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판결로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을 쉽게 하려는 사법입원제도는 ‘묻지마 범죄’ 대책이 될 수 없다.

국민여러분!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한 범죄자는 무관용으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돈이 많아 변호사가 보증한다고, 부모가 높은 지위에 있다고, 권력자라고, 돈이 많다고, 초범이라고, 피해자와 합의했다고, 술을 먹어 사리 분별이 없다고, 정신질환이 있다고, 이들을 관용해서는 안 됩니다.

범죄자보다 피해자의 인권을 더 소중하게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발생한 묻지마 범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관찰하면 묻지마 범죄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이자 공동체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범죄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정신질환자를 표적으로 일부 치료받지 않는 정신질환자를 법원 판결로 손쉽게 강제입원시켜야 ‘국민안심’을 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법입원제를 국민안심입원제도라고 개칭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은 “정신질환이 있는 시민을 입원시켜야 국민이 안심한다”는 근거 없는 논리로 특정 집단의 사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전 국민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정신질환이 있는 시민들을 앞장서서 옹호해야할 집단이 당사자들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는 매우 비윤리적인 행위입니다.

여기에 정책당국도 현혹되어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선진국은 정신질환을 일반 질환과 차별하지 않기 위해 ‘정신병원’ 대신 일반병동과 정신병동을 통합하는 정책을 1980년대부터 실시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1900년대 유형했던 정신병원이 절대다수이고 그중에는 좁은 방에 이불을 깔아 10명씩, 8명씩 있게 해 왔습니다. 코로나로 제일 먼저 사망한 시설수용인이 정신병원에 수십 년간 입원했던 정신질환자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몇 년씩 감금되어 있는 것이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 병실수용 인원을 정부가 6명으로 줄이자 대책 없이 병상을 줄였다고 한탄하는 의사도 있습니다.

정신질환을 분노범죄의 원인으로 인식하는 정책적 가정은 다음과 같은 중대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폭력 피의자 중 몇 사람이 정신질환 치료를 받을 적이 있다고 그것을 폭력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사후가설의 오류입니다. 그것은 단지 사후의 근거 없는 추론일 뿐이며 실제 정신질환이 원인되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개연성이 있는 추론을 피의자 중 이전에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 범죄 후 처벌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입니다.

둘째, 분노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요즈음 청년들이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를 성찰하고 개선해나가야 합니다. 신빙성이 있는 추론은 정신질환이 있는 시민에 대한 마녀사냥이 아니라 피의자들 대부분이 성장기에 좌절을 겪고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사회적 환경입니다.

어떤 철학자가 무한 경쟁에서 자기 스스로를 착취하는 우리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하였습니다. 피로사회에서 좌절한 많은 청년들이 고립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많은 매체들은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너기보다는 조소하고 혐오감을 부추깁니다. 무엇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는지 성찰하여야 합니다.

셋째, 이러한 상황에 있는 청년들을 강압적 방식으로 입원시켜 치료하는 것이 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오히려 원하지 않은 강압적 치료를 받는다면 더 폭력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더 합리적인 추론일 것입니다.

넷째, 더욱 중요한 사실은 정신질환이 있는 시민들이 가해자인 경우보다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시민들은 성장기부터 신체적, 언어적 폭력, 경제적 착취 그리고 따돌림과 같은 집단폭력을 그렇지 않은 시민보다 훨씬 더 많이 경험했고 강압적 치료와 감금과 같은 제도적 강제력도 일상적으로 경험해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입원제도를 통해 쉽게 감금하는 제도를 만들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신질환이 있는 시민들에 대한 폭력이며 2차적 피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정신질환자가 입원하려고 해도 입원할 병상이 없습니다. 행정입원을 시키려해도 입원할 병상이 없을 때가 허다합니다. 저항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자들이 장기입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인구가 7배 가까이 많은 미국의 정신병원 병상이 우리나라와 거의 같습니다.

병상이 부족한 것일까요? 대부분의 선진국은 쉽게 입원하고, 빨리 퇴원합니다. 미국은 평균 6일 가까이 입원하지만, 우리나라는 평균 200일 가까이 입원합니다. 지금 사법입원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러한 제도 하의 국가들이 평균 입원일수가 20일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나라의 사법입원 제도에 동의하는 것일까요?

