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튀니지 정부 심의 시 정부대표단 답변하는 장면 중 일부. ⓒUNWebtv 동영상 캡처
작년 이맘때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대한민국 정부 2·3차 심의에 발맞춰 민간보고서와 이슈 페이퍼를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제네바에선 장애인권리위원회의 비공개 브리핑에 참여하고, 장애인권리위원들로부터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증진하기 위한 권고가 나오기를 바라며 이들에게 이슈 로비했던 기억이 난다. 기대한 만큼의 권고는 나오지 않아 아쉬웠지만 말이다.
1년이 지난 현재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29차 세션을 진행 중이다. 이번 세션엔 독일, 오스트리아, 몽골, 파라과이, 이스라엘 등의 당사국에서 장애인권리위원회 심의를 받을 것이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경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그렇게도 배우려 하는 시설과 독일의 장애인 작업장에 대해 위원회가 어떤 권고를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나도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
5개월 전에도 정부심의는 있었다. 아르헨티나, 페루, 토고, 튀니지, 앙골라, 조지아 등 6개국의 정부 대표단들이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았고, 장애인권리위원회 28차 세션이 폐막된 3월 24일 이들은 권고를 받았다. 28차 세션에서 이들 당사국에 대한 우려와 권고내용이 어떤지 그 내용의 일부를 살펴보겠다. 먼저 아프리카 3개국에 대한 것부터 보겠다.
튀니지, 앙골라, 토고에 대한 우려와 권고
튀니지의 경우엔, 지적·정신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에게 지원의사결정체계를 권고한 장애인권리협약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체의사결정 및 성년후견제를 계속 유지하는 현실이 지적됐다. 또한, 시각장애인, 농인을 포함한 장애인이 동행인 없이 은행 카운터에 갔을 때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이 돈을 인출할 이들의 권리를 거부하는 일이 있었단다. 이처럼 금융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을 금융기관이 제한하는 법률을 당사국이 계속 지지하는 점을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우려했다.
이에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후견 및 대체의사결정을 지지하는 의무 및 계약 법전(the Code of Obligations and Contracts)의 106조, 개인신분법전(Personal Status Code)의 160, 162, 163조를 포함한 모든 법을 검토해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지원의사결정 및 개인의 자율을 지지하는 법령으로 전환할 것을 당사국 튀니지에 권고했다. 아울러 행정 및 재정 거래에서 장애인의 자율성, 사생활, 독립성의 원칙을 수립하는 법으로 바꿀 것 또한 권고했다.
앙골라 정부 심의 시 정부대표단 답변장면 중 일부. ⓒUNWebtv 동영상 캡처
앙골라의 경우엔,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이행과 모니터링 시 장애인 단체의 관여가 제한된 점이 우려사항으로 지적됐다. 이에 장애인 단체와의 의미 있는 파트너십과 논의구조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장애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도록 장애인 단체의 적절한 자원 조달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정책 기획·생성·평가를 포함해 협약을 이행할 법적, 정책 과정 시 장애인 단체의 의미 있는 논의와 활발한 참여를 증진할 것도 당사국 앙골라에 권고했다.
20조 개인의 이동성 관련해선 앙골라 당국이 보조기기 보조금을 제공함으로 장애인의 이동성을 지원하고 있지만, 등록 장애인들만 이런 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아직도 국내에서 제작되지 않은 보조기기가 대다수이며, 민간업체가 고가로 이 기기를 수입하는 것에 의존하고 있고, 기기의 애플리케이션 승인과정이 길기에 장치 조달 시 지연이 발생된다는 보고가 있었단다. 앙골라 당국이 기술 비용을 낮추기 위해 국내에 보조기기를 생산하는 시설을 지으려 한 것에 대한 정보가 장애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점도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선 우려했다.
이에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 등록과 상관없이 특히 실업인과 저소득자에게 보조기기 보조금을 지원할 것은 물론이고, 기기 구입 시 세금 또는 관세 공제와 같이 보조장치 및 기기 취득비용 경감 조치의 도입과 국내 시장에서 이 기기를 생산할 역량과 관심이 있는 앙골라 국내 기업에게 역량강화 및 재정적 지원을 고려할 걸 권고했다. 아울러 앙골라 국내에 보조기기 시설을 지을 시 장애인단체를 통해 장애인과의 의미 있는 협의도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이외에도 앙골라에선 장애인, 특히 심리사회적·지적장애 여성을 포함한 모든 장애여성의 성적 및 재생산 보건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에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 특히 장애여성 및 소녀에게 성적 및 재생산권과 관련한 보건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고, 지적장애/정신장애 여성에게 지원의사결정체계를 보장해 이들이 성적 및 재생산권과 관련된 자율성을 재확인할 수 있도록 할 것을 당사국 앙골라에 권고했다.
