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모습의 필자. ©박관찬
어렸을 때 몸이 워낙 약했던 탓에 성인이 되고부터 정말 열심히 건강 관리를 했다. 축구와 헬스를 비롯해 꾸준히 러닝을 하면서 건강과 체력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내 건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그 흔한 감기도 잘 걸리지 않을 만큼 스스로를 건강한 체질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정보접근에 어려움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는 문서가 집으로 와도,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하게 해줘도 난 ‘괜찮다’고 했다. 여기에는 내가 건강관리를 꾸준하게 하고 있으니까 건강검진을 받지 않아도 될 거라는 믿음이 뒷받침되어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건강검진 중에 포함될 눈과 귀를 검사에서 (이미 장애판정을 받았으니) 불필요하게 다시 검사를 해보자는 등의 권유로 다시 검사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 누군가가 말해줬다.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건강검진 제대로 받아두지 않으면 혹시 나중에 암 진단을 받거나 하게 되었을 때 불리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그렇게 건강검진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알려준 덕분에, 난 그제야 건강검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2023년이 내가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해라서 겸사겸사 건강검진을 신청했다.
제대로 된 ‘첫 번째’ 건강검진이기에 당연히 ‘첫 번째’ 공가를 사용했다.
내 몸이 부럽나요?
드디어 건강검진하는 날. 병원에 도착해서 건강검진 받는 곳으로 갔다. 은행에 가면 안내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어떤 남자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안내를 받아서 접수를 하고 숫자가 마킹된 열쇠를 하나 받았다. 탈의실에 가서 해당 번호의 사물함에 옷과 귀중품을 넣어두고 가운으로 갈아입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여자 간호사가 나를 탈의실로 안내했는데, 남자 탈의실까지 같이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 입구에서부터 친절하게 안내해준 남자를 불렀다. 여자 간호사가 그 남자에게 나에 대한 설명을 한 뒤 같이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난 그 남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내가 받은 열쇠의 번호가 적힌 사물함까지 안내했다. 남자는 내가 가방과 서류 등의 짐을 사물함에 넣는 동안 잠시 사라졌다가 곧 다시 왔는데, 손에 가운이 들려 있었다. 난 먼저 바지를 받아 들어서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살펴 봤다. 바지에는 주머니도 없고 상표 등 앞뒤를 구분할 수 있는 표시가 없었다. 난 남자를 보며 물었다.
“이거 어디가 앞이에요?”
직원도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이 바지를 들고 살펴봤지만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알아내지 못한 채 내게 돌려주었다. 나는 그냥 옷을 벗고 바지부터 시작해서 가운을 입기 시작했다. 가운을 입으면서 그 남자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았다.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내가 가운으로 갈아입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아니, 빤히 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런데 남자가 가져온 가운이 내 몸에 작은 사이즈였다. 사이즈가 작은 거 같다고 내가 말하자 그 남자는 재빨리 사라졌다가 큰 사이즈의 가운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난 입었던 가운을 벗어 그 남자가 들고 있던 가운과 맞바꿨다.
내가 다시 가운을 입는 동안에도 그 남자는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지 않아도 되는데, 내게 시각장애가 있어서 전혀 못 보는 줄 알고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 같았다. 저리 좀 떨어져 있으라고 톡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뭐, 같은 남자끼리 몸 다 보면 어떻노 생각하면서. 또 내가 그동안 잘 가꾸고(?) 관리한(?) 몸이니만큼 마음껏 보라고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태연하게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나 잠든 거 맞아요?
혈압부터 피, 소변 등 다양한 검사를 차례대로 받은 뒤 마지막으로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건강검진이 처음이니까 수면 내시경도 처음인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어본 수면 내시경은 정말 궁금했다. ‘순식간에 잠드는’ 과정이 정말 가능한지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먼저 수면 내시경을 한 분들이 잠에서 덜 깬듯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나오는 걸 봤다. 나도 저렇게 되는 걸까? 생각했다.
내 차례가 되어 침대에 옆으로 누우니까 세 명의 간호사들이 그야말로 한꺼번에 내게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누구는 내 입에 호스를 넣고 누구는 팔과 다리를 고정시키고 누구는 내 팔에 꽂은 걸 의료기기에 연결하고….
언제 잠드나 궁금해하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 분명히 세 명의 간호사가 있었는데 아무도 없다. 더 웃긴 건 진짜 한숨도 자지 않은 것처럼 쌩쌩한 느낌이다. 뭔가 잘못되어서 제대로 수면이 안된 건가 싶어 큰 소리로 “저기요!”라고 말했더니 바로 커튼을 젖히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수면 내시경 끝났단다.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내게 나가보라고 한다. 걸음걸이가 전혀 비틀거리지도 않았고 잠든 것 같지도 않았는데 끝났다는 거다. 총 15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진짜 뭘 한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생애 첫 건강검진이니만큼 이번의 경험이 앞으로 또 하게 될 건강검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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