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고용, 이와 관련해 독일은 한국보다 선진국이다. 독일이 모든 면에서 우수해서가 아니다. 한국보다 더 일찍 고민하기 시작했고, 더 일찍 다양한 길을 모색했기 때문에 독일은 한국보다 먼저 앞서 걸어가는 나라, 선진국이다. 따라서 독일에는 나름의 노하우도 해결책도 많고 앞으로 남은 숙제도 산적하다. 이에 총 4회에 걸쳐 ‘장애와 고용, 독일이 걸어가는 길‘ 시리즈를 통해 최근 독일의 장애인 고용 현황을 분석하고, 이와 관련해 독일이 우리나라에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지 살펴본다.<필자주>
비장애인의 삶을 살다가 사고나 병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 중도장애인.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시기에 갑자기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은 장애인의 삶과 동시에 근로자의 삶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다. 원활한 전환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직업재활 시스템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는 중도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 시설 및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일부에선 독일 직업재활 시스템 도입을 제안한다. 왜, 독일일까? 필자가 바라보는 독일 직업재활 시스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목공소에 근무하는 장애인의 모습. ©Andi Weiland/Gesellschaftsbilder
금전보상보다 재활 먼저
독일에는 사회법전 제9권에 근거한 직업재활을 담당하는 기구가 다양하다. 대표적인 직업재활 담당기구로는 건강보험, 연금보험, 산재보험, 연방노동공단이 있다.
직업재활 담당기구는 병이나 사고 발생 후 장애인의 복직이나 (재)취업을 우선시하여 장애인의 사회생활참여 및 노동생활참여를 도모한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은 ‘요양보다 재활 먼저‘(Reha vor Pflege), 연금보험은 ‘연금보다 재활 먼저‘(Reha vor Rente)라는 원칙하에, 장애인에게 요양급여나 조기연금을 지급하기 앞서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총력을 다한다.
직업재활을 위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직장생활을 하지 못할 경우, 그때 비로소 장애인은 금전보상을 받는다.
촘촘한 직업재활 시스템
독일 직업재활 시스템은 의료재활(제1단계), 의료·직업재활(제2단계), 직업재활(제3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세 단계가 매우 촘촘하게 구축된 점이 특징이다. 의료재활과 직업재활의 기본 목표와 내용은 우리나라와 대체로 유사한데, 독일만의 특징을 몇 가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참고로 아래의 내용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의료재활은 장애인이 일반병원에서 응급처치나 치료를 받은 후 재활병원에 입원하거나 통원하는 형태로 받는 재활 프로그램으로, 입원재활 시 장애인은 매일 10유로 정도를 납부한다(만 18세 미만이거나 기초생활수급자 및 저소득 근로자는 납부대상에서 제외된다). 2023년 기준 독일에는 의료재활시설이 약 1천 개 있다. 이 모든 시설에 수용가능인원은 약 16만 명이다.
의료·직업재활은 제1단계(의료재활)와 제3단계(직업재활)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의료·직업재활시설은 말 그대로 의료재활과 직업재활을 동시에 제공하는 재활전문기관이다.
예를 들어 독일연금보험 소속기관인 바드 퓌르몬트 재활센터(Reha-Zentrum Bad Pyrmont)는 정형외과ㆍ심신의학 중점 의료재활과 다양한 직업재활 등 총 32개의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환자 324명을 수용할 수 있고(모든 환자는 1인실에 숙박하고, 자녀를 동반할 경우 2인실에 체류할 수 있다) 의료진과 직업재활 담당사를 포함한 직원 218명이 근무한다. 이곳에는 전문의료시설과 치료시설뿐만 아니라 기계작업실, 목공실, 공예실, 컴퓨터실 등 직업재활을 위한 공간들도 마련되어 있다. 의료재활과 직업재활은 50:50 비율로 진행된다.
의료·직업재활시설의 장점은 의사와 치료사, 직업재활사, 사회복지사, 잡코치 등이 한 건물에 근무하며 서로 긴밀하게 협력한다는 데 있다. 의료재활과 직업재활이 촘촘하게 결합되어 장애인을 위한 일대일 맞춤형 재활이 가능하고, 동시에 취업알선과 사후관리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료·직업재활 직후 복직이나 취업이 가능하다.
