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장애인 비례대표의 첫 국회 입성 이후 장애인 비례대표들은 장애인복지·문화 등 분야에서 장애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써왔으나 장애인정책과 예산의 측면에서 장애계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섯달 앞으로 다가온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장애인의회정치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 장애인과 비장애인계를 포괄할 수 있는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장애인복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성이 있는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배출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한양대 한국미래문화연구소 ‘미래문화’ 제7호 논문에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국 장애인의회정치 문화의변화와 발전 방향’(저자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회장)이 게재됐다.

장애인 국회의원들 장애인 삶 개선 위해 노력했지만 장애계 기대에 미치지 못해

1990년대 민주화 운동과 함께 장애인 인권운동이 펼쳐지면서 장애인은 주류 사회문화적 억압에 대항해 사회적, 정치적 인정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정치참여를 위해 장애인계는 선거 시 정당한 투표권 행사를 위한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면서 장애인 비례대표를 주장했고, 그 결과 1996년 15대 국회에 장애인비례대표로 지체장애인 이성재 변호사가 국회에 입성한 후, 현재 21대 국회까지 12명의 장애인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1996년 장애인비례대표의 첫 배출 이후 장애인들은 매 총선 때마다 장애인을 대변할 장애인 국회의원 배출을 통해 소외돼왔던 장애인정책과 예산에 큰 변화를 이끌어오길 원했지만, 결과는 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장애인계에서는 장애인비례대표가 적어도 장애인 출현율 5.39%를 기준으로 국회의원의 5%는 장애인에게 할당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장애인비례대표 국회의원 수는 항상 1%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비례대표 수만큼 중요한 것은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제 역할을 했는가이다.

이에 이번 논문에서는 15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배출된 12명의 장애인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입법 활동을 하였는지 현황을 소개하고 앞으로 어떤 장애인비례대표가 요구되는지 그 발전 방향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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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 현황. ⓒ방귀희

첫 국회 입성 이후 장애인정책 개선 위해 힘쓴 장애인비례대표 국회의원들

국회의원에 장애인 비례대표를 처음 시도한 것은 15대 국회로 목발을 사용하는 이성재 의원이다. 16대에는 장애인 국회의원이 배출되지 않았고 17대 장향숙·정화원 의원부터 18대 이정선·박은수·정하균·곽정숙 의원, 19대 김정록·최동익 의원까지 이어져 내려오다가 20대에 또 다시 장애인 비례대표를 선출하지 않았다. 이후 현재 21대 국회에서 다시 여당과 야당에서 각각 장애인 비례대표 김예지·이종성·최혜영 의원을 배출했다.

시기별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살펴보면, 15대 국회 새정치국민회의 이성재 의원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직접 현장을 찾았고, 1998년 중증장애인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을 대표발의해 가결시켰다. 15대는 혼자서 의정활동을 했지만, 장애인계와 소통하며 많은 성과를 보였다.

17대 국회에서는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과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는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향숙 의원을 위해 본회의장 발언대 높이 조절식으로 제작했고 국회 본관 곳곳에 경사로와 장애인용 화장실을 마련했다. 시각장애인인 정화원 의원을 위해서는 점자표결기가 설치됐다.

정화원 의원은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시각장애인 생존권 보장에 힘썼다. 특히 두 의원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는데, 2007년 고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의 법안과 병합해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은 큰 성과였다.

18대 박은수 의원은 2009년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원안 그대로 가결해 오늘의 장애인복지 틀을 마련했고, 곽정숙 의원은 2009년 ‘장애인주거지원법안’을 대표발의해 2011년 본회의에서 통과된‘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의 기초를 마련했다.

김정록 의원은 19대 1호 법안으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해 4년 동안 제정을 위해 노력했고, ‘중증장애인생 산품 우선구매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장려를 위한 인센티브 확대 및 정부의 우선구매관리시스템 구축·운영을 법제화했다. 최동익 의원은 2013년 ‘점자기본법’을 대표발의해 가결되면서 시각장애인 문자 생활에 큰 변화를 주었다.


21대 장애인비례대표 국회의원인(왼쪽부터)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이종성 의원,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에이블뉴스DB

장애인복지·문화 증진 위해 앞장선 21대 국회 김예지·이종성·최혜영 의원

21대 국회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성 의원은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장애인의 안전보호에 관한 사항을 추가하는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했고,‘구강보건법’을 개정해 시·도에 1개소 이상의 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의무적으로 설치·운영하도록 했으며,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편의시설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매년 4월 10일을 편의증진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예지 의원은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으로 장애인의 문화예술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동시에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장려·지원하기 위해 종합적인 시책을 세우고 추진에 필요한 행정·재정적 지원방안 마련을 규정했으며, ‘공연법’ 개정으로 ‘공연예술진흥기본계획’에 담긴 공연예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사항에 ‘장애 공연예술인을 포함한다’는 내용을 명시하는 등 장애인예술정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국회는 2022년 9월 7일 본회의를 열고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문화예술진흥법’ ‘공연법’ 개정안을 의결했는데, 이중 ‘장애예술인지원법’ 개정안은 국민의힘 김예지·이종성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2건을 병합해 위원회 대안으로 마련한 것으로 장애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장애예술인 창작품 우선구매제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의원은 ‘한국수화언어법’ 개정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중요정책 등을 발표하는 경우 현장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는 방법 등으로 수어통역을 지원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했고,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피해장애인 쉼터, 위기발달장애인쉼터 등의 시설에 학대받은 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학대받은 장애인에 대한 보호를 강화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을 통해 장애인차별에 대한 시정명령의 요건을 완화하고 시정명령 시 차별행위자와 피해자 등이 의견 진술을 할 수 있도록 하며 법무부장관이 시정명령을 하는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 그 내용을 통보하도록 해 차별받는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하고자 했다.

장애인비례대표 장애계 전문성과 새로운 복지정책 위한 창의성 갖추야

전문성이나 대표성 없이 감동 스토리 중심의 인물을 비례대표로 선출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장애인계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꾸준한 주장 속에서 한국장애인의회정치 문화는 ‘복지에서 문화로’, ‘남성 중심에서 여성 중심으로’, ‘단체장에서 전문가로’, ‘경증장애에서 중증장애로’ 조금씩 변화해왔다.

그동안은 장애인의 정치참여 개척기이기에 장애인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를 하기보다는 조용한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것이 장애인의회정치를 무력화시켰다는 것이 방귀희 회장의 평가다.

방귀희 회장은 논문을 통해 “한국 장애인정치 문화가 현재에 머물지 않고 발전기를 맞이하기 위해 장애인비례대표가 단순한 약자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비전과 함께 그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장애인으로 영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장애인 비례대표는 장애인계를 잘 알아야 하고, 전문성과 도덕성이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면서 “장애인복지의 노동정책·노령장애인 정책 등 새로운 콘텐츠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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