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없이 긴 추석 연휴에 본가와 처가를 순회하듯 다녀 오고도 휴일이 남아 있는 기적같은 일에 편안한 마음으로 지인이 추천해준 드라마 <무빙>을 정주행 했다.

사전 정보없이 보기 시작해서인지 쟁쟁한 배우들에 놀라고, 탄탄한 각본과 상상력에 감탄하면서 순식간에 빠져 들었다. 어차피 현생에선 불가하지만 혹여라도 다음 생에 초능력이 주어진다면 어떤 능력을 탐할까 혼자 고민도 하면서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초능력자도 퇴물이 있구나 싶은데 은퇴 후 쓸모가 없어진 인물들이 차례로 제거 되는 스토리와 아직도 남북한 이념 이야기를 하나 싶어 좀 씁쓸하긴 했지만 폭력이 난무하는 것을 싫어하는 아내와 함께 몰입했다.​ 그런데 원작자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면서 느꼈던 나름의 색다른 재미는 초능력자들의 정체성에 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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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무빙'.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우린 괴물도, 영웅도 될 수 있어!

극 중 계도(번개맨)를 보며 자란 봉석이 히어로라 믿는 것과는 다르게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은 히어로스럽기보다 어딘가 소심하고 억압받는 살짝 모자람을 갖춘 보통 이하의 삶을 살아내는 소시민처럼 그려진다.

특히 구룡포(류승룡)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능력을 가장 잘 쓰일 수 있는 일이 조직폭력배의 일원이었고 칼빵 받이로 삶의 대부분을 꾸려왔다. 그리고 '의리'를 내세우며 의심하지 않던 조직원의 의리가 배신으로 점철되면서 자신의 삶이 한순간 괴물로 치부되며 괴로워 한다. 이처럼 이들의 삶에서 발현되는 초능력은 근사함보다는 괴물이 갖춘 혐오스러움으로 비쳐진다.

구룡포의 삶을 좀 더 조망해 보면, 우역곡절 끝에 국가비밀기관의 블랙(현장)요원으로 발탁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다 하루아침에 사무직으로 발령난다. 이 일로 더 이상 자신이 쓸모 없어진 것 같다며 설움에 북받친다. 

이 장면에서 인간의 능력 기준을 쓸모로 평가하는 세상에서 장애인의 쓸모를 생각하게 했다. 또 엄마 등에 업혀 다닐 나이로 보이지 않는 봉석을 들쳐 업고 다니는 미현의 모습을 보며 발달장애 아들을 키워온 자신의 모습을 대입하는 정육점 아주머니의 장면은 감춰야 하는 특별한 능력이 장애로 비쳐질 수 있음에서 쓸모와 특별함은 장애로 확장될 수 있을까를 묻게 된다.

구룡포가 이상한게 아니라 특별하고 빛나는 것이라며 다독이며 지희가 보여주는 다름의 인식이 초능력뿐만아니라 장애에도 적용될 수 있으면 좋겠다. 참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두식이 하늘을 나는 것과 내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은 '이동'의 방법에서 걷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보통 '신체'를 사용해서 걷지 않는다는 방식의 차이로 초능력과 장애는 '다름'이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있을까? 나아가 초능력이든 장애든 개인이 갖는 특별함이 이상함으로 변질되어 배제나 차별을 받지 않는 세상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인간이 더 이상 인간적이지 않고, 괴물이 되레 인간적일 때 벌어지는 인간적이지 못한 처지로 전락하는 현실은 그들이 능력을 숨기고 어떻게든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권력으로부터 소외계층의 인권이 얼마나 억압 받는지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그저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너무 현실적이다. 초능력자들을 주류에서 벗어난 장애인으로 보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괴물, 영웅도 아니라면 우린 무엇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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