일부 의료·직업재활시설은 취업을 원하는 젊은 장애인들을 중점적으로 수용하여 이들의 노동시장진출을 도모하는 데 적극 기여하고 있다. 2021년 기준 독일에는 의료·직업재활시설이 28개 있고, 이 모든 시설에 수용가능한 인원은 약 1천4백 명이다.
직업재활은 주로 직업교육기관(Berufsbildungswerke)과 직업전문기관(Berufsförderungswerke)에서 실시된다. 직업교육기관은 주로 장애 청소년·청년을 대상으로 하고, 직업전문기관은 이미 근로경험이 있는 성인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
직업교육기관과 직업전문기관은 지역사회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교육생들에게 250개 이상의 직종에 대한 직업교육을 실시한다. 이렇듯 직종선택의 폭이 넓은 가운데 교육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직종 및 사업장에서 실습과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다.
직업교육기관과 직업전문기관 교육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은 취업률이 비교적 높은 편인데,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직업전문기관(Berufsförderungswerk Berlin-Brandenburg)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취업률이 80퍼센트가 넘는다.
2022년 기준 독일에는 50개 이상의 직업교육기관에 1만 6천여 명이 교육받을 수 있고, 약 100개의 직업전문기관에 1만2천여 명이 교육받을 수 있다. 직업전문기관 중 6곳은 시각장애인, 척수장애인 등 특정 장애인을 전문적으로 양성한다.
또 다른 직업재활기관으로는 장애인작업장이 있다. 현재 독일에는 약 3천 개의 장애인작업장에 약 32만 명의 장애인이 종사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추가 혜택
직업재활 담당기구는 장애인의 직업재활과 관련된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 즉, 제1단계에서 제3단계에 걸친 모든 재활비용(단, 입원재활 시 앞서 언급했듯 자가부담금이 있다)과 직업훈련이나 직업교육, 직업복귀, 취업준비 등에 드는 비용 그리고 재활시설까지 이동하는 교통비 등을 부담한다.
뿐만 아니라 재활기간동안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한 보조금도 지급하는데, 대표적으로 전환금(Übergangsgeld)이 있다. 전환금은 직업재활 담당기구가 자녀가 없는 사람에게 기존임금의 68%를, 자녀가 있는 사람에게 기존임금의 75%를, 자영업자에게는 이전 년도 기준 평균소득의 80%를 지급하는 제도이다.
또한 당사자 가족 중 12세 미만 자녀 또는 장애가 있는 자녀가 있거나, 당사자의 부재로 인해 가사일을 도맡을 사람이 없을 경우 자녀돌봄과 가사지원 서비스 비용을 지급한다.
빠르게 보단 천천히
필자는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와 정반대로 독일의 "천천히" 문화가 잘 드러나는 예가 바로 직업재활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일 직업재활 시스템은 장애인이 빠르게 재활 받고, 빠르게 직장생활에 복귀하도록 재촉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장애인이 충분히 휴식하고 회복하는 가운데 천천히 그러나 체계적으로 재활 받고 제대로 준비해서 직장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모한다.
재활기간은 개개인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의료재활(제1단계)은 보통 3주 걸리는데 필요에 따라 기간 연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의료ㆍ직업재활(제2단계)은 몇 주에서 최대 3년까지 지속된다. 직업재활(제3단계)은 장애인이 직장을 찾을 때까지 지속된다. 단, 전일제로 계속교육(Weiterbildung, 기존 직업과 관련된 추가교육)을 받는 경우 최대 2년까지만 가능하다.
그리고 독일 직업재활 시스템은 장애인의 복직이나 (재)취업이 최종목표가 아니라, 장애인의 고용유지를 최종목표로 삼는다.
이 목표달성을 위해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장애인의 근로능력을 최대한 회복시켜, 최적의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도장애인을 위한 독일 직업재활 시스템의 특징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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