토고는 올해 처음으로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았다. 법 2004-005호에서의 장애가 좁게 정의되며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점과 장애인과 함께 일하고 있는 판사, 교사, 보건의료종사자 등을 포함한 정책입안자, 정부 관료들, 전문직 종사자 등이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지적됐다.
그래서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손상이 있는 개인과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에 관한 장벽 간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개념으로 장애를 정의하고 ▲장애인에 대한 경멸적 용어와 개념을 포함하는 법령을 수정/폐지하는 조치를 취할 것,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판사, 검사, 전문가와 모든 레벨의 정부 관료들에게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대한 인식제고와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이 프로그렘에 장애인 단체를 관여시킬 것 등을 권고했다.
제10조 생명권에선 장애인이 비인간적인 치료와 해로운 관습에 노출되어 있고, 특히 부모에 의해 장애아동이 살해되거나 유기되기 쉬운 점, 알비니즘(백색증을 말함)이 있는 사람의 유괴, 살해 관련 보고가 되었다는 점이 주목됐다. 이에 장애아동과 알비니즘이 있는 사람 등 장애인이 유괴와 살인, 유기로부터 보호되고 이와 관련된 모든 가해자들이 법 앞의 정당한 심판을 받을 적절한 법적·정책적 조치를 취할 것을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당사국 토고에 권고했다.
토고 정부심의 시 정부대표단이 답변하는 장면 중 일부. ⓒUNWebtv 동영상 캡처
지금까지 장애인권리위원회 28차 세션에 심의를 받았던 아프리카 3개 당사국에 관련한 장애인 권리 현실에 대한 우려와 이에 관련된 권고사항의 일부를 살펴보았는데, 보면서 우리나라와 사정이 비슷하거나,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장애인들이 처하는 어려움은 비슷한 점이 느껴졌다.
튀니지의 경우엔 우리나라의 현실과 뭔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선 성년후견제의 경우 장애인의 선호와 의지를 확인하는 절차·장치가 없어,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은 존중되지 않고, 돌봄·지원 요구가 큰 중복장애의 경우엔 이런 장치가 전무하며, 후견심판이 이루어지면 후견 종료의 예가 거의 없고, 대체의사결정제도로 현재까지 운영되었다. 아울러 성년후견제 도입 이후 금융기관 등에서 장애인의 금융거래, 상품 가입 등이 거절되며, 시각장애인 등에게 후견인 동행을 요구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생기고 있다.
이에 장애인권리위원회도 작년에 ▲후견제와 피후견제를 포함한 대체의사결정제도를 개별화된 지원을 보장하고 장애인의 자율성, 의지, 선호를 존중하는 지원의사결정제도로의 교체, ▲장애인의 법적 능력에 대한 인식과 의사결정 지원 메커니즘에 대한 개혁 절차와 관련된 사람에 대한 훈련에 장애인 대표단체의 참여를 통해 효과적이고 독립적인 장애인 참여 보장할 것 등을 권고했다.
현재 후견인을 감독하는 체계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지원의사결정제도로 가기 위한 논의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1차 권고에 이어 2·3차 권고가 내려진 이후에도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돌봄요구가 큰 중복장애인 등 장애인의 의지와 선호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도록 보완대체의사소통체계가 제대로 이뤄져야 할 텐데, 여기에 대해 정부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래서 손짓, 발짓, 그림 등 보완대체의사소통과 관련해 예산을 지원하고 장애인 개인에 맞게 소통을 지원할 때 장애인의 선호와 의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지원의사결정체계로 가는 건 물론, 시설 위주의 정책을 종식할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런 시도를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으로 했으면 한다.
그리고 발달장애인, 민법 등에 나온 성년후견과 같은 대체의사결정제도를 지원의사결정제도 내용으로 바꾸기 위한 구체적 논의는 물론, 금융권 사람들과 법원, 사회복지사 등에게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단순 교육을 뛰어넘은 협약을 반영한 내용의 훈련을 정기적·체계적으로 시행, 이들이 이를 실질적으로 적용하고 장애인의 피드백을 받는 시스템이 수립돼야 한다고 본다.
장애인복지법 제2조 장애인의 정의에 대한 설명. ⓒ법제처 사이트 캡처
토고의 경우를 보면서는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정의가 우리나라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애인복지법 제2조 1항에선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장애인’으로 정의하며, 제2조 2항 2호에 정신적 장애를 발달장애 또는 정신 질환으로 발생하는 장애로 정의하는 등, 장애인, 장애의 정의가 순전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다.
