었을 것 같다.
이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에 항상 미안해하며, 당당하지 못했을 이유를 생각해봤다. 과거 나는 학교폭력을 심하게 겪었다. 괴롭히지 말라고 하면, 더 괴롭힘을 당했다. 속된 말로 학교생활에서 튀면 더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고, 그런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사실은 학교생활을 하기 싫은 마음이 있었다. 이런 학교폭력 트라우마 땜에 어쩌면 또래나 다른 사람의 가치관에 무조건 적응해야 괴롭힘 안 당한다는 생각을 알게 모르게 나 자신이 많이 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 생활하면서도 내가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른 것까지도 혹시 상처를 받지 않았나 남에게 확인하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친절하게 답했지만, 이게 계속되니 짜증 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에게 확인까지 해가면서 이럴 필요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진짜 잘못했는데도, 그걸 무조건 봐달라는 건 아니다. 그런 때는 과감하게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된다. 그게 자폐성 장애인의 권리이자 의무이니 말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모자른 게 절대 아니고, 오히려 성숙한 것임에도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걸 자주 본다. 나 자신도 과거에 그런 적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잔재가 있기에, 좀 찔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찔리는 나의 양심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지금은 강서구 특수학교가 됐지만, 7년 전 그 지역 주민의 반대가 심했던 사안이 있었다. 서진학교 건립에 대한 것이었는데, 당시 강서구 지역 주민들은 특수학교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국립한방병원이 옛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건립돼야 하고, 강서구에도 특수학교가 있다며, 사실상 서진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2017년 9월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에서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고 있는 장애학부모. ⓒ에이블뉴스 DB
여기에 대해 장애 학부모들은 강서구 특수학교가 1곳이지만, 당시 서울 특수학교는 특수학교대상자의 절반도 수용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강서구에 거주하는 장애학생들은 인근 구로구나 다른 지역의 특수학교로 통학하는 현실이라며, 강서주민들에게 욕을 들으라고 하면 듣겠지만, 특수학교는 포기할 수 없으니 제발 도와달라며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있었다(츨처: 특수학교 설립 '환영', 우리지역은 "안돼요", 에이블뉴스 2017년 9월 6일 기사).
장애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는 장면을 다시금 생각해보며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부모의 절절한 심정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를 포함해 지적·자폐성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람들 때문에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니, 우리는 늘 미안해야 하는 존재여야 하나 하는 생각에 굴욕감이 들었다.
사실 이 문제는 통합교육이 아닌 특수교육과 특수학급 등 권리협약에서 금지하고 있는 분리교육 정책으로 인해 생긴 사단이다. 그러니 사단을 만든 교육부 등의 교육당국과 정부, 지자체 등이 사과해야 할 일인데, 부모들이 무릎을 꿇으니 부모들, 장애학생 잘못이 아님에도 잘못인 것처럼 비춰졌다.
그걸 통해 지적·자폐성 장애 학생은 태어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자괴감마저 심하게 들어 우울했다. 당당하지 못하고 비굴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지적·자폐성 장애 학생은 항상 미안해야 하는 존재로 느껴지게 되니, 살아생전에 노예로 살아야 하나 하는 극단적 생각마저 들게 됐다. 이런 생각이 없어지려면 장애의 인권적 모델로 사회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하겠지.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과 계획이 전혀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지적·자폐성 장애 학생은 이 세상을 살면서 잘못이 없음에도 항상 미안해해야 하고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이는 옳지 않은 거다. 지적·자폐성 장애 학생 등 장애인이 이런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정부를 포함한 이 사회는 이들에게 상당한 잘못을 하고 있다. 당신들이 사과해야 한단 말이다.
그래서 나의 경험과 강서구 특수학교 이슈 등을 통해 ‘발달장애인은 항상 미안해야 하는 존재인가요?’라는 질문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혀 아니다’이다. 진짜 잘못했을 때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사과하면 됨을 새삼스러우나 다시금 상기하련다.(계속)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