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정부는 지난 9월 28일 무려 4년 반에 걸친 정부의 장애청문회 보고서를 12권 별책과 함께 발표했다. 다른 소위 장애선진국에서도 그 유사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국회청문회라 해도 일주일이면 상당한 기간을 할애하는 것인데 4년 반이라면 그 진지함을 충분히 엿 볼 수 있고 예산도 과거의 어느 청문회보다도 가장 많은 AUD $6억불(한화 약 5062억)이 소요된 청문회였다.
참고로 2023년 호주는 세계 14위의 경제대국으로 국민 소득은 $63,487, 한국은 13위로 국민소득 $33,147이었다. 호주는 약 2600만의 인구에 장애가 전체인구의 22%, 6명 중 4명이 장애인으로 약 450만 명이 장애인구로 추산되고 있다.
특기할 사항은 이 청문회는 호주 정부가 주도적으로 솔선해서 채택한 것이 아니라, 실로 수년간에 걸친 장애인권리 실현 단체들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이다.
명망 있는 판사, 변호사, 장애 옹호인, 장애 당사자와 장애 학 전공 교수 등 6명으로 구성된 이 청문회의 과제는 “장애에 대한 폭력, 인권침해, 착취 및 유기”에 관한 것으로 호주의 장애서비스 전체를 완전 재검토해 새로 장애통합 장관을 임명하여 법률 개정, 장애인 정책 전반적인 제고와 옴부즈맨을 임명하는 등 무려 222건의 권고문을 제출했다.
33번의 공개 대 청문회가 있었고, 인터넷, 전화, zoom, 등의 social media를 통한 적극적인 소통이 있었다. 필자도 다섯 차례에 걸쳐 전화로 특히 장애 이민과 난민들에 관한 질의에 응답하며 견해를 표명한바 있다.
이 오랜 기간에 걸친 청문회 수행을 위해 약 10,000여명의 장애인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그들을 보호해 주어야 할 종사자들에 의해 정서적 및 성 학대를 받았고 학교에서는 끊임없는 학교폭력을 받으며 다른 학생들로부터 격리당했고, 최소 임금이 시간당 AUD $23.23인 나라에서 장애인들은 보호작업장에서 겨우 $2를 받았고, 휠체어로 실려 들여가 의사와 상관없이 불임수술을 당했다는 등등의 부당처우를 토로해냈다.
수많은 건의안을 모두 소개하는 데에 제약이 있으나, 우선 2024년까지 겨우 $2를 지급하는 보호작업장을 없앨 것이며, 비장애 학생들과 격리된 특수학교는 2023년부터 학생을 받지 말고 적어도 2051년까지 모두 폐지할 것이 채택되기는 했으나 청문회 위원 6명 모두의 합의를 얻어내지는 못하였다.
특수학교는 결과적으로 고용과 주택 등 삶의 불평등 요소가 된다고 주장한 반면, 반대 위원들은 공정한 교육은 경우에 따라 주류화 교육과 격리는 병행할 수도 있으며, 부모들에게도 선택의 여지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약 7944건의 문건 중 55%는 장애인당사들, 29%는 가족에 의한 것이었다.
장애인들의 안전 사회통합은 온 사회의 어느 곳에서나 이행되어야 할 과제임을 재삼 천명했다. 실로 이 청문회의 핵심은 장애인당사자와 그 가족과 활동보조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런 불편이나 장애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
더 나아가서 증거를 제시하거나 문서로 된 자료를 제시하거나 혹은 개별 상담 등 다른 방법으로 청문회에 참여하더라도 그 과정이 더 이상의 상처‧트라우마를 초래하지 않도록 했다. 즉, 참여자 모두에게 어떠한 형태의 피해가 없는 안전대책을 강구했다.
주류 장애계는 이번 청문회가 장애인들이 폭력에 취약한 부분과 경제적 안정 및 사법제도의 장애 관련 문제 등을 깊이 성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으며, 해당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 청문회 보고서가 장애계의 산적한 문제해결을 위한 청사진으로서는 실현 가능한 비전과 건의안 이행에 필요한 기간의 명기 등 접착력이 부족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 청문회의 보고서는 공개 토론에서 거론된 쟁점들을 대체로 수용했다. 장애인들은 지역사회로부터 격리 및 소외된 환경, 예를 들면 그룹홈, 격리된 특수학교와 보호작업장 등에서 극심한 폭력의 피해를 입는다는 것, 즉 주류사회로부터 격리된 환경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보장해야 하는 투명성과 책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이 제안도 격리교육과 마찬가지로 위원회 전원의 합의를 못 얻어냈다.
위에서 별책‧부록 12권을 동시에 발표했다고 했는데 제1권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 2권, 청문회 개요, 3권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폭력, 침해, 방치, 착취의 본질, 4권 장애인의 인권실현, 5권 완전 사회통합의 실현과제, 6권 장애인의 자결권과 접근성, 7권 통합교육‧고용‧주택, 8권 사법적 정의와 장애인, 9권 호주원주민 장애인, 10권 장애서비스, 11권 독립생활의 이행과 부당사유 해결책, 12권 청문회 이후의 향후 전망이다.
호주의 노동당 정부는 2013년 세계 최초로 과거의 Disability Care Australia를 폐지하고 ‘국가장애인 보험(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Program, NDIS)이라는 것을 도입해 정착기간을 거쳐 2020년부터 시행했다. 핵심 목표는 임의적인 재정 지원이 아닌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에 적합한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현재 이 제도는 약 50만 이상의 장애인을 지원하는데 대개는 처음으로 재정 지원을 받는 장애인들이며 일 년 국가 예산이 무려 AUD $350억 불이며 해마다 그 액수가 증가해 정부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1년에 최소 14%로 불어나고 있는데, 2026년까지 예산을 8% 이내로 줄이고자 한다.
따라서 청문회는 NDIS의 주도로 포괄적인 개혁이 시도되어야 한다지만, 보고서와 건의문은 잠정적인 고려의 대상이다.
장애인의 착취문제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일까? 예를 하나 들면 NDIS가 지원하는 것 중에 장애인의 사회통합과 독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대안적 주거 시설이 NDIS와 계약해 허가를 받은 사설 운영자‧단체가 지원금을 수령하는데, 그 액수가 대단히 크다. 그런데 실제 현실을 보면 장애인들을 보호하고 돕는다는 미명하게 거액의 기금을 정부로부터 받아낸 후 실제 서비스의 질은 한마디로 최하인 부실하고 무책임한 경우가 많아 가히 장애인을 돕는다는 빌미로 정부를 속여 지원금으로 최소한 몇 백만 $를 ‘착취’한다는 비평이 나오게 된 것이다. 대단히 비열하고 악질적이라 지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으로, 결국 막대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청문회 위원 전원의 합의를 이루어 내지도 못한 미완성의 보고서로 평가되는 그 많은 건의 사항들, 장애인의 교육, 건강‧의료, 주택, 고용 및 법적제도, 장애인의 인권과 사회통합 등의 중차대한 과제를 어떻게 개혁해 나갈 것인지는 두 볼일이다.
개혁의 실천은 그 자체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개혁의 전반적인 책임은 호주 중앙정부에만 국한될 수 없다. 정부와 민간단체의 조정 된 협력이 필요하지만, 총체적인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려면 호주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만 한다. 전환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태도에 근본적인 사회와 지역사회의 변화가 선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청문회 위원장의 결론이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핵심 목표는 전체 사회의 변화이다. 아무리 훌륭한 청문회 보고서가 나오고, 법 개정, 장애 정책이 새로 수립되고, 예산이 확충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사회와 지역사회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개혁은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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