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다 이민 가방 2개와 함께 무작정 캐나다로 온 2015년 가을, 캐나다의 소도시의 2년제 칼리지 프로그램에 입학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나이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책도 없이 캐나다로 온 주제에 비싸디 비싼 학비를 감당하며 택한 프로그램은 음악산업학과(Music Industry Arts)로 예술 계통이었다.
졸업 후에 취업이라도 하려면 기술이라도 배워야 하는 마당에 음악이라니, 예술이라니. 당시의 치기 어린 막무가내가 이제 와서 후회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캐나다의 기본(Default)적으로 깔린 자유로운 문화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추가적인(Extra) 해방적 영혼을 한 껏 느낄 수 있었던 2년의 값진 경험을 얻었다.
일반적인 음대와 다른 점은 실기평가가 없이 음악에 대한 열정(어떤 종류의 열정이든)을 담은 녹음 파일을 제출하면 '웬만하면' 합격을 시켜주는 허들이 매우 낮은 학과라는 점이었다(덕분에 아무런 음악적 소양이 없는 나도 합격할 수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 미디(MIDI) 프로그램으로 디지털 음악을 만드는 사람, 디제잉을 하는 사람, 무대 연출에 관심이 있는 사람 등 모인 학생들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그들 중에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도 있었다. 자폐증(사실, 아스퍼거 증후군이었는지 서번트 증후군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을 가진 친구, 그리고 양 쪽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였다. 같은 학년이 아니라 직접 말을 걸어볼 기회는 없었으나 전체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그들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자폐증을 가진 친구는 말이 너무 (많고) 빠른 나머지 알아듣기가 어려웠고, 시각장애가 있는 친구는 반대로 말이 느리고 어눌하여 잘 알아듣기 어려웠다. 대강당 수업이 끝날 무렵 교수님과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에 발표를 할 때면 다시 말을 해달라는 요청을 재차 받아야 했다.
하나의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는데 남들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교수님도 다른 학생들도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고 그것보다 더울 놀라운 것은 당사자들이 조금도 주눅 들거나 주저하는 기색이 없다는 것이었다.
칼리지 프로그램 2년 내내 대강당에서 단 한 번도 손을 들고 질문을 한 적 없는 나는 그들의 당당함과 태연함이 놀랍고 부러웠다. 그들은 '자존감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새벽마다 긍정 확언을 몇 번 외친다고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닌 게 분명한 차돌 같은 자존감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거쳐온 환경에서 자신이 가진 '다름' 때문에 좌절한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존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명 정도 되는 전체 학생 중에서 장애를 가진 학생이 2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좀 의아한 부분이었다.
다양성을 자랑으로 삼는 인권 천국이라고 불리는 캐나다도 장애 예술인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꽤 뒤처진 편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2018년 캐나다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시행되었지만, 관련 기금 조성 등 재원 마련 방안이 빠져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고, 관련 프로그램의 활동의 장이나 전시 이벤트가 큰 도시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또 다른 소외를 낳는다는 우려가 많았다.
뿐 만 아니라 코로나19가 닥치는 바람에 수도권, 비수도권 따질 것 없이 장애 예술인들의 활동에 얼음 바람이 부는 등 장애 예술활동 지원 사업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캐나다 예술위원회가 장애 예술 담당관을 두고 장애 예술인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는 등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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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내셔널 액세스 아트센터(National accessArts Centre, NaAC)는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장애 예술 기관 중 하나로서 원래 1975년 In-Definite Arts Society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2020년에는 캐나다 최초의 다학제 장애 예술 기관이 되었다.
현재 캘거리에 위치한 NaAC는 발달장애와 신체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에게 현장 스튜디오 지원과 워크숍을 제공하고 있으며, 온라인으로 집중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캐나다 장애 예술가들의 더 넓은 커뮤니티를 지원한다. 시각 예술, 문학예술, 무용,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장애 예술가들의 작품을 캐나다 국내외에 소개하는 등 활발한 활동과 지원을 펼치고 있다.
내셔널 액세스 아트센터(National access Arts Centre : NaAC)의 CEO는 2017년부터 류정석 대표가 맡고 있다. 그는 사회 복지 기관 수준이었던 NaAC를 문화예술을 공간으로 새롭게 포지셔닝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힌다. 캐나다 안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적인 교류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행보들이 가능한 것은 문화예술을 장애인들의 치료 목적을 위한 복지의 일환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창의성과 그 결과물에 대한 가치 인식과 존중에 기반한 철학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와 예술은 오랫동안 지속된 담론이다. 예술이라는 매체는 장애인의 감정과 생각을 조절, 그리고 정체성 인식에 도움을 주는 치료의 목적만으로 고려되어 왔다. 그런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내셔널 액세스 아트센터의 새로운 움직임은 장애인들의 경험 그 자체의 고유성을 가지는 또 하나의 장르로서 예술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기능적인 측면을 증명하고 있다.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예술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경험을 가진 그들 각자의 언어로 표현하는 창조적 시도로서 오롯한 가치를 가진다. 일반적인 언어가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어 감각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내고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독자적인 예술로 바라봐야 한다.
치료와 복지 차원을 넘어 창작과 소통의 시도로써 세계로 뻗어나가는 캐나다의 장애 예술문화인들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더불어 한국의 장애 예술 단체들과의 교류 소식도 더욱 자주 듣고 싶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