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와 장애인성폭력상담센터 직원이 면담을 하는 모습.(사진은 기사와 무관) ⓒ에이블뉴스DB
기차 여행을 하게 된 어린아이가 들뜬 마음으로 목적지 종착역에 도착하자, 엄마가 손을 잡고 기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엄마가 아이에게 “천천히 빨리” 내리라고 하였다. 아이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라 엄마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엄마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내리기 위해 기다리니 빨리 내려야 한다는 생각과 계단에서 넘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서 천천히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겹쳐져서 나온 말이었다. 아이는 들뜬 좋은 기분은 사라지고 엄마의 눈치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한 지적장애인이 학대를 받아 경찰에서 피해자조사를 받게 되었다. 부모는 장애인의 권리보호와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진술조력인을 요청했다. 조사에 참여한 진술조력인은 “장애인에게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말하세요.”라고 친근하게 말하더니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하지 못하자, “천천히 말하세요.”라고 하고, 대답을 머뭇거리자 “빨리 말하세요”라고 했다.
장애인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되묻자 “천천히 빨리 말하면 되요”라고 말했다. ‘천천히’와 ‘빨리’는 지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쉬운 말이다. 하지만 ‘천천히 빨리’라는 말은 언어학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진술조력인은 법원에서 공개모집하여 양성한 인력이며, 자격증 소지자다. 성폭력, 아동폭력, 장애인의 학대 등의 사건에서 진술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상담 등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장애인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임상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장애인의 특성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담을 해 오던 직업적 태도로 조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을 하는 태도로 장애인을 내담자 취급을 하거나, 아동폭력을 다루던 경험으로 지적장애인을 유치원 아이처럼 다루어버릴 수도 있다.
지적장애인의 학대 조사를 위한 진솔조력인은 반드시 장애 관련 전문가가 조력인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진술조력인 자격증 소지자이기만 하면 되므로, 제대로 된 조력을 받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사건 사실과 기분, 입장을 정확하게 말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진술조력인은 조사 전 사전평가를 통해 피해자의 심리상태와 의사소통 능력을 평가하고, 조사기관과 조사방법과 증언방법을 논의한다. 그리고 조사에 참여하여 의사소통을 중개하고, 진술조력인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진술조력인이라고 장애인 전문가가 아니다. 장애와 무관한 여성이나 아동 전문가가 조력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술조력인은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국 소속이다. 진술조력인은 성폭력범죄처벌법과 아동학대 처벌법에 근거하고 있고 장애인복지법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장애인의 영역은 부족할 수 있고, 장애인학대 처벌법을 별도로 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진술조력인의 보고서는 장애인의 의사능력과 장애 특성에 대한 의견을 담고 있다. 회상의 정확성, 진술 내용의 진실 여부 등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장을 담을 수 없다. 진술인의 말의 신빙성이 있다거나,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어 증거로 충분하다 등의 표현을 할 수 없다.
판단은 재판부가 할 역할이지 진술조력인이 하는 것이 아니므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유리한 의견은 막혀 있으면서 불리한 의견은 표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어 집중력이 약하거나 횡설수설할 수 있다는 의견을 말하면 상태나 특징을 말한 것이지만, 이는 재판부가 증언의 가치를 낮게 보고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하여 피해 사실을 부정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재판부가 사건의 파일이 너무나 방대하여 그것을 모두 꼼꼼히 읽어보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아동학대나 장애인 학대의 사건에서는 피해자 편과 가해자 편이 갈리어 탄원서나 진정서만도 수백 건이 접수되기도 한다.
조사를 한 진술서 내용이 주이고, 진술조력인의 보고서는 참고자료인데, 재판부에서 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많으니 진술조력인의 보고서만 읽거나 보고서의 결론 부분만 보고 사건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사건의 본질과 동떨어진 판단을 할 수 있다.