현 시점은 소모적인 입원제도 논쟁보다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시민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옹호할 것인지로 정책의 초점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사회 서비스 개발 및 확산은 전문가가 아니라 당사자 및 가족의 인권과 욕구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동안 전문가의 영향력에 좌지우지되어 왔던 우리나라 정신보건은 세계 최고수준의 인구당 정신병상수와 평균 입원일수 200일이라는 비인권적이고 굴욕적인 체계를 구축하였고 취업률 5.3%라는 참담한 삶을 당사자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당사자 및 가족의 인권과 욕구에 기반한 정책의 추진방향은 간결하고 명백하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당사자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강압적 치료장소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족들은 누군가 혹은 어디에선가 위기상황에서 돌봄을 제공할 사람과 공간을 간절히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면 국가는 병원이 아닌 보다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여 당사자를 보호하고 가족의 돌봄을 대신해주도록 법제와 프로그램을 구축하면 되는 일입니다.

선발국가의 위기쉼터가 바로 그러한 공간입니다. 또한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당사자는 그 공간에서 오래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퇴원 후에 어떻게 지역사회에 정착하여 살아나갈지 막연합니다. 이때 누군가 병상에 찾아와서 치료에 대한 의사소통을 지원하고 퇴원준비를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절차보조제도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10대, 20대, 30대의 젊디젊은 청년들이 정신질환자로 낙인찍혀 병원에 감금되어 있거나 지역사회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스티그마를 없애야 합니다.

그 출발점은 정신질환과 일반질환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책당국은 차별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입원제도를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현행 입원제도 자체는 영국식 사법입원제도와 유사하고, 프랑스식 사법입원제도와도 유사합니다. 문제는 선진국에서 100년 전에나 있던 ‘가족이 책임지고 정신병원에 데려가서 입원을 신청해야 하는’ 제도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첫째, 위기 상황에 있는 당사자의 이송체계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위기개입전담다학제·다경험팀”을 구성해서 평상시에는 지역 내 정신질환자, 그 가족 등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심리적·사회적 위기상황에 있는 정신질환자를 접촉하여 치료를 권하고, 필요하면 가족과 분리시켜 쉴 수 있도록 하고, 입원이 필요할 때 자의입원을 권하는 등 강제입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위기개입전담다학제·다경험팀에는 말 그대로 ‘정신장애인 동료지원가, 가족지원가’ 등 다양한 경험이 있는 인력이 직원으로 있어야 합니다. 사회복지와 간호 등 다학제 정신건강전문요원 직원으로 있어야 합니다. 이들 직원 모두가 대등한 관계로 협력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팀이 활동하게 되면 강제입원의 수요를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인구 2,300만 명의 대만에서 한 해 강제입원되는 정신질환자가 600명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한 해 30,000명 정도입니다. 그 차이는 지역사회에 정신질환자와 긴밀히 협력하는 시스템이 있는가와 없는가에 있습니다.

둘째, 심리·사회적 위기상황에서 병원 입원 이외에 위기쉼터에 쉬면서 외래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선택지를 정신질환자에게 보장해야 합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회관계망에서 발생하는 긴장에서 벗어난 공간에서 쉬면서 외래치료를 받으면 강제입원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치료 효과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 위기쉼터는 위기개입전담팀과 유사하게 다학제·다경험팀으로 구성하여 운영해야 합니다.

셋째, 짧은 입원, 빠른 퇴원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스티그마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재활과 회복을 지원하는 ‘전환서비스’, 재활서비스, 동료지원센터가 대폭적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지역기반 재활과 회복서비스가 많아야 장기입원환자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정신질환자를 가족이 매일 돌보아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넷째, 인권이 존중되는 입원이어야 정신질환 치료에 적극적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강제입원되는 순간부터 다학제·다경험팀으로 구성된 절차보조인이 정신질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지원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들의 지원으로 자·타해 위험성이나 응급상황이 완화되면 곧바로 퇴원하여 다시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다섯째, 회복되거나 회복과정에 있는 정신질환자, 정신질환자 가족의 회복지원에 성공적이었던 가족지원가 등을 정신건강서비스 제공자로 적극 채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신질환에 대한 스티그마를 줄여 예방과 조기개입이 가능할 것입니다.

여섯째,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하는 만성중증정신질환자이 지역에서 생활할 수 있게 지원주택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또한 직장을 다니면서 자기 힘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정신장애인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신질환자의 사회참여를 촉진하여야만 우리 모두가 정신질환이 ‘소외와 배제’로 인해 생긴 정서적·사회적 장애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 복원이야말로 정신질환 예방, 조기치료의 지름길임을 공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연대단체는 정신건강복지의 대개혁은 특정한 사람을 감금하는 방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모아 성명하는 바입니다.

2023년 8월 28일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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