아울러 협약의 장애인 권리에 대해 정책입안자, 판사, 검사, 교사 등을 포함, 장애인과 일하는 전문직 종사자의 인식이 부족한 게 현실인 것도 토고의 경우와 닮았다. 이에, 국내 장애 관련 법률과 정책을 협약 조항에 따라 검토함은 물론, 장애인단체와의 긴밀한 참여를 통해 공공 정책입안자, 판사, 검사, 교사,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전문직 종사자에게 협약상의 장애인 권리와 당사국 의무에 대한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라고 우리나라 정부에 권고를 내렸다.
한편 돌봄 요구가 큰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 장애인을 부모가 살해하는 게 대한민국 언론을 통해 최근까지도 보도됐다. 위원회에서도 이를 우려하며, 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 등을 대상으로 장애인단체를 통한 긴밀한 협의와 활발한 참여를 보장하는 구체적인 조치를 포함한 장애인 국가 자살 예방 전략을 채택하고 이행할 것을 권고했다.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토고와는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을 살해한 부모가 양육 부담이 너무도 컸다는 등의 이유가 양형 사유에 반영되며, 장애인 살인이 엄벌이 아닌 집행유예 등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이해가 안 가지는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래서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권고에 포함됐으면 했지만 그렇지 않아 아쉬웠고, 지금도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고 있어 답답한 심정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작년 5월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49재 기간 집중 투쟁’을 선포하며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앙골라의 경우를 접했을 땐, 협약 이행 및 모니터링에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 단체의 의미 있는 참여를 보장할 것을 대한민국 정부에 권고한 내용이 떠올랐다. 이런 권고를 내린 건 그만큼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이행과 모니터링 시 장애인 단체의 관여가 대한민국에선 제한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며, 이는 앙골라의 현실과 어느 정도 연결된다고 본다.
협약 이행을 위한 부처 간 조정위원회의 인적·기술적·재정적 자원이 제한되고 독립적인 모니터링 메커니즘 시 장애인 단체의 참여에 아직까지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조지아의 현실과도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상시적인 CRPD 중심의 국가 정책 및 모니터링 체계 수립에 장애인 당사자와 이들을 대표하는 단체의 관여를 제한해선 안 됨이 너무도 당연하나 이를 앙골라, 조지아, 우리나라 등을 통해 새삼스레 다시금 확인한다.
보조기기 사례를 접했을 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경제적 부담도 생각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전동휠체어의 의료보험 급여액이 일반형의 경우 209만 원에서 236만 원으로 상승했고, 신설된 옵션형(욕창 예방 기능을 높이기 위해 전동식 자세변경장치 포함된 전동휠체어)의 경우엔 209만 원 대비 81% 증액된 380만 원까지 급여 기준액을 올렸다.
하지만 장애인 전동보장구 급여품목 및 결정가격 고시(2019)를 보면 38개 전동휠체어 제품 평균가격은 약 330만 원이라 236만 원에서 자부담 10% 제외한 약 210만 원에 비해선 여전히 높은 금액이라 정부의 급여인상에 대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체감이 그다지 높지 않을 게 우려된다. 그러니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보조기기 비용 경감의 필요성은 앙골라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며, 이 경우 장애인에게 비용 경감이 체감되려면, 기준액이 아닌 전동휠체어 등 이동 보조기기 각각의 실제 구매가격의 90% 정도를 보조금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적 및 재생산권과 관련한 자율성 부문에 있어선 장애로 인해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시 친권자,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땐 부양의무자 동의로 모자보건법을 통해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는 현실이 생각난다. 지원의사결정체계가 미도입된 상황에 타인의 대체의사결정으로 임신중절을 하도록 하는 건 장애인의 재생산권, 자기결정권 침해나 다를 바 없다.
자율성이란 뜻의 단어 Autonomy. ⓒPixabay
그래서 지적장애‧정신장애 여성에게 지원의사결정체계를 보장해 이들이 성적 및 재생산권과 관련된 자율성을 재확인할 수 있도록 앙골라 정부에 권고한 사항은 우리나라 정부에도 유효하다고 본다.
아프리카 3개국에 대한 우려와 권고사항을 일부 소개하고,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 느낌을 적긴 했지만, 이를 통해 이들 3개국은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사회임이 확연히 느껴졌다. 우리나라도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사회이고, 우려와 권고사항도 아프리카의 3개국과 다르지 않고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걸 보면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사회를 만드는 게 참으로 지난하다. 그래도 장애인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삶을 증진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권적 모델의 사회로 가는 건 아프리카 대륙이든 우리나라든 전 세계에 있는 장애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 될 터이니 말이다.
아르헨티나, 페루, 조지아 정부에도 심의 후 우려 사항과 권고가 나왔는데, 그 내용은 다음 글에서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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