폭력은 가해자가 가해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면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 피고인의 변호사는 진술서에서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내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재판부는 공공장소에서 정황적으로 그럴 리가 없다며 피해자의 호소를 묵살해 버린다. 실제로 판결문에 피해자의 진술은 단 한 줄도 인용하지 않고 진술조력인의 보고서의 결론만 인용하여 장애 상태만 기록한 사례가 있다.
성폭력이나 아동학대, 장애인학대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있고, 법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거나, 행위가 그렇게 심각한 지속적이고 생명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닌데 인권적 문제라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적 재판부가 있어 실형을 판결하면 너무 과한 것 같고, 학대 현장에 기해자와 피해자 단둘만이 있었고 서로 주장하는 것이 다를 경우 또는 제삼자가 있어도 함부로 자유롭게 증언할 입장이 되지 못할 경우가 대부분인 경우임에도 유죄가 되면 억울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에 중점을 두는 재판부가 있어 진술의 허점과 비논리성, 과장성, 일관성 등을 따져서 증거로서의 가치를 부정하고 무죄로 판결해 버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경우 진술조력인의 말 한마디 즉 장애 상태나 특징 등이 진술의 증거로서의 신빙성을 의심해버리는 판단을 하는 빌미를 제공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진술조력인은 발달장애인이 소통능력을 기록하면서 지적능력 문제를 다루지 않고 언어능력만 다룰 가능성이 높다. 언어성이 좋은 장애인의 경우 비장애인처럼 다루어지게 되고, 언어성이 부족한 장애인의 경우 의사소통의 지원이 아니라 법적 행위능력의 부족으로 다루어져 버릴 수 있다.
그리고 보고서에 지적장애인의 사건에서의 행동 특성이나 반응, 감정 등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소통능력만을 담아 버릴 수 있다. 재판부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의사소통 지원도 못하면서 오히려 그릇된 인식을 갖게 하는 믿을 만한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다. 당연히 장애 전문가가 아니고 단지 상담 기법만 가지고 내담자로 대하던 경력이 감수성을 가지고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하는 기대 자체가 잘못이다.
진술조력인이 제대로 장애인의 조력자가 되려면 어느 정도 장애 감수성을 가지고 피해자 입장을 옹호하는 인권옹호 입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의 문제는 장애 전문가에게 맡겨져야 하며, 그 전문성은 검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건에서의 장애인 행동과 감정, 진술에서의 반응 등에 대한 설명을 보고서에 담고 장애 특성을 재판부에 잘 설명할 수 있는 보고서 양식이 되어야 한다. 장애인 인권옹호 당사자단체가 재판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보고서 양식은 조력인 이력과 언어능력, 결론 등으로 되어 있고, 재판부에 영향을 미칠 사건 내용이나 진술의 신빙성 등은 일절 기록하지 못한다. ‘이 진술은 진술로 보인다’는 등의 말은 할 수 없지만, ‘이런 진술에서 매우 진지한 표정과 고통스러운 기억, 집중력을 보였다’ 등의 보고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진술조력인은 조서를 쓰는 과정 즉, 경찰관의 보조자가 아니다.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관찰자나 통역자가 아니라 인권적 옹호 입장에서 주장하고 설명하는 지위를 가져야 한다. 단지 그 판단은 어차피 재판부가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술조력인 보고서에는 경력, 진술조력 의뢰 내용, 의사소통 능력 등의 평가, 결론으로 이루어진다. 진술조력인이 관찰자나 장애인 평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술조력인이 최선을 다해 임했음을 보고하기 위해 자신이 체득한 여러 내용을 담아 버리면 ‘정신과 투약으로 진술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이란 말을 적어 진술서의 효력을 부정해 버릴 수 있다. 사건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나 피해자 진술 내용의 주석 등이 감수성을 가지고 붙여져야 하며, 사건의 핵심적 진술이 피해를 증명할 수 있도록 의견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재판부가 판단할 몫이지 의견을 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천천히 빨리’라고 말하면 된다는 진술조력인을 만나면 그 장애인은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오히려 막혀 버릴 것이다. 조력인이 아닌 방해자가 되고 만다. 피해자의 상처는 영원히 나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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